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가 동화책을 썼다고?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등록 2005.05.15 22:12수정 2005.05.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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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림

소설가 박완서가 동화를 쓴다고 하면 놀랄 사람들이 많을까? 하기사 그가 워낙 유명한 소설가이기에 그것도 동화를 집필했다면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을 법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그것도 이미 1979년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쓴 바 있단다. 이번 동화책 <자전거 도둑>도 그가 1979년에 출간했던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서 6편을 뽑아 새롭게 낸 책이다. 요즘은 아이들 중에도 문명의 이기에 편승하는 이들이 많을테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번쯤 읽고 마음의 정화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삶의 경륜과 가슴에 맺힌 한을 해학으로 단순화시켜 손주들에게 들려주듯이 소설가 박완서씨는 소설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심정을 동화 형식을 빌려 들려준다. 소설가로서의 경륜이 그대로 동화 쓰기에 녹아 있어 내용의 깊이는 물론이고 구성이나 인물 형상화가 뛰어나다. 그래서 정말 동화책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요즘 세상이 자꾸 아이들의 순수함을 앗아가다 보니 아이들이 조금은 삭막해졌다고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다 불순한 어른들이 만연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자전거 도둑>은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어릴 때 읽은 책은 무의식 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작용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좀더 순수하고 맑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어른들은 잊으면 안 된다. 적어도 자신들이 해맑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당장의 이익과 편리, 쾌락을 좇는 현대인의 의식을 비판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와 희망을 한 귀퉁이에 심어놓았다. 이 때문에 어른들이 읽어야 할 필수 교양서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표제작 <자전거 도둑>은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 전기용품점 꼬마점원 수남이가 열심히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무슨 일을 하든 도둑질만은 하지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품고 서울에 온 수남이는 이 골목에서 제일 먼저 가게 문을 열고, 제일 늦게 문을 닫는다. 또 이후에는 못다한 공부를 하는 성실한 청소년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수금하러 간 수남이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빗어넘긴 신사에게 뒷덜미를 붙들렸다. 세워놨던 자전거가 바람에 쓰러지면서 신사의 자가용을 건드렸다는 이유였다.

티 한점 없이 거울처럼 번들대는 차체를 면밀히 훑어 겨우 찾아낸 생채기 하나. 눈물을 떨구는 수남에게 신사는 '5000원을 가져오지 않으면 자전거를 주지 않겠다'며 무표정하게 말한다. 신사가 자물쇠로 잠근 자전거를 손에 번쩍 들고 질풍같이 내달리는 수남이.


숨을 헐떡이며 가게로 뛰어들자 주인영감은 "네 놈꼴이 꼭 도둑놈 꼴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듣고는 나무라기는커녕 "잘했다, 잘했어"하며 칭찬한다. 수남이는 혼란스럽다. 자물쇠를 깨뜨리느라 여념없는 주인 영감은 도둑놈 두목같고, 자전거를 들고 뛰면서 느꼈던 까닭모를 쾌감은 자신의 피에 도둑놈 피가 흐르기 때문인 것 같다.

<자전거 도둑>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우리편>, <옥상의 민들레꽃> 등 다른 동화에서도 박완서는 '도덕적으로 아이들을 견제해 줄 만 한 어른의 존재'를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작가는 "선인들의 곰삭은 지혜까지는 흉내내기 힘들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삶의 경륜을 해학으로 단순화시켜 손자에게 들려주듯 쓰고 싶었다"고 적었다.

또 이기적인 어른들에게도 경고를 하고 있는 듯하다. 혼탁한 세상, 정체성을 잃어가고, 도덕이 점점 소멸해가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 뜨거운 무언가를 선사해주는 <자전거 도둑>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자전거 도둑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다림,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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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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