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이 아니어도 엄만 괜찮아

달리기에서 꼴등을 하고 온 아이에게

등록 2005.05.06 14:00수정 2005.05.0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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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린이날 기념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생일이 빨라서 여섯 살인데 지금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날 행사인만큼 초등학생 형, 누나들 틈에서 같이 응원도 하고, 달리기도 했나봐요.

그러나 아무래도 일곱 살 아이들 틈에서 달리려니 힘에 겨웠나 봅니다. 네 명씩 조를 지어 달렸는데 일등, 이등, 삼등까지는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고 사등 그러니까 꼴찌에게는 그런 도장 하나도 찍어주지 않았나봐요.

주경심
아이는 도장을 못 찍어 못내 서운한 표정으로 돌아왔더라구요. 반팔을 입혀서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꾸만 허전한 제 손등을 내려다보는 거예요. 게다가 반환점을 돌아오다가 넘어져서 팔에 생채기까지 생겨 있더라구요. 다른 친구들은 서로서로 손등에 찍힌 도장을 자랑삼아 내보이는데 아이만 허전한 손등을 햇빛 아래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왕 찍어주는 거 사등에게도 하나 찍어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제가 꼴찌 엄마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저 역시 어렸을 적에 '달리기'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땐가, 달리기를 했는데 제 아이처럼 꼴등을 했고, 손등에 도장 하나도 받지 못했지요.

워낙 시골이고, 오래전 일이라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달리기를 잘하는 걸 더 알아주었습니다. 한 번의 달리기 결과로 저는 만고에 쓸데없는 아이로 취급됐고, 그 뒤로 부터는 하늘에 떠 있는 '달'만 봐도 '달리기'가 떠오를 정도로 뛰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할 때마다 교실 뒤에 숨거나 학교 뒷산으로 도망을 치다보니 고등학교 삼학년 체력장에서 달리기 실력은 전교에서 꼴등이었습니다. 100미터를 30초에 뛴 것입니다.

아이는 집으로 오는 길에 제 얼굴을 보면서 그러더라구요.


"엄마, 내가 도장 못 받아와서 슬프지?"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리도 간사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은근히 아이가 일등을 하기를 바랐던 마음 또한 없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슴 같은 눈을 한 아이에게 어떻게 두 번씩이나 실망을 안겨줄 수 있겠어요. 이십여년 전의 저를 보는 듯 했거든요. 저는 이십여년 전 제가 듣고 싶었던 그 대답을 타입캡슐 안에서 꺼내어 들려주었습니다.

"아니야 넌 지금은 사등이지만 다음에는 삼등을 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등….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일등을 하는 날도 올거야. 아자아자 화이팅!!"

그런데 어제 아이가 집 뒤 체육공원에서 다음에는 꼭 도장을 받아오겠다며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섯 살의 그 가슴에, 손등에 찍히지 못한 도장이 찍혀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아이에게, "엄마는 네가 달리기 못 해도 되고, 일등 못 해도 돼. 그저 건이가 엄마 아들이라서 행복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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