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교장선생님의 '비서'가 아닙니다

[체험수기]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것

등록 2005.05.06 15:19수정 2005.05.0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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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굴곡이 많은 나의 인생. 그 중에서 비정규직으로 사는 지금은 그저 쓴 웃음이 먼저 나온다. 학교 내에 비정규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 그것도 10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집안 사정으로 대학을 갈 수 없었던 나는 2002년 야간대에 입학했다. 그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찾은 일자리가 바로 학교 행정보조였다. 처음엔 학교라는 곳이 마냥 좋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학교를 생각한 터라 정겨웠고, 지각한 아이들이 벌 받는 것도 정겨웠다. 하지만 그런 환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걸레 들고 책상 닦는 것이다. 그리고 교장선생님, 행정실장님 커피를 탄다. 밖이 더러우면 교장선생님이 나를 부르고, 화장실이 더러워도 나를 부른다. 왜 그럴까? 나는 바로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차 접대 없애야 한다'면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교장실 접대는 행정보조 몫이 되었다. 행정보조가 없으면 교무보조에게 전화해서 차를 타라고 한다. 처음엔 화장실 청소도 해야 했고, 교장실 청소는 물론 담배심부름까지 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학교에 가면 수업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내가 무엇이 모자라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결혼해서 아이가 나에게 "엄마 회사에서 무슨 일해요?"라고 물어봤을 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람들은 학교에 있으니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현실을 알기엔 포장지가 너무 화려했다.

그저 이런 잡무처리 때문에 회의를 느낀 것만이 아니었다. 일반 회사가 1월부터 12월이 한 회계라면 학교는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한 회계다. 그리고 우리들은 매년 2월에 재계약을 해야 했다. 해마다 고용되면서도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었고, 눈치받는 자식 같았다.

누구는 이쯤에 사례를 한다는데… 누구는 이쯤에 무엇을 한다는데… 이런 얘기들이 나올 때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란 끝도 없었다. 정규직은 교육청에서 급여가 나오지만 우리같은 비정규직은 학교 예산에서 급여가 나온다. 그래서 예산을 세울 때쯤 '예산이 없다', '비정규직 급여가 너무 많이 나간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내가 잡무처리 해 가면서, 내 자리 찾기 위해 일도 맡아 해왔는데 해마다 계약이 되느니 마느니, 호봉이 올라가느니 마느니, 이런 걱정까지 해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내가 비정규직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구 육성회 직원인 난 학교에서 채용한 정식직원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모른다.

교육청에서는 우리를 1년짜리 단순계약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1년 동안 근무하고 재계약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계약만료에 의한 계약해지'였다. 내 근로계약서 상 계약해지 사유에는 "업무수행 효율성이 현격하게 감소되거나 지속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기타 학교장이 판단하여 담당직무에 부적절하다고 인정될 때"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야말로 학교장, 행정실장 재량에 따라 재계약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올해는 그 문구를 삭제하고 '근로기준법 30조 사항을 적용한다'로 명시하였다.

학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한마디로 '짤리지' 않기 위해 계약서상에 온갖 부당한 내용을 넣어도 감수해야만 했다. 2004년도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내온 지침은 더 더욱 황당한 것이었다. 일용단가를 올려주는 대신에 근무일수를 조정해서 365일로 나눠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주5일 수업에 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나야 구 육성회 직원이라 그나마 괜찮다고 하지만 상시근로를 인정받지 못한 나머지 직종은 한 달에 받는 급여가 60만원에서 많아야 100만원이었다. 조리종사원, 조리사가 245일, 그 외 전산보조, 교무보조 등이 275일, 행정보조가 365일 등이었다.

병가와 공가 부분이 생긴 건 개선된 것이지만, 1년 동안 병가, 공가를 얼마나 사용할까? 근로기준법상 소정근로일수 9할 이상이면 8일의 연차를 받는다. 교육청에서는 소정 근로일수를 정해놨으면서도 365일 동안 임금을 나눠서 준다는 이유로, 9할이 안 되어 연차가 없으나 6일 준다는 식이다.

언제까지 이런 어이없는 지침을 받고 살아야 하는지…. 그런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최상의 지침을 시달했다고 하고 있다. 그들이 275일만 근무하고 그 총액을 365일 나누어 받고 산다면 이렇게 만들까? 그들이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만들까? 비정규직을 위한 지침에 비정규직은 없었다.

분명 학교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은 365일 상시근로를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아야 한다. 함부로 해고하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 학교는 돈만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안에서 자부심을 찾고, 애착이 있어야 하고, 내 가족에게 떳떳한 직장이고 싶다.

가장 기본적으로 상시근무가 보장되어야 하고, 고용안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비서 역할도 없어져야 한다. 차접대로 비롯된 충남지역의 기간제 교사 사례가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다. 학교 내 자판기 설치나 그에 따른 대안을 내와야 한다.

또한 모성보호법을 지키기 위해 학교 자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나 교육부에 전담창구를 개설하여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시정 조치하는 상시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에겐 보건휴가, 출산휴가 90일, 육아휴직이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행태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내 비정규직이 내 밑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행정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한 선생님들과 행정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고,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번에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되면 기간제나 단시간 근로자는 그냥 그대로 정상적인 형태인 것처럼 남을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상시근무를 인정받을 수 없으니 싸울 수 없고, 이렇게 한다면 파견으로 돌리면 그만일 것이다.

실제로 한 교육청에서 용역 및 파견직을 고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시달했다가 철회된 예가 있었다. 3년 동안 고용하고 3개월 휴지 기간을 준 다음 다시 3년을 고용한다. 그 3년도 고용안정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3개월 휴지 기간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럴싸해 보이는 휴지 기간이지만, 3개월 동안은 어떡해서든 기존 사람들이 일을 나누어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 경영주를 파견직으로 받아서 3개월 휴지 기간을 둔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말이다.

또한 문제가 생기면 회사나 학교는 용역업체를 바꾸면 그만일 것이다. 어쩌면 중고등학교도 입찰을 받아서 업체를 선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 최저낙찰제일 텐데 학교비정규직에게 실질임금의 문은 지금도 그렇듯이 멀기만 하다.

파견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기형적으로 중간착취를 하고 있는 회사를 살찌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돈을 직원에게 준다면 소비도 그만큼 늘어날 테고, 결국엔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김경숙 기자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처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경숙 기자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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