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혜
어릴 적. 어둑어둑한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들을 눈 여겨 보며 공장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릴 때 거나하게 술 취하신 아버지께서 언제나 먼저 제 눈에 띄곤 했습니다.
매일 술에 찌드신 아버지가 몸살 나게 싫어 아버지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일어나 도망을 칠 때면, 가끔 아버지께서 소리 높여 저를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아버지께서 술을 조금 드신 날입니다. 행여 못 들은 체 집으로 들어가 버리면 다음으로 떨어질 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걸음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곁에 앉히시고 노래를 부르곤 하셨습니다. 바로 그 클레멘타인을. 아버지가 부르셨던 클레멘타인 노래엔 시큼털털한 술 냄새와 뭔지 모를 슬픔이 늘 함께 묻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슬픔의 정체는 아마도 무능력한 가장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잎 같은 어머니와 백년가약을 맺으실 때 분명 아버지는 어머니께 약속을 하셨을 겁니다.
"행복하게 해 주마. 대궐 같은 집에 금은보화로 치장은 못해주더라도 마음고생은 시키지 않으마."
하지만 세상은 아버지의 마음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제 어릴 적 기억 속엔 늘 술에 취한 아버지만 계셨고, 늘 어머니와 싸우는 아버지만 계셨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술은 못난 남편에 대한, 부족한 아비에 대한 현실도피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여 아버지의 클레멘타인 노래는 아버지의 가슴 맨 밑바닥을 차지했던 아버지의 깊은 고백이었을 겁니다.
힘겨운 가장 노릇에 갈퀴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미안하다’ 그 한마디 하기가 쑥스러워, 아니면 힘겨운 삶의 무게로 바위덩이를 얹어 놓은 것 같은 어머니의 양 어깨를 주물러 주기가 쑥스러워, 아버지는 어린 저를 곁에 앉히고 그렇게 클레멘타인 노래를 부르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