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성안의 사람들이 모두 항복을 뜻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너희 군사들이 어찌 계속 저항을 하고 있느냐?”
용골대와 정명수는 자신의 앞에 온 신성인과 구굉을 보내 호통을 쳤다. 신성인은 영의정이자 체찰사인 김류가 보낸 중군의 책임자였고 구굉은 남성(南城)의 대장이었다.
“궁지에 몰린 적은 치지 않은 법인데 그대들이 계속하여 몰아치니 어찌 저항이 없을 것이오. 이는 그대들의 잘못이니 우리를 탓할 거 없소이다.”
구굉의 말을 정명수가 용골대에게 전하자 용골대는 크게 웃으며 답했다.
“조선은 이미 여러 번 우리를 속였는데 지금도 날 속이려 듬이냐? 너희들이 살고자 하는 뜻이 서로 간에 다름을 이미 알고 있는데 정녕 그러하다면 어떻게 황제폐하께 항복할 뜻을 전할 것인가?”
정명수의 통역을 전해들은 구굉은 그 말의 속뜻을 알 수 없었지만 신성인은 낯빛이 크게 변하며 음성마저 떨렸다.
“어떻게 되건 종묘사직을 그대로 보전해 주었으면 할 따름이오.”
용골대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대들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한다. 아직도 성안에는 척화를 주장하는 신하들이 있는데 어찌 너희들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 강화도가 우리 수중에 떨어져 성안 사람들의 식솔들이 우리 손안에 있으니 이제 모든 것은 너희들이 하기 나름이다!”
성안으로 다시 내몰리듯 돌아간 구굉과 신성인은 동성(東城)대장이자 훈련대장인 신경진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장차 성이 함락될 지경인데 조정대신 중 일부는 아직도 척화를 주장하니 우리라도 나서 일을 빨리 성사시켜야 합니다.”
신성인의 말에 신경진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러해도 우리가 직접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오. 북성의 원두표와 서성의 이시백에게도 말해 두겠지만 각 진의 장수와 초관, 병사들을 동원하여 임금 앞에 나아가 척화신을 내어 놓을 것을 독촉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그날 오후, 체부로 몰려든 수 백 명의 장수와 초관들이 칼을 땅에 놓으며 엎드려 한 목소리로 외쳐대었다.
“척화신을 내어놓고 종묘사직을 구하소서!”
“통촉하시옵소서!”
신경진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 뜻에 따라 동원된 군사들은 동문과 남문을 지키는 이들이었다. 원두표는 신경진의 뜻을 눈치 채고서는 피해 다녔고 이시백은 당당히 이를 거부했다.
“어명이 아니고서 어찌 군사를 움직여 불측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면전에서 이시백에게 면박을 당한 신경진이었지만 그 또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할 만큼 했소이다. 무슨 고집이시오?”
“그대들의 속뜻을 알고 있거늘. 그만 물러가시오!”
신경진은 이시백이 못마땅했지만 행여 후일을 생각한다면 대놓고 이를 부추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체부 앞에 모인 군사들을 향해 무엄하다며 큰 소리를 치던 도승지는 도리어 병사들에게 욕설로 모욕을 당하는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체부에 있던 장판수는 소란을 뒤로 한 채 서흔남과 함께 성 밖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려운 일을 다시 한 번 하게 된 그들을 독려하기 위해 저녁상을 차려 온 이는 계화였다. 장판수는 아무 말 없이 계화를 보았고 계화역시 그런 장판수를 마주 쳐다보았다.
“이거 어디서 이런 상을 차려왔소?”
계화가 차려온 것은 닭죽이었다. 대신들조차 끼니를 제대로 못 이을 상황에서 삶은 고기 약간과 닭죽이 나왔다는 것이 장판수와 서흔남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낼 음식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리로 내어주라 들었습니다.”
장판수는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종묘에 제사를 지낼 음식마저 내어준다는 것은 행여 나가서 원군을 데려온다 하더라도 이미 다 타버린 집에 물동이를 끼얹는 짓을 장판수가 도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뜻이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 말은 여기에 두고 하는 말이외다!”
서흔남은 단숨에 그릇을 비우며 트림을 했지만 장판수의 수저는 더디기만 했고 이를 바라보는 계화의 눈에 조금씩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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