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왜 교육부는 교원평가제를 강행하는가

교육부에 묻는다

등록 2005.05.05 18:17수정 2005.05.0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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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교육부가 교원 평가 제도를 계획하면서 내놓은 '추진의 배경'이다.

-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및 최근의 학업 성적 조작 사건 등으로 실추된 공교육의 신뢰를 높이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육의 중심에 있는 교원들의 역할이라는 인식 확산
- 선생님들이 스스로 신뢰를 지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대통령 취임 2주년 연설문 중)
- 또한 교원들도 공정한 평가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투명한 교직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증대
- 공사 모든 영역에 걸쳐 평가와 정보 공개 등을 통해 투명 사회로 가는 혁신 분위기 확산
- 이와 관련하여 국민들은 교원에 대한 자질 및 전문성 향상 요구와 함께 부적격 교원과 지도 능력이 부족한 교원에 대한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
- 교원 평가제 필요성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리서치 앤 리서치) : 국민의 73% 이상 찬성
- 따라서 교원의 지도 능력 및 전문성 신장을 통해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교육 공동체적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


나는 이 내용을 몇 차례 차근차근 읽었다. 구절마다 지당하다는 공감을 하면서도 읽을수록 이건 아닌데,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이 커져갔다. 마치 우리 교육의 기막힌 현실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교원들에게만 있고, 교원 평가제만 되면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국민을 현혹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교원'이나 '선생님'을 '교육부'나 '교육 관료'로 바꾸어 보았다.

-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및 최근의 학업 성적 조작 사건 등으로 실추된 공교육의 신뢰를 높이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육의 중심에 있는 '교육부'의 역할이라는 인식 확산
- '교육부'나 '교육 관료'가 스스로 신뢰를 지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대통령 취임 2주년 연설문 중)
- 또한 '교육부'나 '교육 관료'도 공정한 평가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투명한 교직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증대
- 공사 모든 영역에 걸쳐 평가와 정보 공개 등을 통해 투명 사회로 가는 혁신 분위기 확산
- 이와 관련하여 국민들은 '교육 관료들'에 대한 자질 및 전문성 향상 요구와 함께 부적격 '교육 관료들'과 지도 능력이 부족한 '교육 관료들'에 대한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
- '교육부'나 '교육 관료' 평가제 필요성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리서치 앤 리서치) : 국민의 73% 이상이 찬성
- 따라서 '교육 관료'의 지도 능력 및 전문성 신장을 통해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교육 공동체적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


교원이 아니라 교육부, 교육정책이 문제다

약간의 어색함이 있지만 뭐 그리 무리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교육부부터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스스로 평가를 받겠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학생들로부터, 학부모들로부터, 선생님들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우리가 먼저 평가를 받겠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교육부와 교육청부터 발가벗고 평가를 받겠다고 먼저 말하고 나서, 전국의 교육청 중에서 몇 곳을 골라 시범 운영을 1년 정도 하고 난 다음에 교원 평가를 하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설득력도 있고 감동마저 주었겠는가 말이다.

교육이 이 지경이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야만적인 학벌주의와 그에 따른 대학 서열화 때문이다. 많은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여 위기 의식까지 느끼며 난리를 치는데도 입시 지옥은 점점 심화되어 가는 이 쌩뚱맞은 현실이 얼마나 참혹한 아이러니인가. 그 와중에서 교사들도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화가 나 있는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가당치 않은 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공교육! 거기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답답함과 자괴감과 분노! 그러나 국민들은 너희들이 무슨 자괴감씩이나, 분노씩이나 느낄 자격이 있느냐고 추궁할 것만 같다. 입이 열 개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야단칠 때,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빌면 그 잘못했다고 비는 행위까지 미워 보인 적이 우리도 있었다.

다시 한번 교육부의 추진 배경을 읽어 본다. 우리 교육의 대역 죄인으로서 추진 배경을 다시 한번 읽는다. 신뢰라는 말이 반복하여 우리의 맨가슴을 찌르고 또 찌른다.

