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술 따르는 게 아직도 미풍양속인가?"

서울고법, "성희롱 아니다" 판결.... 여성부, 대법원 상고키로

등록 2005.05.27 16:48수정 2005.05.2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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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희롱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

성희롱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


술자리에서 여 교사에게 술을 따르라는 교감의 행위는 성희롱인가, 미풍양속인가.

경북 안동의 모 초등학교 교감 김아무개씨가 "교장에게 술을 따르라고 여교사에게 권한 것은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어서 이번 판결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특별11부(재판장 김이수 부장판사)이 지난 26일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상대로 낸 성희롱 결정처분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교감) 김씨의 언행은 교장에게서 술을 받은 여교사들이 술잔을 비우지 않고 답례로 술을 권하지 않자 '부하직원이 상사의 술을 받았으면 답례로 술을 권하라'는 차원에서 말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용인될 만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성희롱 여부는 쌍방의 연령이나 관계, 장소와 상황, 성적동기 여부와 당사자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재판부는 여성부 남녀차별위원회의 '성차별 시정권고' 결정이 행정처분이 아니라 행정지도일 뿐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원고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고가 일방적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것은 헌법에 보장돼 있는 원고의 인격권을 직접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피고인 여성부 남녀차별위원회 변호를 맡은 이명숙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교감이 회식자리에서 여교사를 지칭해 '제일 나이가 어린 여선생이 (교장에게) 술을 따라 드려라'라고 하는 것이 왜 성희롱이 아닌가. 법원이 이를 '우리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용인될 만한 것'이라면서 미풍약속으로 정당화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여자이기 때문에 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없다."

법원이 26일 회식자리에서 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권한 교감의 행위에 대해 성희롱이 아니라 '술자리 예의'로 봐야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피고인 여성부 남녀차별위원회 변호를 맡은 이명숙 변호사는 이처럼 개탄했다.


이 변호사는 2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선생님들을 향해 '교장선생님께 술을 따라 드리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맞지 여자를 지목해서, 그것도 '나이 어린' 여교사를 지목해서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성희롱"이라며 "재판부가 여전히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은 '딸이 아버지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술을 따르는 것이지 '외간 남자에게' 술을 따르는 것이 미풍양속이었나"라고 반문하면서 "법원이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에 대해 자의적인 해석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대법원에 상고할 것"

이복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국장도 "판단기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보여지지만 이번 경우는 '강요'와 '권유'의 기준을 놓고 봤을 때, 분명히 강요에 의한 '성희롱'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도 "이번 판결은 여전히 직장 내 여성들이 성희롱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당시 상황을 살펴봤을 때 분명 여교사는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고 보통의 여성들이 이런 경우를 겪으면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아직도 남성들은 '나이가 어떻든 간에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법원이 입증해주고 있다"며 "이런 남성들의 생각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는 대법원의 시대에 맞는 올바른 판단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이번 판결을 내린 재판부와 많은 남성들을 향해 "생각해 봐라, 여러분들의 딸이 직장에서 남성들로부터 '술따르라'고 강요를 받았다면, 그래도 '성희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말을 맺었다.

다음은 이번 '교감의 여교사 성희롱 발언' 사건 상황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과연 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권한 것은 성희롱이 아니라 '술자리 예의'로 봐야할지 판단해보길 바란다.

#장면 : 2002년 9월 경북 안동 모 초등학교 3학년 교사 전체회식자리

2002년 9월, 여교사 최아무개(31)씨는 당시 3학년 김아무개 부장교사의 초청으로 류아무개 교장과 김아무개 신임 교감 등 9명과 함께 교사 전체회식에 참석했다. 이때 남교사들이 먼저 교장에게 술을 따랐고, 교장도 참석한 여교사 3명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러나 회식이 진행되면서 여교사들은 승용차를 운전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에 교장이 따라준 술잔을 비우지 않고 있었다. 이를 본 교감은 "여선생님들, 잔을 비우고 교장 선생님께 한잔씩 따라드리세요"라고 말했으나, 여교사들은 그 말을 듣고도 자신들의 잔을 비우지 않았고 교장에게도 술을 권하지 않았다.

이후 남교사들끼리만 술잔을 주고받았고, 또다시 교감이 여교사에게 "여선생님들, 빨리 잔들 비우고 교장 선생님께 한잔 따라드리지 않고…"라면서 재차 말했다.

그 말에 여교사 최씨는 '술따르기'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히려고 상위에 비우지 않고 놓아뒀던 술잔을 비우고 상아래 내려놓고, 이외에 다른 두 여교사들은 결국 교장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최 여교사는 회식 중에 교감이 자신을 지목해서 "교장에게 필히 술을 따르지"라고 말했던 것에 속상해했고, 이런 내용을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교감의 술따르기 강요에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면서 시정신청을 내게 된다.

이에 대해 여성부 남녀차별위원회는 지난해 4월 교감이 여교사 최씨에게 유독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언행을 한 것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으나, 1심 재판부는 성희롱 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2심 재판부도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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