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화분 속에서 핀 은행나무정명희
해마다 봄이 되면 이런저런 많은 새싹들이 돋지만 그중 유난히도 아름다운 것을 하나 들라면 은행나무 잎을 들고 싶다.
'봄볕은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은행나무는 하얀 가지들 사이에서 잎이 한 번 돋기 시작하면 하루가 달리 초록이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은행나무도 손바닥 만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다가 큰애가 밤 오줌을 가리는 나이가 되어도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바람에 은행의 존재를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낮 오줌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깔끔하게 잘 처리했기에 밤 시간 또한 잘 견딜 줄 알았는데 큰애는 다섯 살이 되도록 그러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에서 ‘야뇨증’을 눌러보면 성인이 되어도 오줌을 못 가리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접할 수 있었기에, '혹시 내 아이도…' 하며 땅이 꺼지는 듯한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며 이리저리 수소문 하던 중 ‘은행’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기 전에 은행 네 다섯 알 구워서 먹이면 오줌을 안 싸요.”
“정말 그래요?”
나는 당장 실천에 옮겼다. 은행은 농협매장에 가니 있었고 깐 은행은 슈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옛날 어머니들이 보약을 달일 때의 심정으로, 제발 이것 먹고 밤에 오줌 싸는 것 좀 졸업했으면 하며 아이에게 은행을 먹였다. 다행히 아이도 은행을 잘 먹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은행을 먹고 잔날 아침, 우린 난생 처음 느끼게 된 보송보송한 기저귀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이 또한 오줌으로 질척한 기저귀가 아닌 깔끔한 기저귀를 벗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였다.
아이의 야뇨증을 완화시켜주자 내게 있어 은행나무는 관상수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봄에는 어쩜 이렇게 기특한 나무가 다 있나 하며 세심히 살피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였는데 우연히 은행나무 밑에 은행잎이 두세 개 가량 핀 작은 은행나무를 발견하였다.
견물생심. 나는 당장 주변의 꼬챙이를 주어서 어린 은행나무를 캤다. 어린나무를 뽑아드니 나무뿌리에 은행 껍질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은행 한 알이 땅속에 묻혀서 싹을 틔운 것이었다.
캐낸 어린 은행나무를 집으로 가져와 화분에 심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겨 다른 곳의 은행나무 밑도 살피니 두 그루가 더 보였다. ‘심봤다’의 기분으로 그것들을 캐서 집에 가져오니 합이 세 그루가 되었다.
‘새엄마’를 만나서 턱없이 좁은 화분 속으로 옮겨졌지만 세 그루의 은행나무는 서로를 의지하며 무럭무럭 자랐고 가을이 되자 노란 잎을 떨구는가 싶더니 겨울눈을 품은 채 지난 겨울을 났다. 그리고 이 봄, 나는 과연 저 겨울눈에서 새 잎이 날까 내심 조마조마하였다.
겨울눈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영양이 부족해서 잎은 피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였다. 동향이라 빛이 부족해서 조금 늦게 피었을 뿐 어린 은행나무는 새 잎을 피웠다. 그것도 지난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잎을 피웠고 피우고 있는 중이다.
“00아, 은행잎 예쁘제. 너의 기침을 멎게 해주고 밤에 오줌 안 싸게 해준 잎이야.”
덧붙이는 글 | 은행잎은 방충제로도 그만입니다. 개미가 있을 경우 은행잎이나 은행을 구석구석 놓아두면 없어집니다.
그리고 밤오줌을 늦게 가리는 아이나, 기침가래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행을 장기 복용하거나 할때는 한의원에 문의해보고 적정한 양과 적정한 복용법을 안내 받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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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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