"코미디 하면 MBC 아니었습니까?"

[탐방] 부활 꿈꾸는 코미디 <웃으면...> 촬영 현장

등록 2005.04.21 06:40수정 2005.04.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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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코미디 전성시대'다.

99년 KBS <개그콘서트>가 침체된 코미디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을 시작으로, 2003년 4월 SBS <웃찾사>가 시청자를 TV앞으로 끌어모은 데 이어, 한 달 전 MBC도 새로운 코미디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방송 3사의 코미디 3파전이다.


일상의 짜증나는 장면을 표현해 내는 코너 '오! 짜장'
일상의 짜증나는 장면을 표현해 내는 코너 '오! 짜장'나영준
한때 '코미디 왕국'이라고까지 불렸던 MBC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때문인지, MBC는 과거 코미디의 대명사인 '웃으면 복이 와요' 타이틀을 그대로 차용해 '코미디 쇼 웃으면 복이와요(목요일 오후 7시20분)'라는 이름으로 부활을 선언했다.

그러나 MBC의 후발 분투에 대한 시청자들의 핵폭풍 같은 열광은 없었다. 2005년 현재 포털 사이트(네이버 기준) 오락프로 일간 검색 순위에 가장 높은 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SBS <웃찾사>나 KBS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들이다. 그 밑으로 한참 내려가야 간신히 이름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MBC 웃으면 복이와요의 성공 가능성은 여전히 감지된다. 그들의 코미디가 말초적 웃음보다는 '풍자 코미디'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21일 방영분을 촬영중인 그들을 여의도 MBC 스튜디오를 찾아가 만나봤다.

화려한 과거의 영광을 위하여

우스꽝스러운 체조로 많은 박수를 받은 '천상의 몸매' 코너
우스꽝스러운 체조로 많은 박수를 받은 '천상의 몸매' 코너나영준
본격 촬영이 시작되기 4시간 전인 오후 4시. 카메라 리허설이 열리는 현장은 환한 조명만큼 뜨거웠다. 제작팀과 동료들만 있는 썰렁한 스튜디오였지만 '실전'과 다름없는 땀을 흘리며 활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이번 주에 올려지는 코너는 총 20개. 그 중 15개 내외만이 간택 받아 실제 방송을 탈 수 있다.


크지 않은 무대를 뛰고 구르며 휘젓기를 2시간여. 잠깐 동안 휴식이 주어졌지만 각 팀 별로 부족한 부분을 맞추어 보느라 정신이 없다. '이것이 슬랩스틱이다' 팀을 찾아가자 맏형격인 김종하(41)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몸이 좀 힘듭니다. 안 다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다치게도 되고…."


'이것이…'는 여러 소도구들과 세트 장치를 이용하여 넘어지고 부딪히고 자빠지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식 코미디이다. 80년대의 심형래식 코미디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얼핏 유치한 듯하지만 치밀한 각본과 계산이 필요한 고난이도의 공연이고, 이 날 리허설에서 가장 '코미디다운'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반응이 어때요?"라고 묻자 "간혹 찰리 채플린의 무슨 영화를 보고 따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순수하게 우리가 짜낸 아이디어"라고 답한다.

정통 코미디를 표방하는 '이것이 슬랩스틱이다'의 팀원들.
정통 코미디를 표방하는 '이것이 슬랩스틱이다'의 팀원들.나영준
"최고의 코미디 하면 MBC 아니었습니까? 그간 조금 침체기도 있었지만 이번에 심기일전해서 모든 스태프들과 연기자, 작가까지 똘똘 뭉쳐 열심히 하고 있으니 여유 있게 지켜 봐 주세요."

89년 <청춘행진곡>에서 헌병 역으로 데뷔 했다는 그는 어느 덧 15년이 지난 세월에 감회가 새롭다며 '친정'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각오를 보여 주었다.

이어 저녁 7시가 넘어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20대의 남녀 커플들이다. 어느 덧 700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잡자, '바람잡이' 개그맨이 나와 여러 게임을 시키고 장미꽃 등을 나누어 주며 분위기를 돋우기 시작했다.

"뭐긴 뭐야, 모기장수지"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코너 '바게트 형사'
"뭐긴 뭐야, 모기장수지"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코너 '바게트 형사'나영준
8시. 실전녹화시간. 첫 코너는 '오! 짜장'이다.

