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 중국을 휩쓴 공포와 광기, 무엇을 의미하나?

필립 쿤의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읽는 사연

등록 2005.06.25 11:54수정 2005.06.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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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중국의 명성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구의 침략에 중국 본토는 유린당하고 결국 섬나라 일본에게까지 패배의 쓰라린 아픔을 겪게 된다. 나라가 흥하고 쇠하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라고 하지만 중국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것은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있다. 바로 그 얼마 전에 나라 운영 잘한다고 후세에까지 소문이 자자했던 건륭제 손아래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했었기 때문이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어찌된 일일까?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필립 쿤은 1768년 중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가지고 의문의 실타래를 풀어보고 있다. 사건들이란 일명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에 관련된 것인데 저자는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태평성대 아래 숨겨진 중국의 문제점들을 짚어내고 있다. 그것은 건륭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이 무너지게 된 것에 이유 중 하나이며 정치범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768년,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다. 사악한 요술사들이 사람들의 변발을 훔쳐 그것에 주술을 걸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처음 그 소문은 작은 지역에서 말 그대로 소문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혼을 빼앗겼다는 신고가 곳곳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소문은 유령처럼 중국 곳곳으로 퍼져나가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이상한 소문은 두려움을 동반해 백성들을 지배하게 된다.

신고를 받았던 지방 관리들은 초기에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문을 들은 건륭제는 달랐다. 당시는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하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거꾸로 만주족이 한족에게 동화되어가 건륭제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변발’과 관련된 사건이 터졌으니 그는 필시 이것이 나라를 위협하는 세력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관료들에게 적극적으로 사건 처리에 나설 것을 독촉한다.

이때부터 청나라에는 공포와 광기가 사람들의 이성을 빼앗아간다. 나라에서 진상 파악에 열을 올리자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 증거도 없이 무조건 요술사라고 고발하게 되고 고발당한 이는 일단 극심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 과정은 마치 한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앙심을 품은 이를 요술사라고 고발하고 고발장을 접수한 관리들은 어떻게든 자백을 받으려고 고발당한 이를 닦달하는데 그것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미 한국사에서도 ‘반공’이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인해 이미 극심한 몸살을 앓았고 현재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지 않는가?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은 이러한 나라의 압력에 눌려 고생하던 백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사료를 중심으로 1768년을 그린 저자의 수고로움 덕분인데 그로인해 오늘날에 당시 황제가 얼마나 초조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저자는 그 가운데서도 뭉뚱그려서 주목할 만한 가능성을 하나 내놓는다.


그것은 건륭제가 ‘요술’을 무서워했기에 관리들을 재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기 위한 ‘계기’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그 가능성으로, 즉 정치범죄의 영역에서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의 사건들을 바라본다면,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의도적으로 대중들의 광기를 이용해 자신의 통치력을 넓히려고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희생양으로 아무것도 모른 체 서로를 향해 아우성을 질렀다는 것이 된다. 또한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지배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과 세력들은 이 기회를 통해 처벌받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백성들은 그것이 백성을 위한 것이라 생각해 지배자로서는 거리낄 것 없이 권력을 다잡아 나갈 수 있다.


1768년 중국을 뒤흔든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의 사건은 태평성대 속에 가려져있던 중국의 문제점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에서 저자가 1768년을 통해 지적한 ‘청나라 체제의 문제점’ 등을 살펴보면 중국이 그렇게 쉽게 무너진 이유를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책의 그러한 지적보다 다른 부분을 더 주목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이 정치범죄로서의 시각을 통해 2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잊어서는 안 될 사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권력을 지닌 자가 더욱 권력을 지니기 위해 ‘보이지 않은 대상’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넓히려는 시도의 하나로서 말이다.

저자는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이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구서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가까이 과거에서 특별한 ‘광기’를 보여줬던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을 테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것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교훈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읽히는 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

필립 쿤 지음, 이영옥 옮김,
책과함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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