-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및 최근의 학업 성적 조작 사건 등으로 실추된 공교육의 신뢰를 높이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육의 중심에 있는 교원들의 역할이라는 인식 확산

국민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참 억울하다. 학교 수업이 학원 수업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의 책임을 어찌 교사들에게 있다고 말하는가? 과학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가? 외국어고교 선생님들의 실력이 모자라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가? 학교에서 숙식을 하면서 24시간 가르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남보다 더'를 위해, 더 좋은 대학을 위해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학업 성적 조작 사건은 교사이기를 포기한 극히 일부의 교사가 파렴치하게 저지른 범죄임에도 이렇게 첫 번째 추진 배경으로 강조하면서 일반적인 것인 양 과장하는 교육부의 저의는 무엇인가. 그냥 교원 평가를 하자고 해도 되는데 이렇게 교사들을 모욕하면서까지 추진해야 하겠는가 말이다. 사실 요즘 고등학교들이 중간고사를 보는 행태는 코미디도 아니다. 당국의 지시에 의해서이겠지만, 차라리 정신 질환에 가깝다고 할 만큼 과잉적인 대응과 반교육적인 행태를 벌이고 있는 학교도 있음을 교육부는 아는가.

교원을 예비 범법자로 볼 텐가

다음 글은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나에게 메일로 보낸 글이다.

이제 새로 보강되었다는 시험지 관리 요령을 한번 훑어 보자.

① 문제는 같은 학과 담임들의 공동 출제다(이것은 기본이다).
② 문제의 형식은 객관식, 주관식 혼합이다. 특히 주관식 배점은 전체의 30% 이상이 되어야 하며, 2학기에는 단답형이 아닌 완전 서술형이 되어야 한다는 지침이다(그러고서도 평균 70점대를 유지하라니 이것은 완전한 탁상공론이다).
③ 출제한 문제지는 교무부장에게 가져가 그 자리에서 점검을 받고, 본인이 직접 발간실로 가지고 간다.
④ 발간실에서는 출제 교사 입회 아래 즉석 인쇄를 하여 고사실 별로 봉인하여 묶어서, 다시 교무부장에게 인계하여 보관 절차를 밟는다(한 마디로 말하여 인쇄 과정에서의 부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발간실 담당자를 믿을 수 없다는 것).
⑤ 고사 당일 문제지를 고사실 별로 넣고, 복수의 시감 교사(정감독, 부감독)가 입실하여 시험을 진행시킨다.
⑥ 채점은 초검, 재검을 거쳐 평균 점수를 기재한다(재검 점수로 확정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이 정도 수준이면 와! 대학 입시 수준이다. 게다가 학부모까지도 시험 감독 대열에 합류 시킨다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말 이토록 학교를, 선생들을 믿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학교 문을 닫으면 될 것이 아닌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아니 그 이상의 과잉 행동을 취하는 생색내기 위주의 형식주의자들이 교육부 관료로부터 학교의 보직 교사에 이르기까지 줄을 서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한심스럽고, 이런 틀에서 개미 쳇바퀴 도는 것처럼 우왕좌왕하는 나같은 선생들의 자존심만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희극이 아닌 비극이 아니고 무엇인가.


교사들을 공교육 불신의 원흉으로 전제하는 교육부의 이런 논리라면 이건 교원 평가가 아니라, 모든 교원을 범죄자로 생각하고 형량(刑量)을 정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함에도 교육부가, 아니 현 정권이 '차질 없이' 이 교원 평가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많은 교원들이 아주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으니 차질이 생겨도 해답이 없을 정도로 큰 차질이 이미 생겼는데, 도대체 어느 누가 차질 없이 이 제도를 추진할 수 있겠다는 것인가.

이번 문제를 단순한 집단 이기주의로 몰지 말아 달라. 제발이지 교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 평가 자체를 반대한다고 보지 말아 달라. 일부 교원 단체에서 과격하게 반응을 한 것은 교육부가 이미 실시하는 것으로 전제를 해 놓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공청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많은 문제점을 지닌 제도를 밀어붙이듯이 실시하려고 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그런 공청회라면 참으로 부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공청회를 반대하려고 과잉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안다. 공청회를 무산 시키기 위한 시도가 꼭 그런 식이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교육 당국과 일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과잉 반응에만 초점을 맞춰 놓고 기회를 놓칠세라 집요하게 공격을 하고 즐기고 있다. 제발 이러지들 말라.

