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인근에 도착한 장판수와 계화는 말에서 내려 조심스레 산을 타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청군의 수는 더 늘어나 있었고 경계도 더욱 엄해져 있었다. 장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암문을 찾아 길게 자란 풀숲 사이를 조심스레 이동했고 계화는 그런 장판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뒤쫓았다.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우.”
풀숲을 헤치며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른 장판수는 순간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역시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십 여 명의 청나라 병사들이 몰려 있었다.
“뛰어!”
장판수는 계화의 손목을 움켜잡고서는 정신없이 내닫기 시작했다. 이를 잠깐 동안 멍하게 바라보던 청나라 병사들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서 네 명은 활을 찾았고 나머지는 장판수와 계화를 뒤쫓기 시작했다. 활을 잡은 청나라 병사들은 뒤쫓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맞힐까 두려워 포기했지만 손목을 잡힌 채 뒤처진 계화와 앞서간 청나라 병사와의 거리는 불과 열 걸음도 안 되었다. 장판수는 더 이상 달려보아야 등에 칼을 맞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쪽이 문이니 어서 가라우!”
장판수는 계화의 손목이 부러져라 움켜잡더니 앞쪽으로 내던지듯 밀어버림과 동시에 칼을 앞으로 쑥 뽑아들었다. 그 바람에 앞으로 무작정 달리던 청나라 병사가 장판수의 칼날에 그대로 배가 꿰뚫리고 말았다. 장판수는 매서운 솜씨로 칼을 빼어내었고 땅바닥에 쓰러진 청나라 병사의 뒤로 나머지 병사들이 장판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칼에 능한 장판수라지만 딱히 의지할 곳 없는 풀숲에서 동시에 여러 명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좌우에 갈라선 청나라 병사가 휘어진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장판수는 그 틈을 노려 몸을 빼낸 후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창을 든 청나라 병사 두 명이 합세하면서 장판수의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칼만 든 자들이라면 어찌 하겠지만 이대로는 아니된다!’
창날이 사납게 앞으로 내어 뻗어졌고 장판수는 저도 모르게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 때를 노려 뒤로 돌아선 청나라 병사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장판수의 어깨를 노렸다.
‘쉬-익!’
그와 동시에 바람소리를 내며 장판수를 노린 청의 병사를 쓰러트린 것은 성위에서 쏜 누군가의 화살이었다. 청나라 병사들은 자신들이 너무 성 가까이로 접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둥지둥 달아나 버렸다.
“어이! 이게 누군가! 내가 네 놈 목숨을 살려줄 줄이야! 껄껄껄!”
화살을 쏜 사람은 평소 장판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장 김돈령이었다. 장판수는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래 다음에 이 은혜는 꼭 갚겠시요!”
장판수와 계화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도승지에게 일의 전말을 고했다. 도승지는 광교산에서의 일을 듣자 상기된 표정으로 계목(啓目 : 임금에게 올리는 약식 보고서)을 적어 올리는 손을 잠시 멈추고서는 장판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승전했다는 것이냐? 여기에서는 뜬소문이라 들었기에 믿기지 않는구나.”
“확실히 승전은 했습니다. 하오나….”
병사들의 피해가 커 더 이상 진군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자 도승지는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길고 긴 장판수의 보고와 함께 가지고 온 김준룡, 이시방의 장계에 비하면, 애써 남한산성으로 온 계화의 말은 매우 소략하기 그지없었다.
“저는 교서관에 있던 무수리 옵니다. 오랑캐들의 진지에 잡혀 있다가 탈출했사온데 그들이 그믐날과 하룻날에 한양을 노략질하고 인가를 불지를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따로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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