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걸 동료 한명 있었으면...

등록 2005.07.01 00:59수정 2005.07.0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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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부터 매달리기 시작한 서류 작업을 이제야 겨우 마쳤다. 상반기가 마무리되는 6월 말에 작성해야 할 보고서가 11가지나 된다. 제일 간단한 '65세 이상 무료진료 실적 보고서'를 시작으로 제일 복잡하고 어려운 '방문보건사업 실적 보고서'까지 작성하니 며칠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전산화가 되어 있어 좀 수월하다고 하지만, 많은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머리 속이 뒤죽박죽되는 기분이다. 더구나 그 서류에 좀 익숙해질 만하면 수시로 바뀌는 서류 양식 때문에 더 힘들다. 이번 달은 상반기가 끝나는 달이라 서류가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데 군 보건소로 보내야 하는 서류가 이 정도다.일지 같이 월말마다 컴퓨터에서 출력하거나, 회계관련 서류처럼 직접 기록해 정리해야 하는 서류 역시 그 종류가 꽤 많다. 

일을 밀리지 않으려 하지만 혼자 일하다 보니 어떤 때는 급하지 않은 서류는 뒤로 밀리기도 하고,그 밀린 서류를 영 잊고 살다가 외부에서 하는 지도 점검이나 일 년에 두 번 있는 운영협의회를 앞두고 있을 때 발견해서 뒤늦게 처리하기도 한다. 

보건진료원은 혼자서 환자 보고, 차트 정리해서 컴퓨터에 입력하고, 의료보험 청구하고, 그 돈을 받아 필요한 곳에 쓰고, 돈 쓴 것을 빠짐없이 회계 서류로 남겨야 한다. 또 재가환자 가정 방문을 가야하고, 보건교육을 해야 하고, 볼 때마다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많은 서류를 혼자서 해야 한다. 

같은 사무실에 선배나 동료들이 없다 보니 어려울 때 머리를 맞대고 상의할 수도 없고, 모르는 것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동료들을 만나는 기회라고는 한 달에 한번 있는 월례회를 통해 잠깐씩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전부다.

한두 시간 만나는 그 시간을 통해 동료애를 다지고, 어려운 일을 상의하고 하기에는 참 많이 부족하다. 뭔가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앞에 놓여 있다 싶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 옆에 든든한 동료 한 사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을 마주 대하지 못하는 대신 전화 통화를 자주 하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고 배우면 쉬운 것도 전화로 얘기하면서 배우려면 참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성질 급한 사람이 움직여 다른 진료소로 가서 도와주기도 하지만 진료소를 비우는 게 쉽지 않을 때는 혼자서 두고두고 고생해야 할 때도 많다.

가끔 이 곳이 '외로운 섬'같다는 생각을 한다. 또 결승점이 없는 마라톤을 함께 뛰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너무 오랫동안 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다람쥐가 좁은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쉼 없이 달리는 것처럼 이 곳 사람들도 스물 몇 평의 이 좁은 공간에서 쉼없이 종종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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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하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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