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인권위 김윤섭
비정규직 확산, 막을 수 있나
국가인권위는 어려운 퍼즐을 풀 듯 이 문제에 접근했다. 집중적으로 검토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 법안이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양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비정규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핵심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간제 노동자 임시직 계약직 등 고용계약 기간을 정해 고용된 노동자다.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정규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되지 않고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다. 그러나 사용자는 해고 책임을 회피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근로계약 기간을 정하는 기간제 노동자를 선호하는 것에서 기간제 노동자 문제가 파생된다.
정부 법안은 현행 근로기준법에 '1년 이하'로 계약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기간제 노동자 계약기간을 최대 3년까지로 늘려 놓았다.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3년을 초과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해고가 제한되도록 함으로써 고용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상당수 학자들은 "법안대로라면 사실상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기간제 노동자 고용에 대해 '사유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고 단지 기간만 제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비정규직은 예외로 인정하는 대전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파견법 개정안에서는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파견을 금지하고 파견이 허용되는 업무를 열거하는, 이른바 '포지티브 positive ' 방식이다. 개정안은 이를 뒤바꿔서 파견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안 되는 업종만 제시하는 '네거티브 negative '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파견법이 허용하는 업종은 26개. 개정안은 '건설공사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업무', '선원의 업무' 등 소수의 금지 업종을 제외하고 모든 업무에 파견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폭 자유화했다. 노동계는 이렇게 문호를 활짝 열게 되면 파견 노동자 사용업체에 파견돼 사용업체에서 근무 지시를 받고 일하면서 임금은 파견업체로부터 받는 노동자 가 무분별하게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큰 불신을 사고 있는 법이 파견법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1998년 파견법을 도입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전문적인 지식·기술이 필요한 경우"나 "일시적·임시적 고용이 필요한 경우" 간접고용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계는 "지난 7년간 파견법이 시행된 결과는 간접고용이 결국은 저임금과 노동기본권의 억압을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비판한다. 파견 근로 자체를 반대하는 노동계는 파견 노동자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는 이 같은 전면 자유화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차별시정, 제대로 될까
둘째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어떻게 시정할 것이냐의 문제다. 우선 차별의 실상에 대해서는 시각의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는 데는 일치한다.
노동부는 산하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에 비해 평균 35% 가량 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 가운데 10~20%가 불합리한 차별에 따른 격차라고 설명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원화 실태분석'에 따르면, 2003년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49.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의 경우 200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통계에 따를 때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의 임금 비중은 독일이 83%에 달했으며, 영국 74%, 이탈리아 72%, 프랑스 71% 등으로 한국에 비해 임금 격차가 훨씬 작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외환위기에 따른 고용불안은 비정규직에서 훨씬 컸으나 이후 회복은 정규직보다 더뎠다.
대한민국 비정규직의 이 같은 실상에 대해 국제사회도 우려하고 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권리위원회가 우리 정부의 2001년 보고서에 대해 낸 최종 견해 중 일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독립적인 정보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연금혜택, 실업, 의료혜택, 직업 안정성 등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위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50% 가까이 되며, 이들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2개 법안은 이 같은 차별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임금 격차 등을 금지,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차별을 받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게 하며 노동위의 차별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에게는 최고 1억원의 과태료를 물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금지·시정' 문제에서 핵심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명문화되지 않았다. 국제협약에 제시된 이 원칙은 동일노동이나 직무수행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의 대원칙과 함께 차별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노동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이며 선진국과 같이 직무급 체계가 정착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는 적용하기 힘든 원칙"이라고 밝혔다. 또 차별의 구체적 기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노동자의 시정 신청을 통해 이뤄질 노동위원회의 판정과 법원의 판례가 축적되면서 유형별로 정립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입장은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차별을 판단할 기준과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또 항상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가 노동위원회 내의 구제기구에서 제대로 된 차별 인정과 시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비판한다. 즉 알맹이가 빠진, '차별시정' 구호만 외치고 있는 격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