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아얼! 내가 해낼 줄 알고 있었다!”
백양굴리는 자신 있게 소리치며 남아있는 병력 모두를 이끌고 기세 좋게 전진해 들어갔고 조선군은 배후의 위협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물밀 듯이 밀고 내려오는 청의 군사들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쳐라!”
투루아얼이 이끄는 기병 400명이 비어 있다 시피한 조선군의 진지를 돌파하여 뛰어들었다. 뒤를 얻어맞은 조선군은 당황해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사태를 알아챈 김준룡은 장판수를 찾았다.
“이대로라면 우리군은 앞뒤를 돌볼 수 없어 패하게 될 것이오! 기병을 모두 이끌고 저들을 저지해야 하오!”
“맡겨 주시라우요!”
하지만 그때 이미 투루아얼이 이끄는 청의 기병은 조선군 진지를 유린한 후 후열 1대로 돌진해 들어왔다.
“적이 총을 쓸 틈을 주면 아니 된다! 짓밟아 버려라!”
투루아얼의 기병은 필사적으로 총을 겨누고 쏘려는 조선의 포수들을 칼로 찍고 편곤으로 내려치며 와해시켜 버렸다. 몇몇 포수들은 총을 버리고 칼을 들어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투루아얼이 다음 열로 돌진해 들어가려 할 때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며 청의 기병들을 쓰러트렸다.
“모두 몸을 낮추어라!”
장판수가 이끄는 조선의 기병 백 여 명이 화살을 쏘며 청의 기병을 에워쌌다. 그 뒤를 이어 조선 궁수들이 대오를 맞추며 활을 쏠 기회를 엿보았다.
“조선의 기병은 그 수가 적다! 두려워 마라!”
청의 기병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화살을 쏘는 조선의 기병과는 달리 몸을 낮춘 상태에서 화살을 쏘는 식으로 훈련되어 있었다. 곧 청 기병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궁시로서는 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장판수가 결단을 내렸다.
“한 가운데로 돌진하라!”
조선기병이 월도(月刀)와 편곤을 휘두르며 돌진해 들어갔고 청의 기병도 재빨리 궁시를 거두고 편곤을 들어 맞섰다. 장판수가 이렇게 청의 기병을 잡아두고 있는 사이 전열의 조선군은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청의 부대를 효과적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뭣들 하느냐! 나를 따르라!”
지지부진한 상황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백양굴리가 말에서 내려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나가며 병사들을 이끌었다.
“저 놈이 대장이다! 저놈을 쏘아 잡아라!”
조선군의 함성과 함께 백양굴리의 옆에 있던 부장이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백양굴리 역시 가슴에 총탄을 맞고서는 주저앉아 버렸다. 삽시간에 두 명의 지휘관을 잃은 청의 병사들은 당황해 했으며, 틈을 주지 않고 조선의 창수와 검수가 뛰어나와 창칼을 휘둘렀다.
“중군이 뒤로 물러섭니다! 우리도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투루아얼은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멍해졌다. 하루 종일 길을 찾아 산속을 헤맨 기병들은 벌써 말과 사람이 모두 힘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조선의 궁수들은 열을 지어 정확한 사격을 하여 조선 기병의 돌진으로 대오가 흐트러진 청의 기병을 하나둘씩 죽여가고 있었다. 그 순간 투루아얼의 눈앞이 엄청난 충격과 더불어 새까맣게 변해갔다. 장판수의 편곤이 투루아얼의 투구 쓴 머리를 때려 말에서 떨어트려 버린 것이었다. 세 명의 지휘관을 모두 잃은 청의 군사들은 절반이상이 줄어든 채 앞 다투어 도망갔고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보았느냐! 이 오랑캐 놈들아!”
조선군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으나 끝내 이시방이 이끄는 지원병이 오지 않았기에 이번 전투로 입은 손실을 안고서는 더 이상 진군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에 김준룡은 병사들의 함성을 뒤로 하며 땅으로 늘어트린 피 묻은 칼날을 씁쓸히 바라보았다.
‘오늘의 승리가 결국 한계란 말인가!’
장판수 역시 병사들과 더불어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청의 병사들을 편곤으로 쳐 죽이며 욕을 해 대었다.
“이시방이래 내 눈앞에 있으면 멱을 따놓갔어! 하마터면 내가 이 꼴이 되었을 뻔하지 않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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