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람들은 경포보다 안목이 더 좋대

등록 2005.07.06 13:34수정 2005.07.0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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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거리를 사러가는 친구의 차 안에서 나는 내내 조수석에 앉은 다른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주 5일 근무라 먼저 강릉으로 내려오는 그 친구에게 장을 미리 봐 놓으라고 부탁했었다. 우리 가족은 아무래도 늦게 도착할 것이니까, 우리가 오면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점심때 만난 둘은 숙소에 아내와 아이들만 남겨놓고 2시간이 넘도록 장을 본다며 나갔다가 겨우 주문진에서 회만 떠오고 말았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한 친구(영세)는 강릉에 살고 있다. 아마 10년도 넘었을 거다. 직업군인으로 여러 도시를 떠돌다가 이제 이곳에 자리 잡은 듯하다. 또 한 친구(우진)는 의정부에 살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고등학교 친구들 7명 중에 이번에 함께 시간을 낸 친구가 나까지 이렇게 셋이다.

지나가는 말로 우리가 제일 먹고 살기 좋은가 보다고 말했다. 다들 주말에도 일하느라 바쁜데 우리만 팔자가 좋다고 말이다. 저녁을 먹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강릉에서 첫 날을 보냈다.

다음날(6월 26일)은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놀 생각으로 이것저것 챙겨서 안목해수욕장에 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경포대에서 송정, 안목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있고,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어 드라이브코스로도 제격인 곳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렇긴 하다. 하지만 소나무 숲 때문에, 달리는 차안에서 바다를 보기는 쉽지 않다.

몇 년 전 강릉에 사는 이 친구를 찾았을 때 그가 데려간 바다는 경포가 아니라 이곳 안목이었다. 가을쯤으로 기억하는데 조용하고 아늑했다. 강릉 사람들은 안목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땐 사람도 없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오늘은 꽤 많다. 서둘러 차를 세우고 해변에 나가 그늘 막을 쳤다. 아직은 바닷물이 찬 6월이지만 사람들은 벌써부터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안목해수욕장과 멀리 보이는 안목항 방파제
안목해수욕장과 멀리 보이는 안목항 방파제방상철
아이들은 바다를 향해 뛰어가고, 어른들은 그늘 막에 앉아 노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물에 뛰어 들어갔을 텐데, 이젠 뒷마무리가 먼저 걱정되니 우리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이곳 안목해수욕장은 강릉시 견소동에 위치한 길이 500m의 조그만 해수욕장이다. "안목"은 남대천 하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항진에서 송정으로 가는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해수욕장 바로 옆으론 안목항이 있고, 아직도 공사가 많이 남은 방파제가 있다. 그 방파제 위로 빨간 등대가 보이는데 바다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한번 다녀올 만 하다. 해변은 경사가 심한 편이라 파도와 놀다가 위로 올라오려면 다소 힘을 내야 한다. 그리나 무엇보다 좋은 건 화장실이 상당히 깨끗하다는 사실이다.

강릉에 사는 친구의 말이 8월 말쯤이면 고등어에 쫓긴 멸치가 백사장에 올라오는데, 작년엔 바가지로 퍼 담았다고 한다. 그게 사실일까?

아이들은 정말 재밌게 잘 놀고 있다. 어제 처음 만난 꼬맹이 친구들은 남자아이가 4명에 여자가 1명이다. 제일 막내 동생이 여동생이라 그런지 모두들 잘 놀아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막내 동생이 한 오빠하고만 다정하게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말이다. 부러워 보였는지 다른 아이들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결국 막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방상철

방상철

이런 저런 모습에 웃고 떠들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모두 시들해졌다. 한동안 바다만 한없이 바라보다 따분해져서 결국 안목항 방파제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기는 먼 거리여서 나와 친구들만 걸어갔다.

안목항은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지금 한참 공사 중이다. 얼마나 큰 항구가 들어설지 공사의 규모를 보니 짐작이 간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북방파제의 길이만 739m라고 한다.

안목항
안목항방상철

방파제에는 언제나 낚시꾼들이 있다. 이곳 안목항은 남대천의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목이라 바다낚시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어느새 등대까지 왔다. 금방인 것 같았는데 그래도 해변에서 30분이나 걸었다.

방파제 안쪽 바다는 물이 고여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지저분해 보였다. 혹시 바닷물이 썩는 것인 아니겠지? 바깥쪽의 푸른 바닷물과 비교하니 더 그렇게 보이는 듯하다. 방파제 중간쯤엔 아이들이 몰려서 놀고 있다.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저렇게 헤엄을 잘 치는 것일까? 물이라면 겁부터 나는 나에겐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다.

방상철

방상철

등대 근처에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가끔 중국집 오토바이가 다녀가곤 했다. 정말 "자장면 시키신 분?" 소리를 지르며 다닌다.

오늘 이렇게 만났다 헤어지면 언제 또 다시 만날지 장담할 수 없는 친구들과의 여행이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예정처럼 다가오고 있다. 이제 해변으로 돌아갔다가 잠시 휴식을 갖고 강릉 친구네 집에 들렀다가 각자의 집을 돌아갈 것이다.

다음엔 더 많은 동창생들을 볼 수 있길 바라며 빨간 등대를 등지고 가족이 기다리는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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