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옥녀봉 오르기

통영 사랑도 산행기(3)

등록 2005.04.30 18:55수정 2005.04.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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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지나가면서 맛있는 냄새를 맡다 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조금 더 가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각자 베낭에서 먹을 것을 내놓으니 이거야말로 오늘은 완전히 소풍 나온 날이다. 내가 가져간 남새는 놔두고 여성 회원들이 해 온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 매실 장아찌, 삼치구이, 가재미조림, 살얼음 물김치, 소불고기볶음, 계란말이 등등. 집에서는 못 해 먹은 반찬들이다. 아이고,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방긋 미소 짓는다. 식후 과일로 입가심한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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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점심시간. ⓒ 방성열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큰 봉우리나 촛대바위도 씩씩하게 올라갔지만, 난 그냥 위험구간 우회표시만 보면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우회한다. 젊어서부터 지독한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아파트 5층 이상만 되면 옥상에서 지상을 가까이 내려다 보면 오금이 저려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금까진 모든 곳이 우회길이 있었는데,가마봉 올라가는 곳은 우회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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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길이 없어 어쩔 수 올라갔다. ⓒ 방성열

20~30m 길이지만 중간쯤 올라갔을 때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잠깐 뒤돌아보니 까마득하다. "아이고, 엄마야." 나는 엄마를 찾으면서 한눈 팔지 않고 정상만 보고 올라갔다. 후유! 십년감수했다. 여성 회원들도 잘만 오르는데 이게 뭐람.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관심이가 짊어지고 온 수박파티가 벌어진다. 새내기 '미명'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지금까지 산행에 따라다녔지만 산 위까지 수박 가져온 사람을 못 봤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건 아무것도 아녀! 작년에는 지리산 바래봉까지 가져갔어!"하고 말해 준다. 땀 흘리고 난 뒤에 산위에서의 수박 한 조각. 눈, 귀, 입 이제는 가슴까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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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산악회 회원들과/맨앞 핑크모자가 글쓴이. ⓒ 방성열

이제는 마지막 봉우리인 옥녀봉만 지나면 끝이다. 옥녀봉 지나기 전에 첫 번째 철재사다리가 나오는데 거의 수직 사다리다. 다행히 우회길이 있어 난 그 길로 내려와 다른 사람의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겨울이나 노약자나 어린이는 산행하긴엔 너무 위험하겠다. 오늘은 초등학생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

눈앞에는 옥녀봉이 보인다. 이곳 옥녀봉은 글로 옮기기 챙피할 정도의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곳 옥동마을에 홀아비가 딸을 키우며 살았는데, 딸이 커가면서 너무나 아름다워 동네 사람들은 천녀, 또는 옥녀라고 불렀다.

홀아비는 딸이 시집갈 때가 되었는데도 결혼 시켜줄 생각은 않고 딴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맘을 안 옥녀는 아버지의 청을 매번 거절했다. 하루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에 옥녀가 자는 방에 친부가 옥녀를 겁탈하려하니 옥녀가 완강하게 거절했다.

욕정에 눈먼 옥녀의 아버지는 그만 눈이 뒤집혀 무력으로 옥녀를 몰아부치니 옥녀는 아버지한테 눈물로써 애원을 한다. "나나 아버지나 인간으로서는 이 짓을 하지 못하니 내가 뒷산에 올라가 있을 테니 아버지가 소 멍에를 쓰고 소 울음을 내면서 올라오면 그때는 나도 소 같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주겠노라"하면서 먼저 산위에 올라가 기다린다. 그때 저 멀리서 "우우"하고 한 마리의 소가 욕정을 품은 채 올라온다. 한 마리의 소가 되어 올라오는 아버지를 보고는 옥녀는 그만 수십미터 아래로 몸을 날려 죽어 버린다.

이후 옥녀봉에는 항상 붉은 이끼가 살아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옥녀가 흘린 피라고 믿고 있다. 이곳 사랑도 사람들은 아이들을 출가 시킬 때에 대례를 치르지 않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아름다운 옥녀를 추모하기 위한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옥녀봉에 올라갈 동안에 난 우회길을 이용하여 두 번째 철재 사다리를 내려왔다. 대항해수욕장과 금평항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금평항으로 내려왔다. 항구에 가까이 오니 한 무리의 염소 때가 한가로이 풀을 먹고 있다.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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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의 어린 염소. ⓒ 방성열

금평항에는 제2회 등산축제 행사 기간이라 무대에선 무희들이 신나는 디스코를 추고 스피커에서 고막을 찌를 음악이 흘러나온다. 산행을 무사히 마친 우리들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돌 멍게를 안주 삼아 소주, 맥주를 마시면서 사량도 무사산행을 축하했다. 사랑도의 돌 멍게가 작년 송년회 이후 시작한 나의 4개월 금주벽을 깨트렸다.

덧붙이는 글 | 도로안내 : 1) 남해고속도로 서마산IC(14번 국도)→고성→통영→여객선터미널
           2) 남해고속도로 사천IC(3번 국도)→사천읍(33번 국도)→고성(14번 국도)→통영
              주차장 : 통영여객선터미널 내의 공영주차장 이용
           3) 가오치도선장/ 고성(14번 국도)→도산 성우휴게소 앞(58번 지방도-우회전)→
              오륜리 가오치마을 

배편안내 :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055-647-0147)에서 사량호(카페리)가 하루 5~6회 운항.
           (하절기 - 07:00, 09:00, 11:00, 13:00, 15:00, 17:10 , 동절기 - 07:30, 09:30, 
           12:00, 14:00, 16:10)/35분 소요

현지숙박: 민박/문의-사량면사무소(055-650-4810)
                    >> 통영관광홈페이지 참조

덧붙이는 글 도로안내 : 1) 남해고속도로 서마산IC(14번 국도)→고성→통영→여객선터미널
           2) 남해고속도로 사천IC(3번 국도)→사천읍(33번 국도)→고성(14번 국도)→통영
              주차장 : 통영여객선터미널 내의 공영주차장 이용
           3) 가오치도선장/ 고성(14번 국도)→도산 성우휴게소 앞(58번 지방도-우회전)→
              오륜리 가오치마을 

배편안내 :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055-647-0147)에서 사량호(카페리)가 하루 5~6회 운항.
           (하절기 - 07:00, 09:00, 11:00, 13:00, 15:00, 17:10 , 동절기 - 07:30, 09:30, 
           12:00, 14:00, 16:10)/35분 소요

현지숙박: 민박/문의-사량면사무소(055-650-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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