"짜증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

일상의 짜증나는 상황을 익살맞게 그려낸 코너라 그런지, 관객 대부분이 박수를 쳐가며 폭소를 터뜨린다.

이어 커다란 귀를 이어 붙인 두 명의 형사와 한 명의 피의자가 엮어 가는 ‘바게트 형사’ 코너. 기형적으로 큰 귀를 갖고도 도대체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형사, 답답한 마음에 피의자가 "뭐야~"라고 투덜대면 "모긴 모야 모기 장수지"라는 엉뚱한 답변이 돌아오는 식이다. 방영된 지 몇 주 안 됐지만 이 코너는 단단히 자리를 잡아간 듯하다.

의미가 담긴 코너? 다시 '복'이 올 수 있을까

환호하는 관객들.
환호하는 관객들.나영준
담당 이민호 PD는 '아무 생각 없이' 내보내는 코너는 없다고 설명했다. 웃음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현실 반영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보니 여러 시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병대 가족'은 일상 속에서 흔히 행해지는 군대식 문화를 비틀어 보여줬고 '겁 먹었을 거야'는 허풍으로 가득 찬 뒷골목 문화를 풍자했다.

이 날 기존 코너 외에 새롭게 무대에 올려진 코너는 'S다이어리'와 '젊은 날의 일기' 등 총 7개. 참신한 시도들이 속속 쏟아지고 있었다. 그 중 '생활의 발견' 같은 코너는 우유, 이온음료, 사이다 같은 음료수를 재치있게 의인화했다. 우유가 사이다에게 "칼슘도 없는 녀석"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이온음료는 우유에게 "양주가 너 없으면 속 쓰리다고 찾더라"며 관객의 많은 웃음을 이끌어 냈다.

무대 밑에서 초조하게 동료들의 공연을 지켜 보는 출연자들.
무대 밑에서 초조하게 동료들의 공연을 지켜 보는 출연자들.나영준
하지만 코너를 마친 개그맨들과 담당 작가들은 연신 무대와 관객을 바라보며 웃음 반, 걱정 반의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반응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김소영 작가는 시청률을 묻는 질문에 "주 시청자층은 주부와 어린이고, 매주 1%씩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반면, 이지창 작가는 관객들의 웃음 포인트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힘들여 준비하고 '의미'를 담아 내놓은 코너에서 실제 관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것.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를 풍자한 '천상의 몸매'는 상당히 호응이 좋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 본 어른들의 세계를 표현한 '노노 이야기'와 학원의 '왕따' 현상을 비유한 '배신자'는 꽤 공을 들인 티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크지 않았다.

녹화 전 여자친구와 함께 자리를 잡은 심아무개(25)씨에게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묻자 "웃찾사다, 쉽고 딱딱 와 닿기 때문에 고민 없이 웃을 수 있어서 좋다"고 지체 없이 대답했다.

"오늘 솔직히 아는 사람이 있어 MBC에 오긴 했지만 큰 기대는 안 해요. 예전에 '브레인 서바이버'는 재미있었는데. 젊은이들은 거의 다 <웃찾사>를 좋아해요."

녹화현장을 다 지켜본 뒤에도 심씨의 위 답변이 유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코너가 진행될수록 하품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현란한 음악과 노래가 있는 코너가 시작되자 다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7명의 개그맨이 한 곡의 노래에 맞춰 유명 가수들의 성대모사를 하는 '하나 되어'의 경우,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에 모든 녹화가 끝난 후 '앵콜 공연'까지 펼쳤다.

그들의 희망, 웃음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방송사고'를 패러디 한 생방송 뉴스데스크에 출연 중인 고명환, 전환규씨.
'방송사고'를 패러디 한 생방송 뉴스데스크에 출연 중인 고명환, 전환규씨.나영준
무대 가까이서 지켜 본 그들의 모습은 성실했고 '노력'이라는 한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최국, 김성규 등 한동안 코미디 무대를 떠나 있었던 중고참들의 복귀도 반가운 모습이었고 코너 내에서 세대간의 조화도 적절히 이루어 진 편이었다.

