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03

비분강개(悲憤慷慨)

등록 2005.07.05 17:02수정 2005.07.0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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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렇다면 몽고병들을 조선 땅에 둔치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최명길은 정명수와 용골대를 향하여 얼굴까지 일그러트리며 크게 소리쳤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았다. 용골대는 정명수를 통해서 말을 전했다.


"지금 몽고 땅은 기근이 심해 병사들과 말을 먹일 식량과 목초가 없다. 그래서 잠시 조선 땅을 빌어 그들을 놓아두겠다는 것인데 어찌 이리 큰소리를 치는가? 너희들은 대 청국에서 말하는 바를 그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최명길은 언성을 낮추어 사정조로 얘기했다.

"전쟁으로 인해 조선 땅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는데 어디서 그들이 먹고 살만한 것이 난단 말이오? 몽고병들로 인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으니 그들을 자기 땅으로 도로 물리어 청국에서 자그마한 은혜를 베풀어 주길 바라오."

용골대는 최명길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번에 수많은 조선 백성들을 심양인근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가? 그깟 수만의 몽고병들이 있다손 친들 뭐가 그리 대수겠느냐?"


청의 입장에서 몽고병들은 관리가 어려운 대상이었다. 비록 몽고를 쳐 복속시키긴 했지만 몽고의 기마병들은 여전히 강력한 존재였고 조선 출병 때 새로이 복속한 한인 병사들과 그들을 대거 끌고 오긴 했지만 예상보다 일찍 조선이 항복한 이상 대기근이 일어난 몽고 땅에 그들을 다시 돌려보냈다가는 어떤 후환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혹시나 청의 병사들이 조선에 눌러 앉아 버리는 것은 아닌 가하는 조선조정의 염려와 그로 인한 무력대응이 일어나는 것은 용골대가 미처 깨닫지 못한 바였다.

"저 놈들 아주 신이 났구만!"


병사들과 함께 수풀 속에 숨어 말을 잡아 구워먹는 몽고병들을 보며 장판수는 코웃음을 쳤다. 이미 조선의 임금이 항복했기에 거칠 것이 없다고 여긴 몽고병들의 일부는 아무런 대비 없이 소부대 단위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판국이었다. 이를 눈치 챈 장판수는 차충량, 차예량 형제와 최효일 등에게 부대를 나누어 동시에 흩어져 있는 몽고병들을 공격하기로 한 것이었다. 병사들이 사기는 충만했으나 다만 아쉬운 것은 보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당장 화약부터 부족하여 이를 아끼기 위해 각기 궁수와 창검수만을 거느리고 나서게 되었다.

"쳐라!"

더 이상 두고 볼 것도 없다는 판단 하에 장판수는 손을 올려 신호했고 화살이 무방비 상태의 몽고병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몽고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흩어졌고 그 가운데로 창검수가 돌격해 혼란상태의 몽고병들을 마구 치고 베어대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나 장판수가 거느린 병사들은 한명도 다치지 않은 채 30명의 몽고병을 죽이고 40여명을 붙잡은 승리를 거두었다.

"이 놈들 이래 더 이상 살려둘 것도 없네! 모조리 죽이라우!"

장판수의 명에 조선병들은 분풀이라도 하듯 살려달라고 비는 몽고병들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앗아가 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차충량등도 마찬가지였으나 몽고병들의 총 지휘관인 보얀은 그때까지도 마유주(말의 젖을 발효시킨 술)에 취하여 장수들과 흥청대느라 전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 인근에 흩어진 병사들이 며칠 째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부장 토올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보얀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놓아 두어라. 전쟁도 끝났는데 그 놈들도 나름대로 즐겨야 할 것 아닌가? 그나저나 조선의 겨울은 몽골 땅에 비하여 따뜻하기 그지없구나! 허허허…, 오늘밤도 병사들에게 따로 망을 볼 것은 없다고 전하라. 내 신나게 놀지 않는 놈들은 군령으로 다스릴 터이다!"

토올은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역시 조선군이 조직적으로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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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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