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성과급 제도에 대해서 성과급을 반납하면서까지 반대했던 교사들이다. 그 좋은 현찰도 마다고 했던 교사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교사들이 교원 평가에 대해서 싫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지는 않다. 공교육 붕괴의 현장에, 그 중심에 있으면서 차마 평가 자체를 반대할 수도 없거니와 어떤 새로운 동기 부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사들이 예민하다면 무엇에 왜 예민한가를 귀 기울여 듣고 나서 비판이든 비난이든 해 주기 바란다.

경쟁이 만병통치약인가?

우리는 지금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다. '경쟁'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을 경쟁 구조 속에 몰아넣어야 우리 교육이 바뀌고 경쟁력을 얻게 된다고 보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 황폐한 교육을 살리는 길이 전혀 아니하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교육부도 경쟁을 시키면 정말 경쟁을 하게 된다고 믿고 있으며, 경쟁을 하게 되면 경쟁력이 생긴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교사들을 서로 경쟁시키면 공교육의 신뢰를 그대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 교육이 경쟁을 하고 있지 않아서 이렇듯 불신을 당하고 있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실제로 얼마나 경쟁을 하고 있는가. 나의 성적이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소중한 목숨을 버릴 정도로 그렇게 처절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내신 비중을 높이고 내신을 9등급제로 한다고 하니 그 경쟁이 너무 힘들다면서 촛불 집회를 하겠다고 할 정도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 중독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입시 문제를 앞두고 지금 경쟁이 넘치는 사회이다. 과연 '경쟁력'이 있는 경쟁인가는 의문이 크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은 지금 경쟁을 할 만큼 하고 있다. 그 왜곡된 경쟁 욕구로 입시 학원들은 대단한 호황을 누리고 사회는 중병이 들어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이 팔리는 신문들은 경쟁을 안 하고 있다면서 평준화를 깨자느니, 자립형 사립고를 늘리자느니 하면서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혈안(血眼)이 된 눈들을 정상적인 눈동자로 바꾸어야 한다. 비생산적이고 왜곡된 교육에 대한 정열, 이 지극히 낭비적인 경쟁 구조를 이제는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알고 싶다. 교육부와 학부모들이 우리 교사들에게 당당하게 성실을 요구할 수는 없는가. 입시 교육에 매몰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가. 우리 아이들을 입시의 노예로 만들지 말라고 호통을 칠 수는 없는가. 제발 그런 비겁한 경쟁으로 아이들을 망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호소할 수는 없는가. 진정 큰 인물들이 경쟁을 통해서 위인이 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안에 있는 내적 욕구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정진하여 큰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부적격 교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교원 평가와는 별도로 엄정히 정할 필요가 분명히 있고 교육부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부적격 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교사를 무차별적으로 평가의 대상으로 몰아넣을 때 '교육'을 고민하는 순수한 많은 선생님들이 받을 상처를 어찌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교원 평가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이 점이다. 사심 없이 순수한 가슴으로 참다운 교육자로서 묵묵히 걷는 선생님들, 평가라는 이름으로 가해질 폭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자존감의 훼손을 과연 누가 기워줄 수 있겠는가.

교육부여, 제발 지나치지 말라. 지고 있는 싸움에 너무 결연한 자세로 임하지 말라. 져야 할 싸움에 목숨 걸지 말라. 시행이 비록 1, 2년 늦어지더라도 선생님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반드시 만들어 가라. 여러 교원 단체에게 다시 스스로 평가 방안들을 만들어 보라고 하고 그것을 모아서 머리를 맞대 보자.

앞에서도 말했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평가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평가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좀 더 성숙된 평가 방법은 없는가. 학교 교육 전반을 평가하자는 의견도 진정으로 교육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교원만을 대상으로 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보겠다는 것은 오만이다. 무엇에 쫓긴 듯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면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60대 70대 80대만 있고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어른을 지워 버린 사회가 되었다. 엄마와 어머니만 있고 어머님이 없어진 사회, 아버지만 있고 아버님이 없어진 사회가 되어 버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소중한 자산들을 잃어 버리고, 소중한 재산들을 지워버렸다. 교원 평가가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을 지워 버리는 제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앞선다.

