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 신나게 자전거를 타다

[자전거여행기④]홍제천 상류에서 탄천 입구까지 30km 여행

등록 2005.07.06 20:20수정 2005.07.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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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기 전 잘못 말한 게 화근이었다. "내일은 자전거타고 무조건 탄천 입구까지 가는 거다"라고 말했는데, 다음날 눈을 뜨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내뱉은 말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밖을 나섰다. 물론 동참하기로 한 친구도 내가 "약속은 약속"이란 말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홍제천 사천교에서 비가 온 뒤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홍제천 사천교에서 비가 온 뒤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김대홍

홍제천 상류에서 탄천 입구(잠실 올림픽경기장옆)까진 대략 30km 정도 되는 거리다. 홍제천 상류에서 성산대교 한강 합류지점까지 7.5km 정도. 성산대교에서 청담대교까지 약 19km이었다.


친구는 비가 오건 말건 아주 맹렬하게 바퀴를 돌렸다. 물이 튈까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던 나도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어느새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등에 조금씩 얼룩이 생기던 친구의 등판엔 까맣게 두꺼운 얼룩이 생겨 버렸다.

비가 온 뒤 물에 잠긴 건널목을 건너는 아이들
비가 온 뒤 물에 잠긴 건널목을 건너는 아이들김대홍

홍제천을 따라 성산대교까지 내려간 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양화대교에서 여의도 쪽으로 강을 건넜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여의도엔 의외로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우산 하나 받쳐 쓰고 거니는 20대(로 보이는) 연인들을 비롯하여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까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한강을 횡단하는 내내 볼 수 있었다. 낚시꾼들도 적지 않았다. '한강에 고기가 잡힐까?'라고 의문을 표시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비가 살짝 뿌린 뒤 양화대교옆에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
비가 살짝 뿌린 뒤 양화대교옆에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김대홍

이날 강을 따라가면서 본 고기 중엔 제법 큰 게 많았다. 팔뚝만한 장어를 비롯하여, 메기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까지. 잠실대교 부근에선 수십 명 사람들이 참게를 잡는 모습도 목격했다.

비오는 날 자전거를 타니 좋은 게 많았다. 우선 시원하다는 점이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면서 땀이 나도 금세 사그라졌다. 물에 씻긴 서울풍경도 참 볼만했다. 물이 고인 달릴 때 물살을 가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주로가 나타난다.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일명 '자전거 고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주로가 나타난다.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일명 '자전거 고속도로'김대홍

자전거를 타는 동안 하천에서 물놀이를 동내 가족들도 많이 봤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물속에 뛰어들어 동심을 만끽하고 있었다. 메마른 하천이 어느 순간 디즈니랜드만큼 재밌는 곳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사람이 적어 편안하게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사람이 없는 구간에선 친구와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를 펼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주위 팻말들을 읽어보면 한강 생태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진은 밤섬 팻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주위 팻말들을 읽어보면 한강 생태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진은 밤섬 팻말.김대홍

여의도에선 잠깐 쉬며 '밤섬'의 유래를 읽었다. 섬 모양이 밤알같이 생겼다 해서 '밤섬'이라 이름 붙은 그 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 전까지 62세대 443명이 거주했다. 그 해 2월 토사와 석재를 여의도 개발에 이용하기 위해 폭파된 뒤 10여개 조그마한 섬의 형태만 남았다. 1988년부터는 철새 도래지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설명을 보니 밤섬에서 서식하는 새들이 적지 않다. 흰꼬리수리, 원앙, 황조롱이를 비롯하여 민물가마우지, 청둥오리, 괭이갈매기, 쇠오리 등 조류만 41종, 어류는 가시납지리, 살치, 강준치 등 28종이 살고 있다.

