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별> 서평에 대한 저자 임동헌의 반론문

강태성 기자가 쓴 <'잘난 다수'가 읽어야 할 '소수' 이야기>에 대해

등록 2005.06.04 12:14수정 2005.06.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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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 29일 강태성 기자가 쓴 <'잘난 다수'가 읽어야 할 '소수' 이야기> 제하의 기사에 대한 <별>의 저자인 소설가 임동헌의 반론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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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난 다수'가 읽어야할 '소수' 이야기

기자는 팩트(fact)로 말하는 직업이다. 기사화의 출발이 선의에 있다 하더라도 팩트의 오류를 방어할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기자는, 특히 예술 분야 담당 기자의 경우 독법(讀法)의 깊이가 담보되지 않는 한 늘 오독(誤讀)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오마이뉴스>는 졸저 <별>을 리뷰함에 있어 불행하게도 이 두 가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잘난 다수'가 읽어야 할 '소수' 이야기>라는 선의의 리뷰 자세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작가의 이력을 제공하고, 작품의 함의를 꿰뚫지 못한 비평적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선의를 스스로 훼손한 것이다.

먼저 오마이뉴스는 '소수임을 자청하는 소설가가 있다. 바로 임동헌이란 작가이다'라고 적고 있으나 나는 '소수자의 삶'을 소설화했을 뿐 '나는 소수'라고 '자청'한 적이 없다. 작가는 작가일 뿐이다. 작가가 다수자 소수자의 어느 영역을 '자청'한다면 어떻게 다수자와 소수자 모두를 볼 수 있고, 그들 사이의 간극을 묘파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작가가 특정 섹터(sector)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오마이뉴스는 '<기억의 집>이라는 그의 첫 번째 작품', '그 이후 10년이란 공백 기간을 가지며 두 번째 작품 <별>을 내놓았다'고 적고 있으나 이는 사실 관계가 전혀 다르다. <별>은 나의 두 번째 창작집이다. 중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 형태로서 두 번째일 뿐 나는 문단 데뷔 이후 20년 동안 장편소설, 에세이집, 문학기행집, 창작집 등 15권을 출간했다.

물론 15권의 양적 생산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으나 오마이뉴스는 작가가 10년 동안 공백 기간을 가졌다고 단정함으로써 20년 동안 줄곧 독자와 소통해 온 작가의 삶을 휘발시켜 버렸다.

작가가 작품을 수년간 발표하지 못했더라도 절필을 선언하지 않은 이상 그것은 '집필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오마이뉴스의 시각에서 본다면 기자가 장기 취재중이어서 기사를 자주 쓰지 못하는 것 역시 기자의 공백으로 치부해야 마땅한 일이다.


오마이뉴스는 '이 작품은 소설가 임동헌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단다. 그걸 보면 임동헌 그 자신은 아웃사이더다'라고 적고 있다. 작가는 관찰자이다. 관찰자이므로 작가는 자신의 삶조차 관찰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은 엄연한 픽션 장르이므로 작가는 자신의 삶조차 문학적 형상화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작가가 자신의 삶을 차용해 소설화할 때, 그 삶의 일부가 아웃사이더적인 요소라고 해서 '그걸 보면 임동헌 그 자신은 아웃사이더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아웃사이더로 지칭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네거티브로 받아들여지느냐 포지티브로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서 말이다.


이를 테면 소설의 내용에 소설가의 삶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웃사이더냐 아니냐로 구분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 표현은 경향신문의 조장래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가치관을 확인한 후 제일 먼저 쓴 것이다. 그러나 조장래 기자는 '중심보다는 주변부에 어울린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는 인터뷰 내용을 차용하면서 상징의 한 방법으로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는 그런 맥락을 전혀 확인하지 않은 채 소설 속의 이야기가 그러하므로 작가도 아웃사이더라고 단정해 버렸다.