교원을 존중하면서 정책을 추진하라

학부모와 학부모 단체에도 말하고 싶다. 학부모 단체는 학부모가 당연히 교사 평가권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지금의 공교육에 대한 쌓이고 쌓인 불신 때문에 분개한 입장에서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수고 있을 것이다.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일본 얘기여서 안 됐지만 한번 되새겨 보자. 일본의 어느 총리가 있었는데, 그 손자가 할아버지의 '빽'을 믿고 학교에서 어찌나 말썽이 심한지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 그 총리가 담임 선생님을 집으로 초청해서, 손자가 보는 앞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큰절을 올려 손자를 깨우쳤다는 것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도 있다. 어느 유치원인가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유치원 원장이 여왕에게 귓속말로 이러더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저를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알고 있으니 여왕께서도 모자를 벗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그러자 여왕은 모자를 벗고 유치원 원장에게 정중하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40만 명이나 되니 너무 흔하다고 귀하지 않은 게 아니다. 사제 관계는 많다 적다가 아니라, 그 자체 하나 같이 모두가 소중한 관계다. 속이 상하더라도 학부모들은 교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사들이 학부모들을 경멸하거나 비웃어서 안 되듯이. 선생님을 무시한다면 그런 형편없는 교사에게 내 자녀를 맡기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서글픈 자가당착인가. 한 아이, 한 학생을 중심으로 볼 때 교사와 학부모는 그 자녀에게, 그 제자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관계인가?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평가하는 방법도 물론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겠는가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참다운 교육력을 높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답은 있는가. 있다. 평가 구조로 푸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구조, 대화 구조로 푸는 것이다. 경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을 요구할 수 있는 방안으로 풀어가자는 것이다. 대화는 때로 서로 상처를 주고, 기를 꺾을 수도 있으나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면 다음 대화에서 회복이 가능하다.

우리 학교는 학부모와 함께 하는 학년 협의회를 1년에 한번씩 4년째 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 어려워하고 방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어떤 학부모는 분개한 표정과 비난에 가까운 목소리로 학교와 선생님들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이에 충격과 상처를 크게 받은 선생님들은 이런 회의를 과연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강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횟수를 거듭되면서 방어적인 분위기는 많이 가시고 서로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필요성을 느껴 가고 있다.

교사로서, 특히 교장으로서는 아주 긴장되는 일이지만 이런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게 되면 일회적인 평가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선생님들과 교육의 질, 학교 운영 전반에 걸친 검증을 받게 된다. 또 고칠 것은 고치고, 격려를 통하여 용기도 얻게 되어 긴장감 속에서 학교는 생기를 얻는 것이다. 평가 제도보다 얼마나 격이 있고 생산적인가.

교육부가 무언가 할 일을 찾고 싶다면 이런 민주적인 학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갈등과 갈망을 대화로 풀어가고, 단위 학교가 지향하는 목표에 대해 가슴 열고 만나서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리하여 구성원들 서로가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존중하는 학교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런 기가 살아 있는 학교를 눈여겨 찾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그 가슴 뿌듯한 화합과 생명력은 참다운 교육력으로 참다운 국가 경쟁력으로 승화될 것이다.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창밖에서 이름 모를 홀씨들이 흩날리고 있다. 터를 잡고 싹틔울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택시 위도, 시내버스 위도 흙이 아니다. 트럭 위도 오토바이 위도 흙이 아니다. 아스팔트도 보도블럭도 땅이 아니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선생님들도 '교육'의 땅을 빼앗기고 허공에서 망연히 흩날리고 있다. 눈물이 난다.

덧붙이는 글 | 고춘식 기자는 서울 한성여자중학교 교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고춘식 기자는 서울 한성여자중학교 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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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대필) 한성여자중학교 교장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시조'를 연재하기도 했답니다. 이 분은 최근 서승목 교장선생님의 사망 사건과 관련 교장단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열려고 하자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교장으로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앞으로도 교육 관련 글을 계속 싣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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