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흉수일 가능성이 많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내게 대두자와 수조자가 어느 조직에 몸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내력에 대해 물어보고 싶겠군요."
역시 유곡이었다. 그는 이미 담천의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담천의의 대답은 그저 확인일 뿐이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담천의는 강중을 만나지 못했고, 그는 또 다른 단서로 끈을 잡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려주시겠소?"
"조금 시간이 걸릴 거예요. 이미 조사는 시켰지만 쉽게 나오지 않는군요. 하지만 조만간 알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천지회에서도 담가장의 혈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오?"
그의 물음은 너무나 진지해서 몽화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담가장의 혈사가 있었던 그 시기에는 회주가 아니었어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정확한 대답은 어렵군요."
"나머지 두 회주 역시 같소?"
"왜 천지회를 의심하는 것인가요?"
"천지회 뿐 아니오. 나는 모든 곳을 의심하고 있소. 모두 부친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실제 모두 원했소. 하지만 백련교에서도, 비원에서도 아니라고 부인했소. 물론 그들도 다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지만 말이오.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거요."
섭장천이 부인했을 것이다. 또한 마노란 노인도 부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천지회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몽화 역시 절대 천지회가 아니라고 말할 입장도 되지 못한다. 그녀는 나름대로 조사하고 있는 사안이 있었다. 그 사안은 기이하게도 이 자와 연관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좋아요. 나는 당신 말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더 알고 싶은가요?"
그녀의 말에 담천의는 싱긋 웃었다.
"당신은 정말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구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다 알려주고 물으려 하는 것이오?"
전에 만났을 때 몽화가 했던 말을 담천의가 도리어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강중장군이 남긴 그 표식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묻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었다. 몽화 역시 전에 자신이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는지 따라 웃었다.
"고집이나 투정을 받아 줄 사람이 없으면 참을성이 많아진다는 말은 당신이 하지 않았나요?"
"좋소. 천(天). 강중장군은 피로 한일자를 쓰고 그 아래에 큰 대(大)로 누워 있었소."
담천의는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아직까지 서로 믿을 수 없고, 서로 필요한 것을 얻는 그러한 관계였지만 이것을 가르쳐 주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생각도 있었다. 강중장군이 남긴 표식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감출 일이었다.
하지만 담천의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 표식은 자신을 위해 남긴 것이 아닌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 그의 아들인 강명을 위해 남겼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강명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강명과 흉수, 두 명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 있는 곳에 넌지시 던져 보는 것도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이 강중장군을 살해했다는 말이 나돌 수도 있었군요."
"그런 소문이 돌았소?"
"무림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거예요. 문제는 누가 그런 소문을 냈느냐는 것이지요."
누가 소문을 낸 것일까? 그것을 본 사람은 자신과 용화사의 혈겁을 저지른 자들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이가 있었다. 동자승과 같았던 아이. 그렇다면 강명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강명 쪽에서는 소문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의미를 알 수 있겠소?"
그녀는 그 글자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었던 불길한 예감이 점차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투로 입술을 도톰하게 오므리며 말을 했다.
"매우 모호하군요. 천(天)은 흔한 글자일 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 이예요. 범위를 좁힌다면 모르지만 막막한 상태에서는 알아내기 쉽지 않겠군요. 다만…."
"……!"
"천(天) 자의 대표적인 의미는 황제를 가리키죠. 분명 가능성이 있는 일이예요. 두 번째는 천(天) 자를 사용하는 문파나 조직, 세 번째는 천(天) 자를 사용하는 명호나 이름을 사용하는 자를 가리킬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천지회도 그 의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의 말에 몽화는 고개를 끄떡였다. 글자의 의미는 가장 간단하고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 글자가 직접 거론되는 경우다. 몽화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자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지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관계가 아닌 진정한 친구의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둘 다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지금 그를 노리는 자는 분명 그의 부친을 죽인 자였다. 흉수가 아니라면 그에게 극단적인 행위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요. 물론 당신 역시 나를 개인적으로 돕는다는 조건이죠."
무슨 의미일까? 천지회가 아닌 개인적인 도움. 그리고 그 대가는 천지회가 아닌 몽화에 대한 도움.
"대가로 내가 당신을 도와야 하는 일은?"
몽화의 웃음이 걷히며 그녀의 시선이 침중한 기색을 띠우며 담천의의 얼굴에 꽂혔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떼었다.
"내 목숨!"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그가 보기에 몽화는 안전했다. 그녀의 주위에 있는 이 네 명의 여인들도 결코 호락호락 당할 여인네들은 아니었다. 더구나 추혼귀견수 하공량 같은 인물도 있다. 하지만 몽화의 표정으로 보아 장난이 아니었다.
"그 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요?"
"아니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를 구해달라는 의미예요. 내가 구해달라고 할 때 당신이 와주면 되는 거죠. 당신이 전갈을 받지 못하거나 그런 요청도 할 수 없어 내가 죽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예요. 다만 내가 당신에게 요청을 할 때 당신이 반드시 와주신다고 약조를 하면 나는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의혹이 일었다. 몽화는 무엇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것일까? 목숨을 걸만큼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가 위험하다는 의미일까? 목숨을 부탁하는 일은 아무에게나 부탁할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친구가 되자는 말이었다. 모험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약속하겠소. 하지만 이것 역시 나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당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요. 나는 영문도 모르면서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소."
"겁이 나는군요."
그녀는 말과 달리 웃었다. 그녀는 미소는 화사하고 아름다워서 그녀가 정말 유곡인가 싶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 웃음은 아주 기이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담천의는 그녀의 말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구양형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소?"
담천의는 그 동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했었다. 많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구양휘였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와 같이 지낸 것도 오랜 시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박거사 구효기가 그의 의숙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인정한 사내 중의 사내였다.
몽화의 얼굴이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그의 물음은 구양휘를 형제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선택은 옳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만박거사와 함께 이곳 개봉의 봉취루(鳳醉樓))에 머물고 있어요. 이곳에서 담 몇 개만 넘는다면 일각 안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깝죠."
담천의는 문득 깨달았다.
(봉취루… 단사란 인물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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