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러운 보라색 무더기를 만들고 있는 꽃잔디김정혜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우리 집엔 마당 가장자리로 블록을 서너 단 쌓아올린 나지막한 담이 대문과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다.
작년 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블록의 그 구멍구멍을 흙으로 채우고 거기다 꽃을 심게 되었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뇌수술을 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어디론가 가시려고 철부지아이처럼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일쑤였다.
잠시 잠깐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거둘 때면 집안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일을 저지르셨고, 또 혼자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려 온 식구가 몇 시간씩 동네를 헤매고 다니게 만드셨다.
그런 아버지를 붙잡고 참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제발 정신 좀 차려보시라고, 지난 기억을 좀 더듬어 보시라고…. 그런 나의 통곡에 그저 뿌연 눈동자로 멀거니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정말 기억할 만한 추억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아주 어릴 적의 기억들을 빼고 나면, 정말 아버지와 내가 함께 한 시간들이 너무 없다는 것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아버지께서 제일 즐겁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가슴 떨리게 즐거웠던 그 어떤 이야기도 해드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 보아도 정말 그 어떤 한 자락의 추억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관심을 간섭이라 치부해버리고, 자식에게로 한 발짝씩 다가오는 아버지의 애정을 내 인생은 내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고서 매몰차게 막아버렸다는 생각에 가슴 한복판이 날카로운 칼날에 베어 버린 듯 너무 쓰리고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