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화국' 시민들에게 고한다

[주장] 골프 대중화 정책부터 전면 철회하라

등록 2005.07.04 12:44수정 2005.07.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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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집중호우 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이해찬 총리가 진대제 장관 등과 함께 제주도에서 골프를 친 일로 또 다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강원도 대형 산불 때 골프를 친 일로 구설수에 휘말려 국회에서 사과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등 야당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격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일국의 총리라는 사람이 나라가 온통 물난리를 겪고 있는 마당에 한가하게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니 호된 질책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골프로 인해 야기되는 이러한 문제가 이번 한 번으로 그칠 일과성이 아니요, 또한 이 총리 개인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a 2004년 2월 4일. 엄청난 산림파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골프장의 모습.

2004년 2월 4일. 엄청난 산림파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골프장의 모습. ⓒ 이찬훈


대한민국은 골프공화국?

노무현 정권 들어서만도 여러 차례 고위 공직자들이 국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한가하게 골프를 쳤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이전 다른 정권 하에서도 이러한 일은 수 없이 있었다.

지난 4월 초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중생을 제도해야 할 청정한 도량인 불국사에서 승려들이 불법으로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놓고 골프를 쳤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수많은 부산 시민들이 찾는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고서도 오히려 운동의 자유를 막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2005년 6월 30일자 <국제신문> 7면 기사 참조).


정치인에서 고위 공직자와 종교인, 일반시민에까지 이르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모두가 자랑스런 '대한 골프공화국'의 시민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들의 국기인 골프를 사랑하고 즐기며 자랑스러워하는 '골프공화국'의 애국시민들이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한국의 여자 프로 골프 선수가 이른바 세계적인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갔지만, 당시에 필자와 같은 직장에 다니던 한 사람은(그 역시 '골프공화국'의 시민이다) '본토에서 한국인이 우승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언감생심 '골프공화국'의 시민이 되는 것은 물론 그 공화국 문턱을 넘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필자로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이요, 경지였다.


그러나 이것은 자랑스런 '골프공화국'의 시민권을 갖지 못한 못난 필자의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생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 뒤에 필자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 이 '골프공화국'의 시민들이 이미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 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쾌거에 감격하며 IMF에 지친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격찬하면서 열광한 데서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를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골프장으로 내몰아 골프 선수로 키우는 등의 골프 광풍이 몰아닥친 것으로도 잘 알 수 있었다.

골프대중화가 경제활성화 대책?

이런 '골프공화국' 시민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과연 우리의 골프 천재와 영웅들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발군의 골프 실력을 세계만방에 휘날렸다. 또한 이에 따라 '대한 골프공화국' 시민들의 자긍심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급기야 이들은 그들의 영토가 비좁고 국민 수가 적다고 하면서 일반 대중들을 그들 공화국의 시민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영토를 대폭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정책 담당자들이 대부분 '골프공화국'의 시민권자이기도 한 우리 정부는 그러한 요구에 기꺼이 호응하였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우리 정부는 김대중 정권 이후 그동안 이른바 골프 대중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러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골프 대중화 정책에 힘입어 2001년 4800여만평이었던 우리나라 골프장 면적은 2004년 현재 5300여만평으로 여의도 면적(254만평)의 21배에 달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또한 지난해 경제부총리는 허가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골프장 230개를 한 해 안에 일괄 심사해서 대부분 허가해주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앞으로도 계속해서 골프 대중화 정책을 밀고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 대책 운운하면서 이처럼 이른바 골프 대중화 정책이라는 것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정책이라고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현재 '골프공화국'의 시민권인 골프 회원권은 보통 몇 억 원이나 하며, 골프장에 한 번 나가는 데 적게 잡아도 최소 20여만원이나 든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반 서민들 중에서 과연 이런 '골프공화국'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는 심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물론 정부의 논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골프장을 늘려서 그 가격을 낮추어 일반 시민들도 얼마든지 싼 값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일반 대중들 모두가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그 정도로 가격이 낮추어질 수 있는지, 또 그렇게 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골프장이 더 지어져야 하는지가 문제이다.

골프장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18홀의 경우 적어도 30만평의 넓이를 필요로 할 만큼 넓은 면적의 토지를 차지하는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미국처럼 평지의 넓은 초원을 가진 나라에나 알맞은 운동일 뿐 우리나라처럼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 지형인 곳에서는 도저히 대중화 할 수 없는 운동이다.

그토록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는 골프장을 대중 누구나가 즐길 수 있도록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삼림을 없애고 국토를 황폐화시켜야 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골프장이 과도한 농약 살포 등으로 얼마나 많은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연간 해외 골프 여행객은 30여만 명이고, 이들이 해외에서 쓰는 경비는 1조원을 넘는다는 여행업계의 통계를 들먹이며 이 돈을 국내로 끌어들여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골프 대중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맞지도 않는 골프 문화에 젖어 이런 왜곡된 소비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 규제하거나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귀중한 국토를 황폐화시켜가면서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나아가 그것을 온 국민에게 퍼뜨리는 것이 결코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으며, 경제적으로도 그만큼 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골프대중화 정책 철회해야

이처럼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요, 우리에게는 맞지도 않아서 전 국토와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는 주범이 되는 것이 골프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골프공화국'의 시민으로 등록이 되어 있으며,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목을 길게 늘이고 줄을 서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유만 있으면 '필드'에 나가는 것이 소원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자랑스런 그들 공화국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일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며,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이름을 떨치는 영광스런 운동에 동참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집중호우로 인해 일반 서민들이 고난을 겪고 있을 때라도,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골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요,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이런 일이 발생할 때에만 순간적으로 분노하다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자랑스런 '골프공화국'의 시민들을 부러워하며 그 일원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골프공화국'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폐해를 직시하고 그 일원이 되기를 단호히 거부할 때에만, 우리는 이번 이 총리의 행태를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특히 이번 일로 이 총리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에게 더욱 타당한 얘기이다.

자꾸만 되풀이되는 이런 사태에 대한 일시적 흥분과 비판, 그리고 미봉적인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라 차제에 잘못된 '골프대중화' 정책을 전면 철회하도록 해야 한다. 신토불이란 말은 운동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잘못된 '골프대중화' 정책을 즉각 철회하고 우리 땅 우리 국민 모두에게 알맞은, 진정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체육 진흥 정책을 새롭게 세우고 추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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