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먹일 풀도, 앞마당 잔디도 다 말랐다

[해외리포트] 1백년만의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호주

등록 2005.06.25 20:51수정 2005.06.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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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기상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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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섬 대륙 호주가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5년 반 이상 지속되어온 가뭄으로 올해 호주의 강우량은 평년의 25% 수준에 그쳐 지난 2003년 이래로 1백년만의 최악의 가뭄 사태를 겪고 있다. 현재 호주 전역의 저수지들은 절반 수준으로 수위가 내려갔으며 앞으로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농촌 지역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태이며 시드니를 중심으로 6월 동부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의 91%가 가뭄지대로 선포됐다. 지난 5월 87%였던 것이 한 달 만에 90%를 넘어 버린 것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곳은 청정 호주의 상징인 축산농업. 농가들은 방목하는 소에게 먹일 풀들이 죄다 말라 죽자 오렌지와 토마토, 당근, 호박 등의 야채와 과일로 풀을 대신하고 있다. 축산 농가의 피해는 밀농사와 함께 치명적 수준을 기록, 이미 40억 달러의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태가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14억 달러의 추가 경제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호주 정부는 위기에 빠진 농가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세율 인하, 농촌 융자금 이자 줄이기 등 연 2억 5천만 달러의 가뭄 보조금을 비롯해 총 12억5천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으나 이것으로 타들어가는 농심이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세차할 때 호스 사용금지...수돗물 훔치면 벌금

물 절약 캠페인(출처: www.hojuonline.net)
물 절약 캠페인(출처: www.hojuonline.net)
가뭄으로 인한 물난리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도시들도 물 비상에 걸렸다. 시드니의 와라감바 댐은 36%까지 수위가 내려갔고 멜버른을 지탱하는 대규모 댐도 절반은 말랐으며 서부의 대표 도시 퍼스의 물 보유량도 25%가 줄어든 상태다.

시드니의 주요 상수도원인 와라감바 댐의 수위가 급속도로 떨어짐에 따라 시드니 수도국은 오는 7월 1일부터 강제 절수를 위해 부적절한 수돗물 사용자에 대한 강도 높은 단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960년에 완공된 이후 지난 1968년만 해도 저수 보유량이 넘쳐 많은 양의 물을 방수했던 것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와라감바 댐은 인구 1백만 명의 식수량을 보유할 수 있을 뿐, 4백만을 웃도는 현재 시드니 인구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정부의 강제절수정책에 따르면 각 가정은 정원 잔디에 스프링클러를 사용할 수 없으며 주 2회에 한해 호스로만 물을 줘야 한다. 그밖에 수돗물을 틀어 놓고 자리를 비우거나 사용하지 않는 호스나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할 경우, 주차 공간 등의 시멘트 바닥에 물을 뿌릴 경우 각각 220달러의 벌금을 물게 된다.


세차를 할 때는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하되 호스를 사용할 수 없으며, 만약 수돗물을 훔칠 경우 22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어느 날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물이 안 나오면 어쩌지?


한편 시드니 인근의 도시인 골번 주민들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물과의 전쟁이다. 호주 내륙에 가까운 탓에 가뭄피해가 더 큰 것. 지역 사회의 공동 수영장은 폐쇄된 지 오래며 집 마당의 잔디는 이미 모두 타 죽어 지난 2년 동안 깎을 필요가 없었다.

