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94회

등록 2005.05.31 07:57수정 2005.05.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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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소리와 함께 펼쳐지면서 떨어져 내린 것은 쇠그물이었다. 이장 정도의 방원을 그리며 펼쳐질 수 있는 쇠그물은 괴이하게도 그 그물코마다 손가락 길이의 예리한 소도들이 빽빽하게 꽂혀있어 그 그물에 갇히는 순간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터였다. 사로잡으려는 그물이 아니라 아예 산채로 난자해 찢어발기는 쇠그물이었다.

"흡…!"


그는 쇠그물의 소도가 살갗을 긁는 고통에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무엇인지 모르고 일단 나무 뒤로 돌아가 피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쇠그물의 한쪽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그가 돌아선 나무둥치를 덮쳤고, 나무 둥치를 감싸고돌면서 그의 몸까지 닿은 것이다. 팔과 다리 쪽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 깊은 상처가 아니었고 살갗을 긁힌 것에 불과했지만 왼쪽 팔뚝에서는 피가 흐르는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더할 나위 없이 빨랐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주었던 쇠그물의 소도들이 나무둥치에 박혀 잠시 주춤하는 순간을 이용해 그의 몸은 빠르게 나무를 타오르고 있었다. 헌데 없었다. 아무도 없이 쇠그물의 끝은 탄력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니 올가미나 독노전, 쇠그물은 일종의 덫이었던 것인데, 그것은 사람이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올가미가 움직이는 순간 독노전이나 쇠그물이 덮도록 설치해 놓은 것 같았다.

(놓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미 추격은 끝난 일이었다. 아주 간단한, 사냥꾼의 덫보다 약간 더 정교한 덫에 걸려 시간을 지체하자 그 자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담천의는 나뭇가지에 서 있다가 허탈한 심정으로 지면으로 내려섰다. 아마 그 자는 이미 이 숲을 벗어나 산기슭을 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상대가 혼자가 아님을 알아 차렸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추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잡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에 속한 자들이며, 왜 자신을 노리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렇게 상대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추적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몰랐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자신을 추적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들을 추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았을 터였다.

---------------
구효기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통천신복이니, 만박거사라느니 거창한 외호를 붙여주었지만 그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 생각했다. 역리(易理)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주위의 정황판단과 막대한 정보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그가 예견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감응(感應)이라는 특출한 능력과 후천적으로 노력한 박대정심한 학문은 신복이란 칭호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의 생각이란 것도 잘못된 것이었다. 점이란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저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일 뿐이었다. 오히려 신검산장으로 가는 그를 보며 불안했다. 막연한 불안감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겁이 나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갈인규의 치료 덕으로 이미 그의 몸은 거반 다 회복되었다. 부상을 당한지 닷새 만에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그는 구양휘 일행을 끌고 장안루를 떠나 마장(馬場)으로는 화북 최고라는 황가마장(黃家馬場)의 후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신변안전도 문제였지만 그는 한시도 쉴 수 없는 몸이었다.

"자네가 도와줄 일이 있어."

구효기는 마주 앉아 있는 구양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도영은 강인한 체력과 젊기 때문이었는지 정상으로 회복되어 여전히 구효기의 뒤에 서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료하던 터였소. 납치된 두 아가씨의 일이오?"

이미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구양휘로서는 담천의를 보아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무슨 까닭인지 구효기는 여러 차례 말렸던 것이다. 누구에게 어디로 납치되었는지 조사 중이니 기다려달라고 했으니 아마 그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들은 무사히 돌아왔다고 소식이 왔네."
"무슨 말씀이오?"

그녀들은 납치된 것이 아니었나? 구양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야."

구효기는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구양휘는 이제 입을 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문제가 복잡해졌어. 어쩌면 지금 담공자가 위험할지 모른다는 것이지. 이틀 전 개봉의 시장 옷가게에서 여섯 명의 남녀가 피살되었네. 여섯 명 모두 일행인 듯 보이는데 한사람에게 당했네. 그것도 일다향 정도의 짧은 시각 동안에 말이지."

소문은 이리도 빠르다. 하지만 구효기가 가진 정보망은 너무나 치밀해서 전달되는 시간만 아니라면 사건이 발생된 순간에 알 수 있을지 모른다.

"더구나 그 여섯 명 중에는 대두자와 수조자도 포함되어 있었네."
"대두자와 수조자라면 복건(福建)의 이괴(二怪)라 불리던 자들 말이오?"

"그렇네. 그들까지 포함된 여섯 명이 단 한 인물에 의해 피살되었단 말일쎄. 여러 가지 의문점은 있지만 그들을 죽인 사람이 담공자라고 확신하고 있네."

"천의가?"

구양휘는 놀라웠다. 그의 무위를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복건이괴라는 두 괴물이 포함된 여섯 명을 일다향 정도의 짧은 시간에 죽이는 일은 자신이라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는 왜 개봉에 있었을까?

"그는 신검산장에 있는 것이 아니었소?"

"엿새 전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났네. 그는 무엇인가 알았고, 무엇인가 찾고 있는 듯 보이네. 헌데 누군가가 그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꽤 어색한 침묵이었다. 그 침묵을 깨야 할 사람은 구양휘였다.

"이제 그가 누군지, 왜 구숙이 그에게 그토록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소?"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것이다.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한 언젠가 구효기가 스스로 말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던 터였다. 담천의는 스스로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구효기는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에게도 말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할 수 없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구효기 역시 이제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신검산장에서 터져 나올 만큼 터져 나왔고,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구효기에게 있어 구양휘 일행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준비했던 모든 안배가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이제는 끊어져 버렸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풍철영으로부터 소상하게 내용을 전해 들었고, 그가 왜 조용하게 그곳을 떠났는지 짐작도 되었다. 어쩌면 구양휘 일행은 그와 자신들을 이어줄 끈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 마지막 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과거 균대위란 조직의 수장이었던 담명 장군의 아들이네."
"그 말은 들은 적이 있소. 하지만 균대위는 뭐요?"

구양휘는 담천의와 장안 관왕묘에서 나온 뒤 둘만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의 부친이 담명이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무림인의 이름이 아니라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의숙인 구효기가 관(官)에 몸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바였으니 그런 연고로 관련이 되어 있는 줄 짐작만 하고 있었던 터였다.

"초혼령을 알지?"
"천의가 가지고 있지 않소?"

"초혼령주가 바로 담명 장군이셨네."

구효기는 구양휘의 놀람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구양휘 일행은 그의 마지막 끈이었다.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일어난 이야기부터 초혼령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사연. 담가장의 혈사. 균대위가 사라지고 그 이면에 있었던 비원에 자신이 몸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구양휘의 놀람은 컸다. 그 중에는 이미 들은 말도 있었고,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의혹도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 있었던 이야기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요사이 백련교도들의 준동이 시작되고 있는 까닭도 알 수 있었다.

"천의가 말한 사부는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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