길을 가다 보니 '산란기에는 쏘가리, 자라를 포획하지 맙시다'란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한강에 두 생물이 많이 살고 있고 또한 포획하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여의도엔 파크골프장이란 독특한 공간이 있다. 골프와 게이트볼을 합성한 독특한 스포츠다.
여의도엔 파크골프장이란 독특한 공간이 있다. 골프와 게이트볼을 합성한 독특한 스포츠다.김대홍

여의도엔 파크골프장이란 독특한 레저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난해 5월 개장한 그곳은 골프와 게이트볼을 합성시킨 독특한 공간이다. 일반 골프 코스에 비해 짧지만 벙커, 러프 등 나름대로 골프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라운드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걸리며 전장은 700-1,000m다.

한강 남단길은 굴곡이 매우 심한 편이다. 상하굴곡이 많아 평지를 달릴 때보다 훨씬 힘이 든다. 90도로 꺾이는 곳도 있기 때문에 고속 주행시 조심해야 한다. 달리다보면 '사고많은 곳, 속도를 줄이시오'란 팻말을 많이 볼 수 있다.

반포지구보트장옆엔 조그만 호수 공원이 눈길을 끈다. 평소 한낮엔 햇볕 쬐기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조금 더 달리면 담벼락에 풀이 멋있게 달라붙은 풍경이 나타난다. 여의도기점에서 6km쯤 되는 지점이다.

동작동이 원래는 삼남지방과 서울을 이어주던 큰 나루터란 설명이 동작대교 밑에 붙어 있다.
동작동이 원래는 삼남지방과 서울을 이어주던 큰 나루터란 설명이 동작대교 밑에 붙어 있다.김대홍

동작대교를 지나칠 때쯤이면 '동재기 나루터'란 돌에 새긴 글씨가 길손을 맞이한다. '동작'을 옛사람들은 '동재기'라 읽었던 모양이다. 아래에 적힌 설명은 '수원 이남 충청 영남 호남 등 삼남 지방과 서울을 이어주던 나루터'란 내용이다.

우리가 탄천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거친 다리는 모두 15개였다. 성산대교에서부터 양화대교, 당산철교,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 경부선 경인선 철교, 한강대교,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 청담대교까지 한강 다리가 많다는 것을 몸소 겪었다.

이중 성수대교와 청담대교를 제외한 나머지 도로엔 인도가 나있고 잠수교와 한강대교, 양화대교는 한강 남북 자전거 도로를 연결한다.

반포대교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담쟁이풀 지역. 보기에도 시원하다.
반포대교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담쟁이풀 지역. 보기에도 시원하다.김대홍

한강 다리를 지나면서 누구나 한번쯤 고개를 돌리게 되는 다리가 '성수대교'다. 94년 10월 21일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한 참사를 누구나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도 "저 다리가 성수대교가?"라며 물으며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잠실종합경기장옆 탄천주차장에서 다시 돌아갈 땐 가늘게 내리던 비가 억수로 바뀐 상태였다. 다행스런 점은 역풍이 불지 않아 올 때보단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전거를 탈 때 오르막길보다 더 힘든 건 어찌 보면 역풍이다. 자신의 힘으론 어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강과 탄천이 만나는 지역. 잠실종합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한강과 탄천이 만나는 지역. 잠실종합경기장이 있는 곳이다.김대홍

아무튼 비에 흠뻑 젖은 우리는 흙탕물이 튀기는 것쯤은 아랑곳없이 오던 길을 되돌아왔다.

서울은 낮과 밤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맑을 때와 흐릴 때, 그리고 비올 때 풍경이 또한 다르다. 비오는 날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횡단하면서 우린 또 다른 서울을 만났다.
거의 전투를 한 듯한 친구의 옷차림. 옷뿐만 아니라 모자까리 흙탕물로 가득했다.
거의 전투를 한 듯한 친구의 옷차림. 옷뿐만 아니라 모자까리 흙탕물로 가득했다.김대홍

덧붙이는 글 | 비가 오는 관계로 당일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관련 사진은 모두 비가 오기 전 해당 코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덧붙이는 글 비가 오는 관계로 당일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관련 사진은 모두 비가 오기 전 해당 코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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