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군 정선읍, 평창군 진부면에 위치한 가리왕산은 이름에서 풍기는 위엄만큼이나 높고 큰 산이다. 오대산보다 3m 낮은 1561m의 높은 산임에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찾는 이들도 많지 않다.
회사 산악회에서 산행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첩첩산중 계곡을 지나 도착한 숙암리 장구목이골에는 커다란 물레방아와 산나물 채취 금지 경고 문구가 산나물의 보고인 가리왕산의 특징을 대변하는 듯 했다.
가리왕산이라는 산의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갈왕이 피신했던 산이라고 해서 '갈왕산'이라 불렀던 것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가리왕산으로 바뀌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산의 모습이 벼나 나무를 쌓은 더미를 지칭하는 가리를 닮았다고 해서 가리왕산이라는 설이 있다. 우리 나라에 가리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산이 많은 것으로 보아 두 번째 설이 설득력이 있다.
가리왕산은 거대한 육산으로 산전체가 산나물과 약초로 덮여있다. 조선시대에는 진상하기 위한 산삼을 캐던 곳이라는 삼산봉표(蔘山封標) 비가 발견되기도 했다. 회동계곡 쪽에는 맑은 계곡물 주변으로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해발 1000미터 둘레로 83km가 넘는 임도가 있어 산악자전거 동호인으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산이다. 요즘은 해마다 산악마라톤과 산나물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등산로는 평창군 북평면의 장구목이골을 기점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중봉을 지나 숙암분교로 내려오는 길과 정선읍 회동리 자연휴양림에서 어은골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 중봉을 지나 청양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두 코스 모두 6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긴 코스이므로 무리하게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 좋다.
장구목이골은 초입부터 4km 정도가 철쭉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계곡에는 많은 이끼와 폭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가리왕산에는 8경이 있는데 망운대, 동심, 서심, 시녀암, 백수암, 장자탄, 용굴계곡, 회독계곡, 비룡 종유굴이 그것이다.
특히 망운대는 주봉정상에 있는 것으로 흐린 날은 운해의 장관을 볼 수 있고 맑은 날은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 서면 북쪽을 오대산, 동쪽을 청옥, 두타산, 동남쪽으로 함백, 태백산, 남쪽으로 소백산, 서쪽을 치악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해발 1000m을 넘는 부분에는 흰 속살을 드러낸 자작나무와 1000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주목 군락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부근에 취나물과 당귀잎 등 산나물이 지천을 깔려 있어 조금 뜯어 쌈을 싸 먹고 중봉을 지나 하산을 했다. 하산하는 길가에는 더덕, 가시오가피, 곰취, 두릅 등의 산나물과 약초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하산하는 길에 만난 약초꾼에게 임금님에게 진상을 했다는 청옥이라는 산나물을 구경했는데 정상부근에 수없이 많던 그 풀이다.
숙암분교로 내려오는 길에 칠순이 넘은 할머님이 채취한 산나물 2자루 중 한 자루를 선뜻 구입하여 나누어 주신 하태헌 회장님 덕분에 귀한 곰취를 아직도 먹고 있다. 가리왕산은 기암절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주는 산이지만 풍요와 느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인 산이다. 발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며 올라야 하는 내 고향 뒷산과 같은 푸근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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