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전경.남소연
2017년 서울의 강남구 압구정동. 김아무개씨는 현재 시가 10억원 짜리 54평 ○아파트에 4년째 거주하고 있다. 재테크 차원에서 돈을 빌려 인근 7억원 짜리 아파트를 한 채 더 구입하려 했지만 좀처럼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현재 매년 내고 있는 보유세만 해도 1000만원이다.
만약 운이 좋아 2년 사이에 7억원 짜리 아파트에서 시세차액 9000만원을 챙기더라도 2070만원 가량은 양도소득세로 내야 한다. 또 2년 보유하고 있는 동안만 1400만원의 보유세를 납부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인 점을 감안하면 2년 동안의 이자비용만 7000만원이다. 결국 적자가 날 수밖에 없어 김씨는 새 아파트 구입을 포기했다. 그는 강남불패 어쩌고 하던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현재의 지가와 정책, 금리 등의 조건이 12년 뒤에도 그대로 반영된다고 할 때 그려볼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다. 물론 10억원 가량의 부동산에 실효세율 1%가 적용된다는 가장 단순화한 모델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12년 뒤 '보유세 실효세율 1% 시대'가 도래하면 가능한 현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효)보유세율 1%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5·4 부동산 대책이 관심을 끄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보수신문과 일부 부동산 부자들이 '날뛰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더 이상 부동산을 통한 투기가 거의 불가능해 지는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다른 반응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정부 대책의 핵심은 바로 보유세의 인상에 있다. 보유세 실효세율 강화 로드맵은 2005년 0.15% 부과로 시작해 2008년 0.24%, 2013년 0.5%를 거쳐 2017년 1%로 끝을 맺는다. 2017년의 실효세율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보유세율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서 실효세율이란 실제 부동산의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1억원 짜리 부동산에 100만원의 세금을 물었다면 실효세율이 1%라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적 수요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투기적 수요 과잉으로 인한 가격 상승세도 멈출 수밖에 없고 양도소득세도 0 수준에 가까워 질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을 통해 더 이상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두는 일은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 투기적 수요자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이 시장에 매물로 나옴으로써 상대적 공급량도 늘어나게 된다.
보유세 강화→투기수요 억제→상대적 공급량 증가→가격하락 예상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보유세 인상에 따른 부동산 가격인하의 혜택은 1차적으로 집없는 서민들이 보게 된다. 1가구 1주택인 중산층에게도 큰 부담은 없다. 보유세 실효세율 1%를 기준으로 할 때 1억∼2억원 가량의 주택을 소유한 중산층에게 연간 보유세 부담은 100만∼200만원 수준이다. 월 단위로 계산하면 8만∼16만원 정도다.
일부에서는 집가진 서민들의 부담이 늘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일정 가액 이하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유세를 면세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대처하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하며 서민들의 조세저항 우려를 일축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토지와 건물을 뭉뚱그려 세금을 물리는 방식 때문에 다소간의 공급위축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부동산 가격 변동의 근원은 땅값의 변동 때문인데 가치가 하락하는 건물에까지 세금을 부과시킴으로써 주택공급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윤상 경북대 교수는 "정부가 가진 과표자료가 기준시가라는 토지, 건물 통합형 지표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토지 건물 비분리 지표로 계속가면 주택 공급위축을 낳는다는 시장주의자들의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토지와 건물에 대한 세금을 분리해 토지에만 과세하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제는 국회의 부자 눈치보기와 정권 교체... 정부 "의지 강력"
가장 큰 걱정은 현재 정부가 짜놓은 '로드맵' 대로 실현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처럼 국회의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용두사미가 되거나 정권의 교체로 전면 재검토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들 표가 부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데 국회는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그들이 반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또 보유세 현실화 시기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서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아쉬워했다.
아예 경실련은 "임기 내에 보유세 실효세율 1.0%를 목표로 거래세 완화를 위한 구체적인 세부 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은 "작년에 봤겠지만 보유세제를 개편하는데 얼마나 저항이 컸었느냐"며 "단시간내에 1%로 한다면 저항이 엄청날 것"이라고 현실론을 들어 반박했다. 이 실장은 "사실 실효세율 1%라는 것이 평균적으로 봤을 때 1%라는 것이지 고가 부동산은 종합부동산세가 최고 3%까지 되는 것"이라며 전후사정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실장은 "이러한 결정을 했다는 것은 정부의 의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좌초론을 일축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