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산꾼 그리고 도깨비들의 반나절

중경산악회, 정신지체 인강학교 학생들과 군부대 위문 행사 가져

등록 2005.05.30 01:14수정 2005.05.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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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야기 한다. 선악의 구별은 어렵지만 그 자체가 선인 천사 같은 아이들.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다. 도봉구에 위치한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시설인 인강학교 '천사'들이 하늘을 마음껏 날았다.


천사들은 중경고등학교 동문들로 이뤄진 중경산악회 회원들과 짝을 지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군부대를 방문했다. 한쪽의 날개만으로 힘겨웠던 날개짓이 이날만큼은 또 다른 한쪽을 만나 오래만에 푸르디 푸른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a 정신지체 인강학교의 천사같은 아이들과 산악회원

정신지체 인강학교의 천사같은 아이들과 산악회원 ⓒ 유성호

이들 천사들의 배움터인 인강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중경산악회는 29일 학교를 방문해 천사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고 파주에 있는 일명 도깨비연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천사들은 엄마와 잡았던 손을 놓고 새로이 하루를 돌봐줄 산꾼들의 손을 잡으면서 때로는 쑥스럽게, 한편으로 반갑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군부대 방문을 아는 듯 누구도 칭얼거리거나 때를 쓰지 않았다.

a 천사를 맡기면서 특성을 설명해 주고 있는 엄마. 걱정말라며 안심을 시키는 산꾼.

천사를 맡기면서 특성을 설명해 주고 있는 엄마. 걱정말라며 안심을 시키는 산꾼. ⓒ 유성호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위문 길, 아이들과 일일 돌보미인 산꾼들은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걱정 말라고 외쳤다. 학교버스 4대에 나눠 탄 천사들과 돌보미들은 쎄쎄쎄, 가위바위보 등을 해가며 마음을 열며 천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시큰둥하며 고개를 돌려 차창만 내다보는 천사, 좌석에서 폴짝거리는 천사, 집중이 어려운 천사들에겐 자연스런 모습이다. 에어컨을 튼 버스안에서 진땀을 흘리는 산꾼도 더러 있을 정도로 모두가 열심히 천사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a 부대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 모습. 모두 밝은 표정이다.

부대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 모습. 모두 밝은 표정이다. ⓒ 유성호

한시간 남짓 지나자 파주에 있는 부대에 다다랐다. 위병소에 있는 초병을 보자 아이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총을 든 군인을 오늘처럼 가까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부대에 도착하자 이번에 도깨비부대 병사들이 또 한명씩 결연을 맺었다.


든든한 군인 아저씨가 옆에 있으니 아이들의 표정이 의연해진다. 어쩌면 자신의 미래를 군인들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이들 천사들은 군인이 될 수 없는 처지다. 그러기에 군 부대 방문은 이들 인생에서 더없이 귀중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a 야호! 부대 안에 들어서자 좋아하는 천사들.

야호! 부대 안에 들어서자 좋아하는 천사들. ⓒ 유성호

도깨비부대 김현수 부대장은 천사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환영인사를 했다. "우리 부대에 와 주신 천사님들, 반갑습니다. 저는 이 부대의 아버지인 김현수입니다. 오늘 재미있게 보내고 가세요" 환영인사가 끝나자 천사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고마움을 전했다.


장소를 연병장으로 옮긴 천사들은 도깨비부대의 자랑인 특공무술 시범을 보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왓장이 바스러지고 각목이 동강나는가 하면 불구덩이를 넘나들며 펼치는 군인아저씨들의 멋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a 천사들, 산꾼들, 그리고 도깨비부대 장병들의 단체사진.

천사들, 산꾼들, 그리고 도깨비부대 장병들의 단체사진. ⓒ 유성호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 아이의 경우 몸을 흔들어 감탄을 표했고 멋진 장면이 나올 때면 우뢰 같은 박수를 쳤다. 특공무술이 끝난 후 천사들은 난생처음 군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만져보고 조작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은 천사표 자장밥.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부대에서 특별히 준비했다. 시원한 콩나물 된장국과 김치, 무채 반찬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영내를 자유롭게 돌아보면서 내무반에도 들어가는 등 병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a 특공무술을 보여주기전 부대장에게 신고하는 도깨비부대 병사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특공무술을 보여주기전 부대장에게 신고하는 도깨비부대 병사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 유성호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병사들과 헤어진 천사들은 아쉽지 않다. 아직 산꾼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부대에서는 천사들에게 기념이 될 수 있도록 건빵과 음료수를 하나씩 건넸다. 마치 보물인양 가슴팍에 꼭 안고 차에 오르는 천사들.

