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순천만...아쉬움 남은 '순천'여행

오마이뉴스 연재기사 보고 '낙안읍성'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5.06.07 17:30수정 2005.06.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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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준비단계에 있습니다. '어디로 갈까?' 네 집이서 움직이게 되니 상의를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다는 '순천'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요즘 연재기사를 보고 '낙안읍성'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였습니다. 여행 지도를 펴고 가는 길을 살펴봤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찾아보았습니다. 지인과 함께 맛있게 생긴 상차림 사진을 보고 침을 꼴깍 삼키며 "먹고 싶다"를 연발했습니다.

가 볼 곳과 숙소를 꼼꼼히 살펴본 뒤 종이 한 장 가득 전화번호며 주소를 적어 놓았습니다. 하룻밤 자고 올 요량으로 짐을 꾸려 보니 짐이 자꾸 늘어납니다. 긴 옷도 한 벌 넣고 여유 옷도 하나 넣다 보니 가방하나가 가득 찼습니다.

집을 나서는데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남편은 함께 갈 지인의 집까지 걸어서 5분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작은 배낭이 무겁다고 투덜대더니 이내 짐을 나에게 넘깁니다.

저는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기에 배낭을 등 뒤로 멨습니다. 저의 그런 모습이 남편 딴에도 보기 민망했는지 얼른 다른 길로 접어듭니다. 저는 길 떠나기도 전에 좋은 기분을 해칠까봐 아무소리 않았습니다.

승합차에 타자마자 저는 짐을 들어다 주지 않은 남편의 흉을 보았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는 지인 중 몇 명이 저는 위로합니다. 여덟 명이 탄 승합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차를 가져가는 댁의 여자 분을 '차주 사모님', 운전석 옆에 앉아 가시는 교장선생님 사모님을 '조수 사모님'이라고 부르니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졸지에 차주사모님과 조수사모님이 된 그분들과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올 즈음 통행권이 안보여 일행 모두 찾느라 애를 써봤지만 통행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승합차 앞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그 서랍 뒤로 넘어 갔나봅니다.


통행료를 내고 사무실에 들어가 확인을 하고서야 환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그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원래 일정은 순천만의 일몰을 먼저 보려고 했지만 이미 저녁때가 되어서인지 모두들 저녁부터 먹자고 합니다. 우리는 미리 알아 놓았던 식당에 예약전화를 하고, 가는 길을 물어서 복잡한 골목에 위치한 그 식당을 찾아 갔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는 다른 분들께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먹으러 간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클 테니 기대하지 말고 가자고 일행끼리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런데 저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사는 충청도 청주에도 한정식을 잘하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순천은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살아있는 것 같은 회가 여러 가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곰삭은 김치며 젓갈도 입맛을 돋우니 마치 맛 기행을 온 듯합니다. 직접 석쇠에 구워 온 숯불구이는 후각까지 즐겁게 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기분 좋게 시작 되었습니다. 내친김에 우리는 숙소도 알아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곳에서 알려 준 숙소로 갔더니 어찌나 깨끗하고 정갈한지 마치 호텔에 들어 선 기분입니다.

다음 날 우리는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하루에 순천을 다 보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백제시대에 세워졌다는 선암사,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엿 볼 수 있는 낙안읍성, 어제 못 본 순천만 갈대 숲 이 우리가 세운 계획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상쾌한 아침공기와 함께 유쾌한 상상을 하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선암사에서 기도할 시간을 꼭 주셔야 해요"라고 말하던 지인부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숙연해 집니다.

단청도 다시 입히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대웅전과 TV에서 본 '해우소'에도 들어 가 보았습니다.

점심때가 되니 꽤 덥습니다. 떠날 때는 낙안읍성을 샅샅이 살펴보리라 생각했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힘이 들었습니다. 바깥쪽보다는 미술관 등 안쪽으로 자꾸 들어가게 됩니다.

a 이 정도면 고통이 느껴질만 하죠?

이 정도면 고통이 느껴질만 하죠? ⓒ 허선행

낙안읍성에서 하루를 다 보내도 모자랄 듯합니다. 관청 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포졸과 사진도 찍고, 죄인의 볼기짝을 자꾸만 만지는 꼬마도 찍어보았습니다. 그 죄인의 표정을 얼마나 잘 나타냈는지 고통이 실제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물가와 빨래터에서 여인네들이 정겹게 이야기를 하는 듯 소박한 풍경이 보입니다. 연꽃이 보이는 연못과 초가집 텃밭에 심어져 있는 양파, 돌담 밖의 미나리 등 제 어릴 적 동네 모습 그대로입니다. 돌담 골목을 들어서는데 단발머리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던 어릴 적 제 옛날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치 할머니 댁 고샅에 들어 선 기분입니다.

체험 민가에서는 새색시가 탔다는 가마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가마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놋쇠요강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합니다.

a 순천만 갈대숲에서 남편

순천만 갈대숲에서 남편 ⓒ 허선행

성곽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 우리 문화를 나타내주니 자랑스러웠습니다. 불쑥 들어서는 관광객들로 인해 그 곳에서 사는 분들이 불편할 수도 잇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순천만으로 향했습니다.

순천만 갈대숲도 장관이었습니다. 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겠지만 게가 어찌나 많은지 신기했습니다. 작은 구멍마다 제 집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가끔 나타나는 불청객의 손에서 달아나려 애쓰는 게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매화마을과 섬진강도 이번 여행의 멋진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재첩국도 먹어봐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한 번 더 가요." 우리 일행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똑같은 마음으로 더욱 즐거운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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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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