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자 유모씨의 범죄 행각이 드러나면서 누리꾼의 6할 정도가 사형제도의 존속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의 인면수심에 분노한 것은 누리꾼뿐만이 아닐 것이다. 동네 시장의 바쁜 길손에게 청하든 인권을 입버릇처럼 외는 헌법 연구자에게 청하든 반응은 한결 같을 것이다.
사실 제1심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는 사건의 약 80%는 살인자이거나 강도살인 치사자라고 한다. 가뜩이나 각박한 우리 사회에서 돈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자에게 일벌백계의 철퇴를 가하지 않는다면 험한 세상이 얼마나 더 험해지랴 하는 생각에 무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형을 선고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의 뒷모습에 대해서 누리꾼은 물론이요, 종이 언론도 그 무관심이 도를 넘는다. 하기야 죽어 마땅한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관심을 갖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학 초년생이었는지 아니면 대학에 들어오기 직전이었는지 분명치 않은데 아무튼 그즈음의 일로 기억된다. 괜히 남의 아르바이트를 돕다가 쉬는 시간에 버려진 책더미 속에서 책표지마저 떨어져 나간 책 한 권과 반쯤 남은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이를 밤새워 읽은 적이 있다. 한 권은 박삼중이라는 스님이 사형수에 관해 쓴 것이고, 또 다른 반 토막 책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김대중씨가 감옥에서 아들에게 쓴 깨알 같은 엽서 글 모음이었다.
김대중씨의 글은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인 김대중씨, 그것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 그의 모습조차 선명하지 않던 나로서는 사실 매우 흥미로웠다. 사춘기의 아들에게 독서와 생활 습관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세심하게 배려하는 글이었다. 요즘 들어 생각해 보니 1980년대 초반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쓴 글이었던 것 같다.
스님이 쓴 사형수에 대한 얘기는 흥미보다 가슴 저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사형수 하면 흉악무도한 사람이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내게 그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부처라는 식의 메시지는 큰 충격이었다. 불교도가 아닌 내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시리도록 존엄한 모습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실화에 바탕을 둔 사형수 얘기로 널리 알려진 영화 <데드맨 워킹>에서 숀 펜이 연기한 매튜는 강간살해범의 흉악한 모습이 아니라 죽음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요, 회개하고 참회하는 모습이니 삼중 스님의 말대로라면 이미 그도 죽음 직전의 부처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나라에서는 자백에 의한 경찰 수사기록이 재판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고 이러한 조서가 재판에서 거의 절대적인 증거로 작용, 결국 재판은 자백으로 나온 조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현직 경찰이 범인으로 몰려 가혹행위를 참지 못하고 허위 자백으로 범인이 되었다가 나중에 진범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 하물며 일반인들은 어떠하겠는가. 최모라는 사람은 1981년에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감형되었으나, 20여년이 지난 아직도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우리의 불행한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정치권력에 비판적이던 인사가 조직사건이니 내란음모죄니 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을 역임한 김대중씨는 사형제도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갈 뻔했다. 사법 살인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는 인혁당 사건의 경우 사형 언도 다음날 사형이 집행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에게도 사형은 '하고 싶지 않은 결정'이라고 한다. 과연 판사가 한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할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형제도가 존속하는 한 극악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일은 직무상 불가피한 일이 되고 만다고 토로하는 실정이다.
범죄는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불안정한 우리 사회의 공동체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는 범죄에 대해 생명을 빼앗아서 죄값을 보상하게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헌법의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흉악범죄자들이 있지만 사형 대신 감형 없는 무기수 또는 장기형으로도 충분히 죄값을 치르게 할 수 있고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데드맨 워킹>에서 사형수 매튜의 임종을 함께 한 사회봉사 활동 수녀 헬렌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파주의 조잔말구 수녀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범죄를 너그럽게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서 정말 자신의 죄를 속죄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법 위에 생명이 있는 법이니까요."
사형제도에 의해 저승으로 간 사형수들이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5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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