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 교수. 그의 한국전쟁 연구는 "학문 주권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기념비적인 것이다.오마이뉴스 조경국
박명림 교수가 내년 출간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책은 '한국전쟁 발발과 기원Ⅰ·Ⅱ'(1부) 및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부)에 이은 완결판이다. 그의 한국전쟁 연구는 "학문 주권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기념비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는 마지막 3부에서 한국전쟁과 이에 대한 정권의 '해석의 독점'이 얼마나 한국인들의 정신과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바람직한 청산 방향과 민주주의와 평화와 인권과 통일 실현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는 박 교수가 3부작의 책 제목을 '평화의 조건'으로 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박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가장 비참한 전쟁을 겪고도 "왜 우리는 50년이 지나도록 평화체제를 만들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다. "오늘날 유럽의 평화가 1, 2차 세계대전의 비극과 시련을 딛고 그 비극이 제공한 반성과 지혜의 산물이었음에 비춰볼 때, 반세기 전에 가장 참혹하고도 비극적인 전쟁을 치르고도 50년 후에 또다시 전쟁 위기를 막아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인터뷰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왜 우리는 가장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또 전쟁 위기를 막아야 하는가"
- 한국전쟁 연구의 권위자로서 전쟁 발발 55주년을 맞이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한국전쟁을 연구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그 영향의 압도성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이 보여주듯 대개 전쟁은 50년 정도가 지나면 전쟁의 직접적 결과나 영향은 극복의 과정에 놓이게 되는데 비해 한국전쟁은 아직도 압도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전쟁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의 크기가 놀랍다.
두번째로 놀라운 점은 지난 세기 가장 처참한 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평화체제를 건설하지 못했다는 점, 즉 우리의 지혜와 이성의 한계가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을 치렀던 상처를 반복하지 말자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 큰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를 극복을 못했다는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 왜 우리는 전후 50년이 넘도록 평화체제를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이유는 53년 체제, 즉 정전체제 자체의 불안정성에 있다. 전후 처리 자체가 종전이 아니라 '정전'이라는 잠정 타협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평화체제 구축이 지연되고 있는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유는 전쟁 자체의 폭력성에 있다. 한국전쟁 기간에도 엄청난 무기와 병력이 투입되었고, 이에 따라 엄청난 폭력을 수반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폭력성은 지금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한·미연합군과 북한군의 규모는 약 2백만에 달하는데,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군사력의 밀집 현상이다.
끝으로 정전체제의 국제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53년체제는 국제체제의 성격을 띄고 있다.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의 지역분단체제는 당시의 양자 관계에 머물러 있고, 동아시아 국가간의 성격이 집단안보 기구의 성격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동아시아 냉전체제가 미국과도 다 양자관계였고 동아시아 내에서도 양자관계였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보편적 이익이나 관계가 제기되기 힘든 상황이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53년체제의 불안정성, 폭력성, 국제성은 평화체제 구축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와 같은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이 강하게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이 구조에 파열음을 낸 사람은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6·15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기념하는 최초의 사례"
- 예전부터 6·25를 기념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는데.
"쉽게 말해 6·25는 적대와 증오의 담론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6·25는 한국정부나 모든 한국사회의 인식의 출발점과도 같았다. 나는 이러한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평화를 생각하고 좀 더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종전'을 생각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6·25를 기념해온 우리의 정신사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를 던져준 것이 바로 6·15 공동선언이다. 6·15 선언의 정신은 '다시는 6·25로 돌아가지 말고 다시는 증오의 담론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6·15 선언을 통해 6·25의 담론을 자연스럽게 극복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6·15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도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과 민주화 등에 있어서는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국제관계나 대외관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6·15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형성이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