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군사법원, '양심적 집총거부' 현역병에 실형 원심확정

평화적 군복무 신념 요구 기각... 항소여부 따라 대법원서 판가름 날 듯

등록 2005.05.03 14:52수정 2013.02.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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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고등군사법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김범태

자신의 평화적 군복무 신념과 신앙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 보통군사법원으로부터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현역병에게 고등군사법원이 원심을 확정했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3일 '비무장 전투요원'으로의 복무를 요구하며 1심에 불복, 항소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 이경훈(이병, 22세)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현행 법률체계상 집총거부가 용인되지 않고, 다른 사병들과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근거상황에 다다를 수 있으며, 군의 사기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어 항소를 기각한다"며 이같이 확정했다.

 

이에 따라 입대 이후 자신의 양심적 집총거부 신념을 밝히며 평화적 군복무 보장을 요구해 왔던 이씨의 주장은 그의 항소여부에 따라 대법원에서 판가름되게 됐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이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대체복무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복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피고의 편의만 봐줄 수 없다"면서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른 집총거부는 명백한 항명죄"라고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특히 "임종인 의원이 입법 발의한 항명죄에 대한 병역법 개정안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결을 미루려 했으나, 국회의 논의가 지지부진해 판결을 예정대로 진행하게 되었다"며 관련 사안에 대한 입법부의 더딘 발걸음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가족들은 "1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거나 부당하다는 것이 아닌, 헌법에 나타난 국방의 의무를 다하되 개인의 평화적 군복무 신념을 국가권력이 인정하고, 보장해 달라는 요구"라고 설명하며 대법원에 상고할 뜻임을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열린 고등법원 2심에서 군 검찰부는 "집총거부 복무를 인정하는 것은 법원의 권한 밖의 일"이라며 원심을 확정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한 바 있다. 변호인 측은 이에 대해 "피고의 주장이 우리 군의 전투력 감소를 야기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집총을 하지 않고 복무할 수 있는 길을 국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향적 판결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경훈씨는 육군교도소 수감 당시 "나의 신념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일선 부대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며 "생명존중사상을 실현하며 양심적 협력자로서 복무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병역의 의무는 다하되, 사람의 생명을 겨누는 집총만은 거부하겠다는 '비무장 전투요원'으로의 복무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병역거부와는 다르다. 또 집총거부를 교리로 채택하지는 않고 있으며, 개인의 양심과 의사에 맡기고 있다.

 

나는 왜 집총을 거부했나? ... "인간 존재의 핵심은 양심"

- 2002년 2월 집총거부로 구속된 윤영철씨

그는 인간이 존재하는 핵심은 개인의 의지나 지식, 정서가 아닌 '사랑의 원칙이 심겨진 양심'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크리스천이 된 이후 스스로의 양심이 꾸준히 계발되어 왔다고 자신한다. 지능이나 의지는 과거의 그것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확실히 그의 양심은 예민해졌다. 그리고 이는 그의 삶의 모습과 방향까지 바꾸어놓았다.

그런 그에게 군대에서 총을 잡고 강제훈련을 받는 것은 고역이었다. 양심의 가책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자신의 시간과 힘, 존재가 '무력과 군기'라는 다른 주인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에 그의 양심은 크게 요동쳤다. 차가운 총기 앞에서 그는 살의를 느꼈다고 말한다.

결정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분명 무장훈련은 그의 양심에서 'NO!'라고 외치고 있었다. 양심의 음성에 따라 각성된 힘은 그를 갈등하게 했고, 마치 양심의 힘을 시험하는 에너지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양심의 소리에 충실하게 행동한 이후 작은 부분까지 부쩍 세심하게 신경 쓰는 등 양심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갔다고 되돌아본다. 곧 비무장 군복무에 대한 강한 실천의지가 그의 가슴에서 용솟음 쳤고, 그는 그 좁은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 때문에 수감자가 되어야 했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 적어도 신앙인의 양심은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양심은 사회정화적 기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비무장 전투요원으로의 복무는 방치할 수 없는 스스로의 양심에 대한 고귀한 정신이요, 가치였다고 회고하는 그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편한 길로 가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요즘 같은 시대에, 보이지도 않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교도소를 가겠다고 하는 젊은이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2002년 2월 집총거부 혐의로 군사법원으로부터 3년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복역 후 사회에 진출, 현재 광주에서 전도사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왜 집총을 거부했나? ... '진정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3년 3월 집총거부로 구속된 임희재씨

훈련소 입소 당시부터 모든 군사훈련을 소화했던 그가 집총을 거부한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가족사를 알게 되자 평화적 군복무를 주장하던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는 어려서 양친을 모두 잃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중학교 2학년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났다. 행복했던 그의 가정은 부모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어둠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꿋꿋하게 성장한 그는 대학 2학년에 올라갈 무렵, 그간 당연한 순리로만 받아들였던 부모의 죽음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새로운 자각의 시선을 갖게 되었다.

부모의 죽음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인간이 풀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여러 날을 심히 고뇌하게 되었다. 그의 비무장 신념은 이같은 죽음에 대한 쓰라린 경험에서 기인됐다.

'왜 나만…'이라고 비관하던 그의 질문은, 군대에 가게 되면서 '나 같은 사람을 만들지 말자'라는 내적인 다짐으로 바뀌게 되었다. 결국 이 다짐이 자신의 인생화두가 되어 스스로 철저한 비무장을 결심하게 하는 시작점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죽음과 관련된 경험에서 기인된 '죽음을 남에게 옮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자신의 삶에 커다란 의무감을 주었고, 집총거부는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는 첫 걸음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던진다. "집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만 죽이지 않으면 된다"라고.

하지만 그에게 집총거부는 총을 포함한 모든 무기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했다. 남에게 죽음을 주는 것은 비단 총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그렇게 살겠노라고 결심하는 스스로를 향한 평화적 실천이요, 다짐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불행한 운명을 적극적으로 막고 싶다는 생각. 그는 그러한 신념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집총거부'라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선택했던 것이다.

2003년 3월 집총거부로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복역 후 다니던 학교에 복학, 목회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2005.05.03 14:52ⓒ 201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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