부대장과 장병들이 나와 손을 흔들며 마중을 했다. 제법 의젓하게 거수경례로 답례를 하는 천사가 있는가 하면 차창을 두드려 아쉬움을 나타내는 천사도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천사들과 산꾼들은 한마음이 됐다.

a 비록 한나절이었지만 다녀 온 이후 더욱 가까워진 모습. 마치 다정한 모녀같다.

비록 한나절이었지만 다녀 온 이후 더욱 가까워진 모습. 마치 다정한 모녀같다. ⓒ 유성호

다시 인강학교에 도착해 부모님들이 오기 전까지 산꾼들은 나무 그늘에서 아이들과 이야기 하면서 건빵을 나눠먹기도 하고 제 딸인양 업고 이곳 저곳을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때론 모녀처럼 다정히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천사들은 오늘 밤 어떤 꿈을 꿀까? 멋진 국군이 되어 초병을 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지나 않을까? 꿈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천사와도 같은 민혜"
한 산꾼의 후기

저에겐 오늘 반나절이 주는 의미가 다른 어느 날보다 크다고 느껴집니다. 의정부 행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잡아 타고 가까스로 인강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인강학교 학생들과 산악회 회원들이 짝을 이뤄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난 어떤 아이를 맡아서 오늘 하루를 같이 지낼까 하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에 핑크색 칠부바지에 같은 색 조끼를 입은 여자아이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경을 쓴 모습과 눈을 간신히 뜨고 있는 듯한 표정에 시력이 많이 나빠 보였습니다.

얼굴도 약간 일그러진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맘 속으로 저 아이를 내가 돌봐야겠구나 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아이의 이름이 불려지며 제 짝궁이 되었지요.

이름은 오민혜.그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자 얼른 제 손을 맞잡습니다. 버스에 올라타 앉고부터 민혜는 제 손을 잡고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쉬지않고 손바닥을 마주치며 두들기는가 하면 마치 지압을 해주듯 꾹꾹 누르기도하고 쥐락펴락을 반복하는 등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았습니다.

몇마디 말을 붙였지만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뿐 긴 대화는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부대에 도착해 부대소개를 담은 홍보영상물을 보고 연병장으로 이동해서 무술시범을 보았습니다.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에 방문객들을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을 보니 5월9일 군에 간 아들 생각이 나서 금세 마음이 울렁거리며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배식을 받을때도 아들같은 사병들의 모습에 마음이 짠함을 느끼고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민혜는 내가 식판을 들고 올 때까지 먹지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건빵과 음료수를 받아들고 차에 오른 민혜는 건빵을 제 입에 넣어주고 자기가 마시던 음료수도 먹으라는 시늉을 하며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힘든 일정은 아닌 것 같은데도 민혜는 피곤함을 느끼는 지 눈이 감기는 것 같았습니다. 민혜를 끌어당겨 편히 잘 수 있도록 안아주고 두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민혜는 세상 모르고 새근거리고 잠을 잤습니다. 마치 천사와도 같은 민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민혜와 같이 찍은 사진을 담아 만들어준 배지를 찾았더니 민혜는 조끼에 달아 달라고 의사표현을 합니다. 민혜의 동생과 아빠가 민혜를 데리러 와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민혜를 꼭 한참을 안아주고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또 한번 마음이 짠함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 김영옥

덧붙이는 글 |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노고를 베풀어 주신 도깨비부대 김현수 부대장 이하 모든 장병들에게 인강학교와 중경산악회를 대신해 감사함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노고를 베풀어 주신 도깨비부대 김현수 부대장 이하 모든 장병들에게 인강학교와 중경산악회를 대신해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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