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세일 못 챙기면 남친 자격도 없나?

[주장] <동아> '명품 세일 중... 남친아, 알고 있니?' 기사 유감

등록 2005.07.01 11:11수정 2005.07.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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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1초가 아까운 아침 출근시간, 약간의 여유에 무심코 펼친 신문의 굵은 제목이 날 뜨악하게 만든다. '명품 세일 중…남친아, 알고 있니?'(<동아일보> 6월 30일자 '명품&뷰티' 섹션). 지금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절대 부수를 자랑하는 메이저 신문의 편집회의를 거친 제목 맞아?

한 백화점에서 정상가 100만~140만원인 송아지가죽 핸드백(중간크기)을 70만~100만원에, 40만~50만원 구두제품도 30% 할인해서 팔고 있다는 친절한(?) 기사였다. 같은 기자가 쓴 칼럼 '내손으로 만드는 '나만의 명품''에서는 여름휴가를 앞두고 30만~50만원대의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몰려든 고객들로 시골장터처럼 변해 뒷줄의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라는 면세점 안 풍경도 전하고 있었다.

a <동아일보> 6월 30일자 기사 전문

<동아일보> 6월 30일자 기사 전문

이 기자의 분류법에 따르면 난 분명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칼럼에 나온 네 살짜리 딸과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30대 전형적인 주부가 아닌, 전문직 남편과 열다섯 살 아들을 둔 직업이 있는 40대 주부이다.

아무리 세일을 한들 100만원짜리 핸드백은 언감생심 가져 본 적도 갖고, 가질 수도 없는 것이 그들의 분류법에 의한 이 땅 전형적인 중산층의 현실이다. 남들보다 특별히 알뜰할 것도 없는, 특별히 사치품을 사들여 본 적도 없는 보통 주부일 뿐이다.

물론 남편은 명품 세일 정보를 전혀 모른다. '남친(남자친구)'도 알아야 할 명품세일정보를 남편이 모른다 반성하며 100만원짜리 송아지가죽 핸드백을 호기롭게 마누라에게 선물했다가는 적어도 두어 달은 평촌의 사무실까지 걸어서 출퇴근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명품 가방을 뇌물로 받을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니 말이다.

중산층(?)의 남편도 그러할진대, 남친들이 여자 친구를 위해 알아야 할 정보라고?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란 자조적인 말이 회자되는 서글픈 현실에서 여자친구를 위해 100만 원이 넘는 명품 핸드백을 선물할 수 있는 남친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있긴 하다. 부모 잘 둬 웬만한 집 한 채 값도 넘는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특권층, 매일 밤 드라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능력 있고 멋진 남자들. 능력 없으면 연애할 자격도 없다고?

이 땅의 미혼 여성들은 이제 사랑에 빠질 달콤한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의 남친이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는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결단코 명품 세일 정보를 아는, 100만원이 넘는 송아지가죽 핸드백을 척척 사줄 백마 탄 왕자님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일 때 명품 세일 정보를 알아야 하는 남친의 존재도 보편적인 일일 것이다.


'예전 같으면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라는 비난을 들을 법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수용하는 분위기다'라고 기자는 말하고 있다. 고급 패션 산업이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육성되어야 한다는 명제에는 물론 100% 공감한다.

문제는 이 기사가 실린 곳이 보편적이고 보통의 정보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남녀노소가 모두 구독하는 신문이란 것이다. 물론 신문사도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여 더욱 독자를 늘려 광고 수입도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지만 기업이기에 앞서 여론을 살피고, 여론을 전달하는 공익이 우선시 되는 기업이어야 한다. 특정층을 위한 ○○럭셔리, ○○패션 잡지가 아니다. 우리 신문은 모든 계층의 여론을 대변하는 곳이 아닌 특정 집단을 위한 여론 형성 기관이라 한다면 물론 할 말이 없다.


얼마 전 <동아일보>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학원 특집을 보도한 적이 있다. 대치동의 J학원은 영어회화 위주의 수업이, 청담동의 C학원은 유학을 염두에 둔 토플 위주의 수업에 과제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란 세세한 정보까지 친절하게 보도했다.

정보는 곧 경쟁력이다.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또한 신문의 의무이다. 명품세일 정보와 대치동의 유명 학원 정보가 혹자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수도 있다.

남편은 <동아일보>를 나는 <오마이뉴스>를 구독한다. <동아일보>와 <오마이뉴스>의 차이만큼이나 남편과 나는 정치적 취향, 지지하는 당,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물론 부부별산제로 재산을 각자 관리하지는 않지만, 신문대금만은 수금사원을 몇 번씩 돌려보내는 한이 있어도 절대 내 지갑에서 나가는 법이 없다. 신문대금을 절대 내지 않고, 치미는 울화통을 주저리주저리 글로 풀고 있는 것. 전형적인 대한민국 중산층 주부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동아> 6월 30일자 [명품&뷰티] '명품 세일 중… 남친아, 알고있니?' 바로가기
<동아> [현장에서] '내 손으로 만드는 '나만의 명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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