이 지역 4인 가족은 평소 두 사람 분에 불과한 하루 550리터의 물로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공급량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주부들은 스톱워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식구들을 감시한다. 1명당 샤워 시간이 3분을 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물은 한마디로 금'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날 아침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태다. 주민들은 최선을 다해 물을 절약하고 있지만 올 연말이면 골번의 저수량은 완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호주를 덮친 가뭄의 실상은 주택에서도 살필 수 있다. 지나치게 건조한 기후 때문에 가옥 골조가 뒤틀리거나 금이 가고 심지어 갈라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는 것. 전국의 가옥주들은 이번 가뭄을 일종의 천재지변으로 여기고 있다. 건조한 날씨가 집의 뼈대조차 변형시켜 재산의 손실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국의 약 10% 가옥이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는 점점 확산될 것으로 보이며 집수리 비용으로만 총 6억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집이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습도 유지가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집 둘레에 키 작은 관상용 식물을 심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가뭄 원인은 엘니뇨, 호주 전역 '영구가뭄지역' 될 수도

엘니뇨로 인한 가뭄 지역. 연두색으로 표시된 곳이 가뭄 지역으로, 호주 대부분 지역이 이곳에 속해 있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 지역. 연두색으로 표시된 곳이 가뭄 지역으로, 호주 대부분 지역이 이곳에 속해 있다.호주 기상청
호주를 강타한 최악의 가뭄 원인은 엘니뇨현상 때문이다. 태평양 중앙 해수와 북동 해역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태평양 연안 일대에 대기의 이상 온난화가 발생하게 됐으며 그 영향으로 호주에 장기 가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호주는 지난 97,98년에도 한차례 가뭄 피해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가뭄은 2000년부터 5년째 이어지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특히 호주의 심장부이자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는 겨울 강우지대가 급속히 감속하고 있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겨울 강우지대에서 시작된 가뭄은 다른 지역으로 연쇄 파급 효과를 낳으며 동부 해안 도시인 시드니나 브리즈번에서부터 서부의 퍼스에 이르기까지 호주 전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호주인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엘니뇨에 의한 기후 변화가 촉진될 경우 호주가 지구상의 영구 가뭄 지역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환경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한 정치인은 호주 땅에서 "물은 액체성 금(Water is liquid gold)"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대안은 해수담수화? 태양열 에너지?

도시의 젖줄이 말라가는 현실에서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물 없는 호주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호주 정부는 호주의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바닷물의 소금기를 제거하면 된다고 말한다. '해수의 담수화'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고착될지도 모르는 가뭄지대인 호주에 '단방'에, 그리고 영구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것.

그런 차원에서 담수화 작업을 시범 실시중인 서부 퍼스 인근의 작은 섬인 로트네스트는 말라가는 호주 대륙의 미래로 여겨진다. 땅이 쩍쩍 갈라지고 농토가 타들어 가는 퍼스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이 섬에서는 소규모의 담수 설비만으로도 매일 50만 리터의 물을 '생산'하고 있다.

로트네스트의 담수화 성공에 힘입어 호주 정부는 가뭄에 대한 장기전에 대비한다는 관점에서 재활용수의 활성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번 쓰고 버리는 물을 재처리해 농업이나 산업용수로 재활용한다는 것. 재활용수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빅토리아 주는 전체 물 소비량의 11. 6%가 재생수로, 오는 2010년에는 20%까지 활용도를 높일 방침이다.

호주 정부는 가뭄에 대처하기 위한 삶의 전략과 전술을 담은 안내서를 발간, 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국민들의 생활 지침으로 내면화 시키고 있다.
호주 정부는 가뭄에 대처하기 위한 삶의 전략과 전술을 담은 안내서를 발간, 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국민들의 생활 지침으로 내면화 시키고 있다.호주 NSW 주정부
한편 이러한 정부의 가뭄 대책에 대한 환경론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가뭄의 근본 원인이 기후 변화에 있는 만큼 작금의 이상 기후는 결국 장기간에 걸친 환경 파괴에서 초래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정부의 가뭄 대책이 장기적으로는 더욱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즉 바닷물의 담수화 처리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더욱 가속되어 비정상적인 기후 변화를 몰고와 결국 호주의 가뭄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를 낳는 가스 방출을 막기 위해 일각에서는 핵에너지에 대해 논의도 나오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환경 파괴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논리다.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21세기에 호주 사람들은 물이 마르면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하고 자명한 이치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과의 사투를 선포한 호주 대륙이 어떤 결과를 얻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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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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