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심
아이는 도장을 못 찍어 못내 서운한 표정으로 돌아왔더라구요. 반팔을 입혀서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꾸만 허전한 제 손등을 내려다보는 거예요. 게다가 반환점을 돌아오다가 넘어져서 팔에 생채기까지 생겨 있더라구요. 다른 친구들은 서로서로 손등에 찍힌 도장을 자랑삼아 내보이는데 아이만 허전한 손등을 햇빛 아래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왕 찍어주는 거 사등에게도 하나 찍어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제가 꼴찌 엄마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저 역시 어렸을 적에 '달리기'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땐가, 달리기를 했는데 제 아이처럼 꼴등을 했고, 손등에 도장 하나도 받지 못했지요.
워낙 시골이고, 오래전 일이라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달리기를 잘하는 걸 더 알아주었습니다. 한 번의 달리기 결과로 저는 만고에 쓸데없는 아이로 취급됐고, 그 뒤로 부터는 하늘에 떠 있는 '달'만 봐도 '달리기'가 떠오를 정도로 뛰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할 때마다 교실 뒤에 숨거나 학교 뒷산으로 도망을 치다보니 고등학교 삼학년 체력장에서 달리기 실력은 전교에서 꼴등이었습니다. 100미터를 30초에 뛴 것입니다.
아이는 집으로 오는 길에 제 얼굴을 보면서 그러더라구요.
"엄마, 내가 도장 못 받아와서 슬프지?"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리도 간사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은근히 아이가 일등을 하기를 바랐던 마음 또한 없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슴 같은 눈을 한 아이에게 어떻게 두 번씩이나 실망을 안겨줄 수 있겠어요. 이십여년 전의 저를 보는 듯 했거든요. 저는 이십여년 전 제가 듣고 싶었던 그 대답을 타입캡슐 안에서 꺼내어 들려주었습니다.
"아니야 넌 지금은 사등이지만 다음에는 삼등을 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등….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일등을 하는 날도 올거야. 아자아자 화이팅!!"
그런데 어제 아이가 집 뒤 체육공원에서 다음에는 꼭 도장을 받아오겠다며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섯 살의 그 가슴에, 손등에 찍히지 못한 도장이 찍혀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아이에게, "엄마는 네가 달리기 못 해도 되고, 일등 못 해도 돼. 그저 건이가 엄마 아들이라서 행복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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