오마이뉴스는 또한 '다른 이들이 그를 왕따시킨 게 아니라 소수가 바로 자신의 자리라고 믿는 게 아닐까'라고 의구심을 제시한 후 '그렇게 생각된다'고 적었다. 문학 기사가 갖춰야 할 덕목을 도외시한 위의 표현대로라면 '왕따당한 사람=소수자'라는 논리가 성립되고, 작가 임동헌 역시 어떤 형식으로든 한국문단에서 왕따당한 작가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정반합의 기저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문단이 특정 작가를 왕따시키는 따위의 편협한 사고로 무장됐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불행한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쳐도 나 자신이 왕따당했다는 징후를 발견하지도, 그런 귀띔을 받은 적도 없다. 내가 만일 왕따 당한 작가라면 이 나라의 중추적인 문학전문 출판사가 나의 창작집을 출간했을 리 없을 것이다.

이와는 무관하게 '왕따=소수자' 논리가 성립한다면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 의견을 내는 대법관들 역시 '왕따'의 그룹에 속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왕따시키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마이뉴스는 소설이 문학이면서 이야기의 논리 축을 담당하듯이 문학 기사 또한 논리적 독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미필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별>에 쓴 '작가의 말'에서 '나는 거대담론에 급급해하지 않으면서 다중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대목을 인용한 후 '거창한 소재지만 전혀 거창하지 않게 이야기하며'라고 적었다. 기사대로라면 나는 거창한 소재를 거창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작가가 된다. 거창한 소재를 전혀 거창하지 않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작가가 소재를 육화하지 못했다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작가의 말'에서 '나는 거대담론에 급급해하지 않으면서'라고 표현한 것은 중단편소설이 갖고 있는 장르적 특성을 함의하면서 내 소설의 관념적 기류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한 '관념적 기류'는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 소설은 마땅히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성이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오마이뉴스는 그런 작품의 기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또한 <아이 러브 토일럿>을 '변비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기차 화장실을 애용하는' 이야기로, <나는 풍란을 키운다네>를 '아내를 기다리며 오피스텔에서 살아가는 대학 강사' 이야기로 간주하고 있다. <아이 러브 토일럿>은 사기꾼을 찾기 위해 기차를 타는 남자 이야기이지 변비증상을 해소하기 위해 기차 화장실을 '애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아이 러브 토일럿>은 아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찾는' 이야기이며, 이 소설의 축은 '아내'가 아니라 풍란처럼 뿌리를 드러내고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오마이뉴스는 소설의 곁가지를 축으로 보고, 축은 곁가지로조차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전체적으로 다른 매체의 기사를 짜깁기한 흔적이 뚜렷하다. 물론 그것은 법률적인 것과 구별되지만, 기자의 세계에도 인터뷰 등을 통해 그 기자만의 독특한 해석을 무단 인용하는 것은 기자 정신의 ABC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만일 부득이하게 인용할 경우에도 작가와 작품의 의미를 오도하는 인용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다른 매체의 창의적인 표현을 가져오면서 그 창의적인 표현의 앞뒤를 잘라냄으로써 팩트의 오류와 작품을 오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마이뉴스의 <별>에 대한 기사는 시민기자가 쓴 것이라는 점에 대해 나는 그것이 '정상참작' 요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매체든 모든 기사의 책임은 편집인이 지는 것이고, 그 책임의 범위가 더욱 클 때는 발행인이 지는 것이 관례이다. 정규직 상근 기자든 시민기자든 그 기사의 열독율은 매체의 제호에 의해 파생되는 것이므로 <별>에 대한 기사 역시 오마이뉴스의 기자적, 언론매체적 영향력에 의해 읽히는 것이다. 따라서 <별>을 리뷰한 기사에 대한 책임은 정규직 상근기자, 시민기자를 가릴 것 없이 기사 취사 선택권과 수정 권한을 가진 오마이뉴스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영향력 있는 매체로 성장한 오마이뉴스가 반론권을 겸허히 제공하고, 기사를 수정하겠다고 약속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오마이뉴스가 문화예술계 뉴스를 생산할 때는 특히 텍스트에 대한 치열한 독법과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 절차를 보다 깊이 있게 밟아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힘내라 한국문학'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유일한 응원이 될 것이다.

임동헌(소설가)

임동헌 지음,
문이당,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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