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랑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인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연애중독>

등록 2005.05.28 10:51수정 2005.05.2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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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 우리 나라에서는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처럼 인지도가 있지는 않지만 어쩐지 그냥 넘길만한 작가는 아니다. 물론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작가 중의 하나이니까.

위에 세 작가와는 다른 또 다른 매력적인 문체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녀이다. 그녀의 책은 대체적으로 에쿠니의 감수성과는 다른, 바나나의 멜랑콜리한 느낌과는 다른 무엇이, 야마다의 톡톡 튀는 문체와는 다른 그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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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해

그녀는 건조한 내용을 건조하게(때론 너무나 건조해 이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건조한 내용 속의 주인공들은 누구보다도 맹렬함이 느껴진다. 이런 묘한 대비가 어떻게 이루어질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로 <연애중독>을 읽어 보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특히 <연애중독>은 평범한 이혼녀의 사랑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액자식 구성과 함께 마지막 반전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30대 이혼녀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거울에 비추어 보아도 특별한 데가 없는 그저 그런 수수한 타입의 여자,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다. 그런 여자에게 어느날 유명세를 타는 탤런트 겸업 작가가 접근한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의 매너에 어리둥절해지지만, 여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취하듯 몸과 마음을 허락하고 만다. 알고 보니 그 남자, 학생에서 중년까지 다양한 여자를 '거느리고' 사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오류로 인해 서서히 그녀는 또 한번 다시 사랑에 공허하게 무너져 내리게 된다. 결말 부분에 이르서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의 집착으로 인해 쓰러지게 된다.

제발 하느님. 아니, 하느님 따위에 비는 건 그만두자. 제발, 제발, 나 미니즈키야. 이제부터 앞으로의 인생. 다른 사람을 너무 사랑하지 말자. 너무나 사랑해서 상대방도 나 자신도 칭칭 옳아메지 말자.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의 손도 잡지 말자.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짓은 하지 말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 본문에서



여기서 '상대의 손을 너무 꽉 잡지 말자'라는 말은 정말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공감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요즘 일본 소설, 기존의 가족관념과 가정관념을 반항하듯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야기가 많다. 개인화 속의 초(超)산업사회가 기존의 가족 제도만으로 모두 포용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반영? 아니면 차갑고 따끔한 자극만을 쫓는 세기말적 퇴행? 이 두 잣대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소설이 바로 <연애중독>이다.

사랑은 그런 것일까? 사랑의 감정이 마음속에 자리잡아 가기 시작할 때 그 부드러운 달콤함과 설렘은 이제 그 사랑을 정복하고 난 후에는 그 사랑의 마음에 냉정이 찾아오면서 서서히 상대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것이 사랑인가. 그런데도 사랑을 갈망하고 그리워하며 또 다른 사랑에 기대하는 인간이 바보인가? 하지만 단 사랑이 달콤한 맛만 주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만은 알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연애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여하튼 이 소설은 일본 대중문화에서 빗겨나 있는 듯하다. 순정 만화같은 멜로가 일색이 대중문학 사이에서 조금은 쇼킹하게 달콤한 유혹의 비극을 그렸으니 말이다. 일본 소설의 멜로의 환상이 지겨워질쯤 이 책을 손에 들고 벤치에 앉아 읽어 보길 바란다. 아마도 등 뒤가 저려오는 걸 느낄 것이다.

연애중독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창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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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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