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부자부적을 발견했습니다

<임윤수의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2>를 읽고

등록 2005.06.13 11:11수정 2005.06.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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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행복하십니까?

a <걸망에 담긴 산사 이야기2>

<걸망에 담긴 산사 이야기2> ⓒ 가야넷

누군가가 "요즘 행복하십니까"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하십니까? 머뭇거리지 않고 "네, 저 요즘 행복해요"라고 답하고 계신가요? 혹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닌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임윤수님의 두 번째 산사 이야기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 2>의 맨 처음을 펼치는 순간 저사 서문에 나오는 첫 문장이 따끔따끔한 바늘이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저자의 물음에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하는 단순한 감정의 기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무디어져 버렸나 하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오유지족(吾唯之足)에 서툴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저자가 들려주는 산사 이야기에는 걸망 하나 들쳐 메고 한발 한발 걸음마를 딛듯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하나 하나씩 담아가는 그만의 넉넉한 오유지족의 여유와 미소가 흐른다. 그래서일까? 그가 글에서 묘사하는 부처의 모습은 부처의 모습 자체보다는 부처를 조성하기까지 흘린 이름 없는 사람들의 땀방울과 돈독한 불심의 흔적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불상이 조각되기까지 그 돌은 그냥 하나의 돌이었을 뿐이다. 지나가던 과객이 눈길을 피해 대소변을 보던 용변의 자리일 수 도 있고 아랫마을 처녀 총각이 정분을 나누던 밀애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 자리에서 눈가림용 혹은 표석으로 통용되었던 한낱 커다란 바위였을 것이다.(중략)

작열하는 태양도 불어오는 삭풍도 온몸으로 맞으며 한땀 한땀 새겨놓은 불심의 흔적이 바로 마애불이리라. 눈에 보이는 형상이야 망치 끝과 정이 꾸렸겠지만 혼을 불어넣고 아름다움을 불어넣은 것은 역시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사실 종교상의 믿음이란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른다. 한갓 돌멩이 하나에 혼을 불어 넣는 이름 모를 석공의 마음이나 기다란 염불도 줄줄이 외우지 못하고 경전도 유창하게 읽지 못하지만 부처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처님은 그저 믿음의 대상이지 복잡한 교리를 따지고 가르침을 논할 대상이 아니라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와 함께 산사를 헤매는 즐거움

내 안의 교만과 아집을 최대한 버리고 책 속의 안내에 따라 서서히 절에 오른다. 이미 갔던 곳도 있고 미처 가지 못한 곳도 있지만 이미 간 곳은 간 곳대로 동질감을 느껴 좋고 가지 못한 곳은 또 그대로 색다른 느낌이 있어 좋다. 그 느낌 그대로 산넘고 물건너 하늘 아래 첫 산사도 가보고 바다 건너 절해고도의 자그마한 산사도 가다보면 자구 하나 하나에 우리 산하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대한 저자의 순수한 사랑이 거짓없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즐거움을 저자는 '헤매는 즐거움'이라 했다.


"산 길이건 들길이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은 옹달샘과 양달에 둥지 튼 산사들이다. 옹달샘에서는 갈증을 덜고 산사에서는 마음의 헛헛함을 채울 수 있으니 헤매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와 함께 산사로 가는 길에는 헤매는 즐거움 뿜만 아니라 잠시 동안의 고단함을 씻어 주는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지는 삶에 대한 그의 꾸밈없는 생각의 파편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생각의 파편들은 마치 카운슬러의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종류도 다양하고 깊이 또한 깊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복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짓고 거두는 삶의 과정이라고 한다. 날벼락이나 돈벼락이라는 말은 있어도 복벼락이라는 말은 없다. 벼락은 재앙이며 환난이다. (중략) 벼락이란 전광석화처럼 일순간에 벌어지는 찰나의 재앙이며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이다. 그러기에 복은 섬광처럼 얻어지지도 않고 감당하기 힘들만큼 한꺼번에 거둬지지도 않는다."

섬광처럼 얻어지지도 않고 감당하기 힘든 만큼 한꺼번에 거둬지지 않는다는 복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또다른 곳에 그만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눈길을 끈다.

"이유 없이 짜증스럽고 우울하다든가 만사가 괴롭고 답답하다면 일상에 어떤 이유가 가랑비처럼 야금야금 젖어들었을게 분명하다.(중략) 가랑비에 젖지 않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완벽하게 방수하는 방법도 있고 아예 비오는 날에는 밖을 나가지 않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한평생을 살면서 어찌 완벽할 수 있으며 피해 다니기만 할 수 있겠는가.(중략)

일상에 다가서는 것이 미미한 느낌에서 오는 감정이라면 그 미미한 감정이나 느낌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오감을 곤두세우고 감정과 느낌을 빠짐없이 지각하면 된다. 체증처럼 쌓이지 않도록 그 때 그때 받아넘기고 소화해 가면 되는 것이다. 햇살에 드러내듯 그렇게 드러내면 젖어든 가랑비도, 번민의 갈등도 뽀송뽀송 말릴 수 있다."


내 마음 걸망 속 행복수표와 부자부적

저자와 함께 걸망을 메고 산사를 따라 헤매고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종착지에 점점 가까워진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갑자기 전보다 무거워진 내 마음 속의 걸망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자가 기원하는 대로 오유지족의 행복 수표, 부자부적이 가득 채워져 있었을까?

비록 내 마음이 맑지 않아 행복수표 부자부적이 없더라도 그게 뭐 그리 대수이랴….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미 행복수표, 부자 부적을 얻는 방법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또렷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2- 임윤수 저, 가야넷 출간, 값 1만3000원

덧붙이는 글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2- 임윤수 저, 가야넷 출간, 값 1만3000원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 2

임윤수 글.사진,
가야넷,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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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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