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새끼 이쁘지? 나도 니가 이쁘다!"

자식 키워 봐야 부모 마음 안다는 말, 오늘 알았습니다

등록 2005.05.11 16:53수정 2005.05.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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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면 안 되는데…. 비 오면 안 되는데….'


하루 종일 수도 없이 하늘 바라보고, 시계 쳐다보면서 이 말을 되뇝니다. 오늘 다섯 살 제 딸이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소풍'이라는 것을 갔거든요. 유치원에서 가는 소풍이요. 전북 전주에 있는 박물관에 갔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침부터 하늘이 그리 맑아 보이지 않더니만 점점 잿빛이 되면서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비가 오면 유치원 선생님들이 어련히 잘 하실까, 자꾸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 한 켠에 걱정거리가 떠나질 않습니다.

자꾸만 비가 와 비를 맞는 딸아이가 상상이 됩니다. 집에 전화해서 아내한테 우산 들려 보냈느냐고 물었더니, 그만 방정 떨고 가만히 있으라네요. 어련히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겠느냐면서… 그래도 어린 자식 걱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예전 어머니, 아버지한테 무지하게 혼이 난 생각이 나네요. 사실 혼이 났다기보다는 큰 죄를 지었던 사건이었죠. 지금도 어머니는 뼈있는 농담으로 그 때 일을 상기시키곤 하지요.

제가 시골집에 가서 딸과 아들을 안아주고 그러면 어머니는 "너도 네 새끼 예쁘지! 나도 네가 예쁘다"고 말이죠.


a 시골집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시골집을 나설 때면 '꼭' 전화하라고 하십니다.

시골집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시골집을 나설 때면 '꼭' 전화하라고 하십니다. ⓒ 장희용


그 당시 사건은 이렇습니다.

시골집에 갔다가 올 때쯤이면 저희 부모님들은 집에 가면 전화하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을 말씀하시면서 '꼭' 전화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는데, 언젠가는 그만 전화하는 것을 깜빡했던 겁니다. 시골집에서 가져 온 물건 중에 처갓집에 가져다 줄 것이 있어 곧바로 처갓집으로 갔고, 어쩌다 보니 그만 전화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때마침 휴대폰도 차에 놓고 말이죠.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라구요. 순간 저와 아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직감적으로 '아차! 전화 안했구나!'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장인어른이 얼마간 통화를 하시는 동안 왠지 불안했습니다. 혼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제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몹시도 화가 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니 놈들이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아버지, 엄마 생으로 말려 죽일래. 우째 그려, 니들은 엄마, 아버지 생각도 안 허냐 이놈들아…."

아버지가 무슨 말인가 계속 하시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수화기를 가로채시더니,

"지금 택시 불러서 군산 갈려고 그랬다. 니들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택시라도 타고 가 볼려고 그랬다고. 전화를 해야 될 것 아녀 전화를….지금 니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반은 정신 나갔어 이 놈아… 밥 먹는다고, 지금 니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디 이 썩을 놈들아!"

어머니는 울먹이시면서 생전에 하지 않던 욕까지 하시면서 저를 호되게 나무라셨습니다.

그런데요, 불효막심하게도 어머니가 계속해서 뭐라고 하자 저도 모르게 그만 벌컥 화를 냈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구! 내가 일부러 안했나. 깜빡 잊어버린 걸 어떡해. 다른 때는 전화 했잖아. 깜빡 했으니까 그만해 좀. 그리고 내가 어린앤가, 어련히 알아서 잘 왔을라고 뭘 그렇게 걱정하고 그래!"

어머니는 "저녁 먹어라" 하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사실 저는 부모님의 자식 걱정이 어떤 것인지를 가슴으로 느끼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소풍 간 오늘, 혹여라도 비 맞을까 안절부절 걱정하는 제 마음에서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가슴에 담아 봅니다.

앗! 천둥이 치네요. 조금만, 조금만 참아라 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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