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근
첫 번째 봄 / 자전거를 사다
자전거를 샀다. 빨간 자전거를 샀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중고 자전거에 필(feel)이 꽂혔다. 10만원짜리 MTB였다. 장위동의 자전거 가게에서 구입을 하고 집(삼선교)까지 몰고 왔다. 높고 긴 언덕을 두 개 넘어서 왔는데 꽤 힘들었다. 옆으로는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등 돌아오는 길이 꽤 험난했다. 자전거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계획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시청 근처여서 아침 출근시간이면 한꺼번에 차들이 몰려나와 도로 정체가 무척 심하다. 그래서 버스 창가에서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항상 생각했었다. 이렇게 느릴 바에는 차라리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게 낫겠다고. 오늘 자전거를 구입하며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오토바이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자전거의 장점이 더 많았다. 우선 유지비가 안 들고, 운동도 될 뿐더러 음주운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친구가 생기면 뒷자리에 태우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페달을 밟을 수 있다는 낭만도 있다.
첫 번째 여름 / 빨간 애마, 서울시내를 질주하다
나의 빨간 애마는 오늘도 거침없이 서울 시내를 달렸다. 페달을 힘차게 꾹꾹 누르며 버스를 추월할 때면 옴짝달싹 못한 채 차에 타고있는 사람들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에서는 부러움이 물씬 풍겨났다. 막혀 있는 도로를 질주하는 나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얼마 전의 나처럼 자전거를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내가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삼는 걸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교통비도 아끼고 운동도 할 겸 구입한 건데 좀 특이해 보이는가 보다. 생각이 떠오르면 단박에 실행에 옮기는 단순과감성과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 무감각이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난, 오늘도 자전거 바퀴를 쌩쌩 돌려 회사에 도착했다. 나의 자전거 코스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삼선교 언덕에 위치한 집에서 다운 힐을 한 다음, 혜화로터리를 돌아 성균관대학교를 지나간다. 이 다음부터가 코스의 백미다. 성균관대 입구를 지나면 조상의 숨결이 남겨져 있는 창경궁이 나온다. 고즈넉한 창경궁의 돌담길은 비원이 있는 창덕궁의 돈화문을 거쳐 경복궁의 광화문까지 이어진다. 고풍스러운 옛길은 푸른 나무와 조화롭다.
햇살이 쨍쨍한 무더운 여름에도 이 길은 빽빽한 나무숲과 그 가지에서 뻗어나온 살찐 잎사귀가 햇살을 막아준다. 옛길의 풍취가 남아있는 고궁 돌담길에는 따가운 햇살뿐만 아니라 시끄러운 자동차의 소음도 침범하지 못하는 정적과 고요함이 있다. 그래서 이 길을 따라 머릿결을 날리며 달리는 기분은 매우 상큼하다. 고궁을 벗어나면 인사동이나 세종로 길을 따라 시청으로 향한다. 그러면 출근길도 이제 막바지, 빼곡히 들어찬 도심의 건물 중에 회사가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기다린다.
서울의 길이 공사중인 곳도 많고, 정비가 안된 곳도 많기에 오고가는 길이 꽤 순탄치만은 않다. 하지만 나의 빨간 MTB는 나의 두발이 되고 날개가 되어 구덩이나 돌부리를 피해 솟구친다. 때로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부딪히며 충격을 즐기기도 한다.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탓에 출퇴근 하면서 흘리는 땀방울이 굵어지지만 달리는 속도만큼 바람이 온 몸을 시원하게 한다. 오늘은 야근이라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새벽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가을, 그리고 겨울 / 날씨와 매연과 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