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내주신 쑥 개떡 여섯 개

등록 2005.05.02 12:28수정 2005.05.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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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만에 친정에서 또 박스가 날아왔습니다. 정해진 날짜는 없지만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왔고, 어느 달엔 한 달에 두어 번도 마다하지 않고 보내오셨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먼지만이 풀풀 날리는 그 가여운 주머니가 말해주듯 줄어만 가는 어획량으로 인해 두 달만에야 아주 반가운 얼굴로 박스가 날아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 집 냉장고 역시 내 아버지 주머니 못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뒤적여가며 찬거리를 고를 것도 없이 아침에도 김치, 점심에도 김치, 저녁에도 그저 김치 김치뿐. 아버지가 보내주셔야만 맛을 볼 수 있는 비린 것을 지난 보름간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보내시면서 엄마는 "두릅이 세 봉 다리 있을 것이고, 머우대가 데친 것이 큰 봉지로 한 개 있을 것이고, 전복새끼 깐 것도 있을 것이고, 그라고 우리 사우 좋아허는 돌게도 몇 마리 들었응께, 게장 만들어 줘라. 그라고 또 뭐가 들었으까"하며 한참을 전화기 너머에서 고민을 해도 당신이 방금 싸서 보내놓고도 금세 잊어버리셨는지 "풀어 보믄 알 것이다!"라는 명언만을 남기시고 고맙다는 공인사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십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하룻밤 지나 예정대로 박스가 내 집 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전 박스가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그랬듯 "풀어 보믄 알 것이다"는 그 명언을 확인하기 위해 박스를 열었습니다.

엄마 말대로, 그물을 손수 만들어 쓰시는 그 억척스런 부지런함 속에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따왔을 자연산 두릅이 정말로 세 봉지가 들어 있고, 그러면서도 틈틈이 남의 전복 양식장으로 일을 다니시며 맛이나 보라고 주인네가 박한 일당에도 인심 쓰듯 내어준 작은 전복들이 껍질을 벗은 우아한 자태로 들어 있고, 들깨가루, 참기름 넣어서 달달 볶아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 듯 그 맛이 기가 막힌 머우대가 엄마가 성치 못한 눈을 비벼가며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껍질을 벗겨낸 덕에 하얀 모양새로 들어 있고, 또 물때 맞춰 나가서 잡아왔을 밤생이, 조갯살이 해 먹기도 좋게 들어 있었습니다.

"어? 오늘은 없네."


뭔가를 찾아 헤매다 실망의 한숨을 내 쉴 무렵 오늘도 전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엄마가 간식으로 드시려다가 잘못 담아 보낸 쑥개떡 여섯 개를. 깐깐하고 잔정없는 내 엄마의 숨어 있던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것같아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하하하."


박스가 올 때마다 아주 못된 버릇인지 알지만 전 이렇게 엄마의 실수의 흔적도 찾고, 그 안에서 억세게 살아오신 엄마의 인간적인 모습도 엿보며 즐거워한답니다.

지난 번에는 먹다 남긴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나무 막대기만이 축축한 액체와 함께 들어 있었고, 또 언젠가는 전복고동을 보낸다는 말에 기름소금을 만들어 놓고 남편과 함께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고구마 삶은 것 한 개만이 덩그러니 딸려왔을 뿐 전복고동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 이만저만 실망을 한 게 아니었지요.

아귀를 보낸다는 말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사다놓고 기다리는데 아버지의 군음식인 갑오징어가 다리와 한쪽 몸통을 모두 잃은 채로 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항상 가장 기다리는 걸 빼놓는 것도 엄마의 특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쑥개떡입니다. 잘 받았다는 전화를 하면서 "엄마 개떡이 왔던데요"하니 친정 엄마는 특유의 그 시원스런 입담을 자랑하시며 "천병허든갑다, 개떡을 뭣해러 보냈으끄나. 어찌 낮에 뎊히서 묵으라고 암만 찾아봐도 없드라니. 죽을 날이 멀지 않았는갑다"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엄마의 그 입담에 또 웃음만이 나옵니다. 이제 막 오십고개를 넘은 새색시같은 엄마가 쑥개떡 여섯 개에 죽음이라니요. 후후. 참 순진하시고, 귀여운 엄마. 그 엄마에게 개떡이 와도 좋고, 아이스크림 막대기가 와도 좋고, 고구마가 와도 좋으니 오래 오래 사시면서 계속 계속 엄마 냄새 보내 달라고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그래야 딸한테 찬거리 보내주는 낙으로 사신다는 그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요. 이제부터 저는 엄마가 못 드신 쑥개떡 여섯 개를 데워서 먹어보렵니다. 아마 봄향기, 고향 향기, 엄마 향기까지 담뿍 담겨서 기가 막힌 맛일 거라 확신합니다.

"엄마 잘 먹을게요. 건강하세요."

추억이 묻어있는 아버지의 배
추억이 묻어있는 아버지의 배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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