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 위해 뛰며 내 상처 치유했죠”

김연자의 자전적 에세이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등록 2005.07.02 07:00수정 2005.07.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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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모를 돌보며 기지촌 여성과 혼혈아 돕기에 힘쓰고 있는 송탄 기지촌 거리에서의 김연자씨.
» 노모를 돌보며 기지촌 여성과 혼혈아 돕기에 힘쓰고 있는 송탄 기지촌 거리에서의 김연자씨.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스물 한 살 나이에 기지촌에 들어가 25년 동안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했고 이후 신학대생, 기지촌 운동가로 변신한 파란만장한 삶을 산 김연자씨의 자전적 에세이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삼인)가 출간됐다.

흔히 기지촌은 미군을 따라 미군 기지 주변에 모여든 부도덕한 여성들의 성매매 공간으로 여겨져 왔고, 기지촌 여성들은 ‘양공주’ ‘양색시’라 불리며 밑바닥 삶을 살아왔다. 1945년 미군이 이 땅에 들어온 뒤 동두천·의정부·오산·평택 등 전국 18개 도시에 기지촌이 들어섰다. 현재까지 30만이 넘는 여성이 기지촌을 거쳐갔지만 그 곳은 사람들에게 잊힌 공간이다.


김연자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친척 오빠에게 성폭행 당한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로움과 분노를 그대로 가지고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년여 동안 신문사에서 수습기자로 일하기도 했지만 방황을 거듭하다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다.

반창고 공장 노동자, 책 외판원, 버스 안내양, 구두닦이 등을 거쳐 기술을 배우려고 들어간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잡혀온 여성들을 통해 성매매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난 여성들을 따라 63년 동두천 기지촌에 들어가 그 세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 어릴 적 강간의 상처, 생활을 책임지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어머니에 대한 갈증, 여고시절 부잣집 친구들에 대한 반항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삶을 자포자기했던 시절이었다”며 기지촌 생활을 시작한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여성신문
김씨는 70년대 송탄과 군산 아메리카 타운의 여성 자치회에서 부회장과 회장을 맡으면서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성년자들이 기지촌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고, 성병 검진 과정의 폭력성에 항의해 검찰청과 법정을 드나들다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77년 군산 아메리카 타운에서 동료 이복순과 이영순이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법정에 나가 필사적으로 진술해 67년 한·미 행정협정 이후 최초로 미군 범죄에 무기징역형을 선고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92년의 ‘윤금이 사건’보다도 15년이나 앞선 일이었다.

88년 마흔 여섯 나이에 25년간의 기지촌 생활을 정리한 뒤 세상 밖으로 나와 신학교에 다니며 자신의 삶과 경험, 기지촌의 현실을 알리는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기지촌 동료들과 함께 천막 공동체와 쉼터를 만들고 기지촌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오해를 풀기 위해 애썼다.


김씨는 “쉼터를 만들고 같은 처지의 여성들과 울고 웃으며 생활하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최근엔 송탄에 참사랑선교원을 지어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들을 위한 활동을 하며 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정열적으로 열심히 산 여자, 죽는 순간 오분 전까지 악을 쓰고 열변을 토했던 여자 여기 묻힌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이미 부탁해놓았다는 김연자씨.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을 10년 만에 이룬 그는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재능 있는 혼혈아를 키워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희망나눔센터’를 위한 작은 건물 하나를 마련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여성신문 835호 게재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여성신문 835호 게재되었습니다.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김연자 지음,
삼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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