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의 밤을 밝히고 있는 주점.손봉균
처음에는 허풍이 약간 섞였을 거라고 웃어 넘겼지만 가게에 앉아서 손님들이 오가는 걸 지켜 보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한 테이블 사람 수가 다섯을 넘는 경우도 드물고 열 명 남짓한 단체손님(!)이 와도 저녁거리를 시킬 뿐이었다. 간혹 거기에 술이 더해지긴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목만 축이는 거다. 그렇게 밍숭맹숭하게 밥만 먹다가 과외다 학원이다 금세 뿔뿔이 흩어져 버리니 매상도 매상이지만 술집하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물론 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다. '계급장 떼고 넥타이 풀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형님이 보기에는 요즘 대학생들 영 맹탕이라는 거다.
"개강 파티나 종강 파티 때는 그래도 술을 좀 마시지 않나요?"
대학 시절 선·후배가 어울려 왁자지껄하던 풍경을 떠올리며 물어 보지만 대답이 영 시원찮다. 오히려 떼로 술을 마시자고, 오늘은 한번 밤새 마셔 보자고 꼬시는 사람이 바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하긴 아직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후배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요즘 애들 술 안 마셔요. 저도 선배지만 예전 같이 술 취해서 다니면 손가락질 받는다니까요."
"형이나 만나니까 마시는 거지. 안 그러면 우리도 마실 일이 없어요. 물론 술 안 먹는 게 좋긴 하지만 선·후배 간에 정이 떨어지니까 아쉽긴 해요. 가끔은 예전이 그립기도 한데…."
꼭 술을 많이 마셔야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술 때문에 웬수가 된 사이도 익히 봐왔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잘 안 풀리는 연애와 펑크 난 학점, 불안한 미래를 안주 삼아 서로의 맘을 열어 보이는 것도 꽤 짜릿짜릿한 일이다. 왜 그 짜릿함을 모르는 걸까?
"삐 마이나 밖에(!) 못 받았다고?"
"이제 방학이네. 뭐 할 거니?"
"뭐하긴요. 계절학기 들어야지요."
후배의 대답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내게 계절학기는 소위 '빵꾸' 때문에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듣는 수업이었고 평소 알고 지내던 '술꾼'들은 다 모여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후배님은 평점이 4점대에 육박할 만큼 좋은 성적을 가진 범생이가 아닌가.
"학점 높여야지요. 지난 번 들은 재무관리를 '삐 마이나(B-)'밖에 못 받았거든요. 입사 원서 쓰려면 최하 '삐 뿔(B+)' 이상은 받아야 하거든요."
"아~아."
나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변하는 동안 나도 변했고 계절학기도 변하고 있었다. 이젠 졸업 그 자체를 위해 계절학기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입사 원서에 좋은 학점을 적기 위해, 혹은 (예전 같았으면 정말 희한하게 보였을) 조기졸업이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계절학기를 수강한단다.
"형이 '빵꾸' 나서 듣던 때와는 달라요. 지난 번 겨울학기 때 들은 과목이 점수 잘 안 나왔다고 이번 여름에 또 듣는 사람도 있어요. 예전에는 남들 놀 때 공부한다고 점수도 대충대충 줬잖아요. 지금은 택~도 없어요. 상대 평가라 다 잘 줬다가는 학생들이 가만 있지도 않아요."
후배의 전공은 재무관리의 '재'자와도 상관이 없다. 경영학에 대해 풍월이라도 읊지 않으면 취직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영학을 복수전공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이 후배가 유난을 떠는 축도 아니란다. 복수전공뿐만 아니라 트리플 전공까지 있다고 하니, 내가 지금 대학을 다니면 어떻게 됐을까 눈앞이 캄캄해진다.
"방학이고 뭐고가 어디 있어요? 영어학원도 다녀야 되고 인턴 사원 실습도 나가야죠. 돈 있는 애들은 방학하면서 연수 받으러 날라갔죠. 신입생 때 선배들하고 놀러 다니던 때가 좋긴 했는데 도무지 짬이 안 나네요."
학교 선배는 우리들에게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