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성적 낮은 교사는 영어실력도 없다?

[주장] KBS뉴스, '토익 광풍' 부채질하나

등록 2005.07.04 08:54수정 2005.07.0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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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밤 KBS 9시 뉴스는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들의 '영어 성적'을 공개했다. 일선 학교에서 영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성적이니만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잘 나왔다면 뉴스거리가 안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궁금증을 더 커지게 한다. 그런데 이 영어 성적이라는 것이 토익 성적이다. 이 점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토익(TOEIC, 'Test of English for International Communication)은 1979년 일본 한 기업이 비즈니스 영어능력 평가를 위해 미국 ETS(Educational Testings Service)에 의뢰해 만들었다. 주로 비즈니스 영어 능력 측정용 시험이다.

더구나 영어 시험의 신뢰성에 의문을 더해 왔다. 작문이나 말하기도 없고 점수가 높다고 영어실력이 좋다고 말할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을 영어교사들까지 잘 보아야 할까?

영어교사 14%, 중학생만도 못하다?

KBS 9시 뉴스는 3일 밤 영어교사들의 영어성적을 심층취재로 다뤘다.
KBS 9시 뉴스는 3일 밤 영어교사들의 영어성적을 심층취재로 다뤘다.KBS
뉴스는 전국 2만6천명의 교사 중 272명의 시험 성적이 평균 718점, 전체의 35%인 96명이 700점을 넘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을 이어 내 보낸다.

"박세원(대기업 과장): 요즘 대기업 입사지원자들의 영어점수가 8, 900점이 수두룩한데요. 현직 영어전담 교사 점수가 700점 미만이 많다는 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전담 교사가 비즈니스맨 영어 혹은 토익을 전적으로 공부할 이유는 없다. 일반 기업체의 입사 지원자처럼 대학 4년 내내 혹은 졸업하고도 토익에 매달려야 할 필요는 없고 그것이 실력의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일선 기업체에서는 토익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지 오래다. 토익 900점이어도 간단한 회화조차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익은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 학원에서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혼자 꿍꿍거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잘 나오는 문제유형, 쓰는 단어가 다르다. 또한 작문이나 회화를 잘 한다고 토익을 잘 본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토익을 잘 본다고 토플을 잘 보는 것이 아니듯 토플을 잘 본다고 토익을 잘 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일선 영어 교사들은 토익이 아니라 어휘·문법·독해 위주의 토플(TOEFL: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세대들이다. 비즈니스 위주의 영어시험을 못 본 선생님에 대한 비판은 모욕적인 수준으로 나간다.


"기자: 지난해 토익위원회를 통해 시험을 본 중학생 2만3000여명의 평균은 568점. 대상 교사의 14%인 39명이 중학생 평균 점수를 넘기지 못했고 이 가운데 초등학생 평균점수인 494점 이하인 교사도 21명이나 됐습니다. 심지어 총점이 270점인 교사까지 나왔습니다."

단순히 점수만을 본다면 충격적이고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보다 못하다는 비난이 가해질 법하다. 사실 영어 교사 중에는 실력이 없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을 무시하고 일반화해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다.

여러 지역적 여건 등과 함께 얼마나 집중해서 토익을 준비했는가도 중요하다. 마치 영어 교사는 토익에서 무조건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고 그것이 실력이라는 인식은 편견이다.

토익은 영어교육의 목적이 아니다

뉴스는 자연스럽게 학부모들의 걱정을 곁들이는데, 뉴스의 맥락상 반응이 매우 부정적이다.

"최미숙(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1, 2년 공부한 중학생들보다도 성적이 낮게 나왔다는 것은 과연 그 선생님을 갖다가 우리들이 어떻게 믿고 우리 아이를 맡겨야 할지 정말 이건 너무 충격적이고 끔찍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의 말에서 '끔찍하다'는 말은 마치 토익이 영어 교육이나 실력의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전제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토익은 영어 교육의 목표가 아니며 실력의 절대적인 기준도 아니다.

첫째, 비즈니스 영어 시험은 교사들의 영어 시험을 말해주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토익이 영어 실력의 잣대가 아니다.

둘째, 토익 자체는 작문이나 회화가 없으므로 영어 실력을 측정하는데 부정확하다.

셋째, 토익은 25년 이상 같은 유형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획일화된 시험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영어 구사력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넷째, 학교 교육은 토익영어 체계가 아니다. 교육의 목표도 비즈니스 영어를 잘 구사하는데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된 영어 실력 측정 시험이나 공공 교육프로그램이 없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일본영어검정협회의 STEP(The society for Testing English Proficiency)와 중국 정부기관이 만든 CET(College English Test)과 같은 국내 자체의 객관적인 시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토익 광풍 부추기기?

국내 토익 시험을 주관하는 국제교류진흥회는 2003년 646억원의 운영 수익을 올렸고, 매년 78억의 로열티를 미국에 지불하고 있다. 학원과 교재 시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해 팽창하고 초등학교 학생에 이르고 있다.

토익 광풍에 온 나라가 휘둘리고 가정 살림에 큰 부담을 주는 현실이 더 걱정할 일이다. 무엇보다 토익 시험에 수많은 비용을 쏟아 붓고도 실제 현실에서는 쓰지 않는 소모의 반복이 더 끔찍하다.

KBS 9시 뉴스는 토익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토익이 영어실력의 절대 기준인양 제시했으며 중고등학생들이 토익에 매달리는 행태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객관적인 시험으로 영어 교사들의 실력을 측정하고, 부족한 실력을 내실화하는 공교육 강화 방안 모색이 더 필요하다. 토익 시험 점수 낮다고 타박만 하는 것은 일선 공교육현장을 더욱 토익 광풍에 몰아넣는 방송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다.

[KBS 뉴스 9] 영어 교사들의 토익 성적은?(7월 3일 방송)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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