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73

남한산성 - 닭죽 한 그릇

등록 2005.05.13 17:02수정 2005.05.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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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이고!”

비변사에서 때 아닌 통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이조판서 최명길이 지어 가져온 청에 항복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보고서는 이를 찢으며 통곡하는 소리였다. 최명길은 쓴 웃음을 지으며 묵묵히 찢어진 국서를 이어 붙였고 다른 대신들은 김상헌에게 화를 내며 윽박질렀다.


“대감이 전부터 척화를 얘기하여 나랏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적진에 가시오!”

모질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김상헌의 대답은 상대를 탓하지 않았다.

“내 자결조차 못했으니 적진에 보내어져 죽게 된다면 그대들의 은혜가 아닌가!”

김상헌은 그 길로 인조에게 가 통곡하며 국서를 찢은 죄를 물어 자신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항복은 아니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상헌의 피 끊는 호소에 자리에 있던 대신들 중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지만 이미 조정의 대세는 항복으로 기울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성안에 갇혀 가뜩이나 부족한 보급에 시달리던 병사들의 사기는 거의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를 아랑곳 않는지 성벽에 의지하여 힘없이 기대어 있는 병사들의 다리를 타 넘으며 장판수가 맹렬히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고 그 뒤를 시루떡이 헐레벌떡 뒤따르고 있었다.


“이보라우! 김돈령이 어디있네?”

병사들은 힘없는 손짓으로 성 아래를 가리켰고 장판수는 또 다시 맹렬히 뛰어 내려갔다.


“보소 보소 장초관요! 제발 좀 참으시오!”

시루떡이 쫓아가며 소리쳤지만 장판수는 막무가내였다. 드디어 김돈령을 발견한 장판수는 한 마디 말을 건네는 수작도 없이 다짜고짜 덤벼들어 그를 넘어트린 후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 망할 자식! 그래 내 공을 가로채고 윗사람을 속여 부장에서 사과(司果 : 정 육품 무관 벼슬)가 되었다고? 죽도록 고생한 난 뭐란 말이냐?”

헐떡이며 뒤따라온 시루떡이 겨우 장판수를 떼어 놓았고 얼굴이 피범벅이 된 김돈령은 그 틈을 타 재빨리 몸을 빼내어 도주해 버렸다.

일인 즉, 장판수와 다툼을 벌인 내관은 김돈령을 시켜 계화를 데려갔고 호기심이 생긴 시루떡이 몰래 그 뒤를 쫓아가 보았다. 행궁으로 가는 바람에 시루떡은 더 이상 뒤를 밟을 수 없었지만 그 이후 우연히 듣게 된 소식은 어떠한 공으로 인해 김돈령의 벼슬이 크게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장판수가 앞 뒤 가리지 않고서 김돈령을 찾아가 짓이겨 놓은 것이었다.

“어찌 이리 사람이 무모하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소. 말을 전한 나만 죽일 놈이 되었소.”

시루떡이 한탄조에 장판수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저 놈이래 활을 쏘아 날 구한 공을 크게 떠벌였을기야. 그 내시놈도 한 몫 단단히 했겠지!”

그 때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지도 않은 김돈령이 자신을 따르는 한 무리의 병사들과 함께 되돌아왔다.

“야! 장판수! 목숨까지 구해준 날 이렇게 할 수 있나! 네놈이 더 이상 살기 싫은 모양인데 소원대로 해주마!”

장판수는 홧김에 무턱대고 저지른 일이 커져버렸음을 깨달았지만 싸움실력과는 달리 상황을 호전시키는 태도에 대해서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

“거 몇 대 맞은 거 가지고 그럽네까. 내래 가만 있을테니 맞은 만큼 치시오.”

김돈령은 더욱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저 놈을 꽁꽁 묶어라! 주리를 튼 후 멍석말이를 하고 성 아래로 던져 버리겠다!”

병사들이 장판수에 달려들라는 찰나 하늘에서 무엇인가 바람소리를 내며 지나가서니 기와지붕에 맞아 벽력같은 소리를 내었다. 너무나 놀란 병사들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오랑캐들이 대포를 가져와 쏘고 있다아!!”

망루에 있는 병사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콰쾅 쾅쾅’거리는 소리로 산성 사람들의 기를 죽이며 대포알이 남한산성의 성벽과 안쪽 건물에 연이어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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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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