하지만 '준엄한' 평가는 관객과 시청자가 내리는 것이다. 아직 그들의 시도는 진행 중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객관적 지표인 시청률조사에서(TNS 미디어 코리아) 지난 몇 주간 <웃으면...>의 제목은 전국은 물론 서울 수도권 20위내에도 들지 못했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는 코너도 손에 꼽을 정도일 뿐, 대부분은 여전히 '실험 중'이다. 또한 웃음의 속도는 빨라지고, 캐릭터 자체에 익숙해지고 있는 젊은 시청자들을 감안한다면 <웃으면...>이 추구하는 '의미'가 과연 유효할까라는 의문부호도 떠오른다.

그러나 21일 방송 되는 분량까지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시도는 이제 겨우 여섯 번. 아직 <웃으면...>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이런 방식(공개 녹화)은 이제 더 이상 '따라하기'가 아닌 2005년의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비공개 때의 습관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서서히 '감'을 잡아 가고 있습니다. 15회, 20회 정도만 가면 완전히 몸에 익습니다. 또 MBC의 개그맨들은 타사에서도 인정하는 연기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어느 덧 고참급이 되어가는 고명환(33)씨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덧붙여 그는 방송 3사의 코미디가 인기 있게 되면 서로 좋은 것이라며, 현재 MBC가 약간 처져 있어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가 어디를 잡아먹겠다는 게 아니라 함께 잘 되면 나라 전체에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라며 넉넉한 웃음을 보이는 그의 여유가 단순한 립 서비스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와 함께 '생방송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전환규(25)씨도 "처음에는 조급하기도 했지만 노력은 배반 안 한다는 말을 믿습니다"라며 선배를 거들었다.

'이것이 슬랩스틱이다'의 경우는 코너의 난이도 상 사전녹화까지 2번을 촬영했다.
'이것이 슬랩스틱이다'의 경우는 코너의 난이도 상 사전녹화까지 2번을 촬영했다.나영준
그러나 그들의 희망과는 달리 아직 <웃으면...> 에 쏟아지는 관심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그들의 바람대로 MBC 코미디에 다시 '복'이 올 수 있을까? 그건 노력 하는 그들의 몫이 아닌 시청자의 선택이다. 아직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들의 실험과 모험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경쟁이 아닌 웃음의 파이가 커졌으면 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의 이민호 PD

▲ <웃으면 복이와요>의 이민호 PD.
ⓒ나영준
이민호 PD. 그는 인터뷰 내내 여유만만이었다. 후발 주자로서의 안달이나 고뇌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개콘이나 웃찾사 촬영방식 따라하기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웃으면...>가 사실은 예전 공개 코미디로서의 '원조'"라며 "공개녹화를 하느냐 안 하느냐 방식의 차이일 뿐 중요한 건 컨텐츠"라고 일축했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과 색깔은 조금 다르다. 그러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은 안에 있는 컨텐츠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린 것 같다. 솔직히 <개콘>과 <웃찾사>와 크게 다르지는 않고 단지 시간대에 있어 우리는 40~50대가 많이 본다. <웃찾사>가 좀더 젊은이들 코드에 맞추는 것은 사실이다."

이 피디는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심야시간대로 옮길 것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간(목요일 오후 7시20분)대에 있는 동안만큼은 전 세대가 이해하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시청률에 관한 질문에는 나아지고 있다며 길게 본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시청률 분포도를 보면 40~50대가 반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10대에서 20대의 시청률도 동시간대에서는 1위이다. 분명히 호소력은 있다. 희망적으로 본다."

이 피디는 "모든 코너의 생존은 철저하게 현장 반응 위주로 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언제든 새 얼굴이 들어올 수 있는 무한경쟁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단,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웃음보다는 '의미'가 담긴 코미디여야 한다고 못박는다.

"'이것이 슬랩스틱이다'는 예전의 향수 같은 것을 현대화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오! 짜장' 같은 경우는 내가 코미디를 하는 이유이다. 한마디로 짜증날 때는 웃으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바게트 형사'라는 코너의 큰 의미는 의사소통의 부재다. '천상의 몸매'는 극단적인 다이어트 열풍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시중에 떠도는 '컬투(정찬우, 김태균)' 영입설에 대해 묻자 "애초부터 생각도 안 했다"며 두 손을 내저었다. 개인적으로 친하긴 하지만 굳이 끌어오는 것이 그들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피디는 "남들 잘 된다고 데려다 쓰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영입의사가 절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몇 개월 쉰 후에라면..."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웃으면...>을 <웃찾사>와 <개콘>과 대결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경쟁보다는 '파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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