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포스터
영화관의 화면은 텔레비전이랑 다르게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너무 컸다. 게다가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왜 그리 크게 확대되어 나오는지 완전히 괴물과 같은 모습이었다.
영화 시간은 어린 아이가 버티기엔 너무 길고 지루하여 하마터면 옷에 오줌을 쌀 뻔할 정도로 꾹 참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른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단체 관람으로 익숙해진 극장 문턱
이렇게 시작된 극장과의 인연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계기에는 아무래도 당시 유행하던 '단체 관람'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때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면서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우리 나라 멜로드라마의 시작은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보는 이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시켜 눈물샘을 터트리는 정통 신파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소년소녀 가장의 삶을 슬프게 그린 영화였다.
캄보디아에서 살아 돌아온 미국 기자가 서술자가 되어 공산주의의 잔인함을 전하는 <킬링 필드>를 보지 않은 학교도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단체 관람 취지는 아마도 '반공 의식의 고취'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반공 의식의 고취보다 머나먼 나라에서 일어난 끔찍한 전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데에 기여했다.
특히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에 돌아온 날 밤은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 잔혹한 장면들이 많았고, 며칠 내내 악몽에 시달리며 지내도록 한 정말 '비극적인' 영화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입을 다물고 있었던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대하여 '아메리카의 학살사를 교묘하게 은폐시킨 영화'라고 재평가하고 있으니, 그저 반공주의에 급급한 당시 정권이 얼마나 황당하게 이런 영화를 어린 학생들에게 권장했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