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에 묻힌 몰운대에서 다대포를 바라보다

부산의 또 다른 멋, 다대포와 몰운대

등록 2005.07.07 00:07수정 2005.07.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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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
하늘가 몰운대는 흰 구름에 묻혔네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 조선 선조 40년, 동래부사 구완 이춘원 지음


가만 눈을 감고 이 시조를 한 번 읊어보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머리 한구석에서 한 폭의 수묵담채화가 찬연히 떠오르지 않는가. 그리고 이 수묵담채화를 그린 화가의 눈에 들어있는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 파도에 수 만년을 깎여서 무너질 듯 서있는 절벽들을 상상해보라. 거기에 붉은 해가 긴 여울을 끌고 다가온다면, 아마 환상이겠지.

이 시조는 다대포 해수욕장의 끝자락에 있는 몰운대라는 곳을 찬양한 것이다. 얼마나 그 경치가 뛰어났으면 현세의 인간들에게 시조까지 남겼을까? 말이 필요 없다. 바로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한 번 가보라.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몰운대 전경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몰운대 전경김대갑
몰운대는 16세기 정도만 하더라도 몰운도라고 불리는 섬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낙동강에서 흘러온 흙과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서 다대포와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몰운대라는 말은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은 데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몰운대에서 바라 본 해변
몰운대에서 바라 본 해변김대갑
이 몰운대의 남단에는 태종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해식절벽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으며, 배후인 육지 쪽에는 수려한 모래사장을 가진 널따란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다. 예로부터 몰운대는 울창한 숲과 빼어난 절벽, 수려한 모래밭으로 이름난 경승지였다. 특히 삼광조, 갈매기등 많은 수의 철새들을 볼 수 있어 그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몰운대 올라가는 길
몰운대 올라가는 길김대갑
몰운대에는 이런 뛰어난 경치 외에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다대포 객사라는 건물과 이순신 장군이 승리한 부산포 해전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다.

원래 객사라는 곳은 지방 관리가 대궐을 향해 망배를 드리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사신이 올 때는 숙소로도 사용되던 관청 건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부산에는 과거 여러 개의 객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몰운대의 다대포 객사만 남아 있어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다대포 객사
다대포 객사김대갑
그럼 이 객사가 왜 여기에 남아 있는 걸까? 그건 다대포의 전략적 가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다대포는 예부터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으로 중시되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부산진과 맞먹는 정도의 수군기지가 있었으며, 그 우두머리인 다대첨사의 벼슬도 동래부사와 맞먹는 정3품 당상관일 정도로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던 해군기지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다른 진에 비해 두 배의 전선을 갖출 정도였다고 하니 그 전략적 가치가 실로 지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다대포 객사는 바로 그 해군기지인 다대 첨절제사영에 있었던 객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다대포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정운 장군이란 인물이다. 원래 정운 장군은 전라좌도 녹도만호의 벼슬을 한 장수로서 이곳 다대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부산포 전투에 참가하여 적의 맨 앞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순절한 장수였고, 그를 이곳 지역민들이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몰운대 안에 있는 귀여운 해변
몰운대 안에 있는 귀여운 해변김대갑
지금 몰운대에 가면 '정운공순의비'라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은 그의 8대손인 정혁이란 분이 다대첨사로 부임하여 몰운대의 가장 끝자락이자 바다를 한 눈에 굽어보는 위치에 세운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 '정운공순의비'가 있는 곳에 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기자는 그저 우울하고 화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몰운대 끝자락에서 보이는 바다의 작은 섬들
몰운대 끝자락에서 보이는 바다의 작은 섬들김대갑
그리고 이곳 다대포에는 박영효라는 걸출한 친일파에 얽힌 어이없는 사연이 하나 전해져 온다. 박영효는 갑신정변을 일으켜 친일정권을 세웠으나 3일 만에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박영효는 이완용 내각에서 궁내부대신을 지냈으며, 합방 이후에는 일본의 후작으로 살아간 철저한 친일파였다. 그런데 이 자가 죽기 전에 뒤가 두려운지 자신이 누울 명당자리를 그렇게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자리가 바로 다대포 산비탈이었고 요란스레 장례를 치르고 이곳에 묻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일파는 죽어서도 결코 편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박영효의 손자란 놈이 무덤 터를 남에게 팔고 묘까지 파헤쳤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굴을 그 손자가 한 것인데, 혹시라도 보물이 있을까하여 파헤쳤다고 하니, 아마 이순신 장군과 정운 장군께서 박영효에게 벌을 내리신 모양이다.

해식절벽의 장대함
해식절벽의 장대함김대갑
오늘도 몰운대와 다대포는 말없이 이 나라의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그 빼어난 경치와 전략적 중요도 때문에 끊임없이 왜구에게 유린당한 역사를 가진, 한편으론 가슴 찡한 아픔이 묻어나는 사랑스런 곳이다. 널따란 백사장에는 게들이 파놓은 작은 구멍들이 한없이 널려 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앙증맞은 손으로 게들을 잡네 조개를 잡네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이 참으로 정겹다.

참고로 다대포는 유치원 아이들이 놀기에 가장 적합한 해변이다. 모래사장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바다에 들어가도 겨우 발목밖에 물이 차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다소 재미가 없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하루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다대포는 아주 적합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은 여러가지이나 본 기자는 부산 지하철 1호선 괴정역에서 내려 다대포로 가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을 좋다. 자가용으로는 지하철 괴정역을 찾은 후 다대포로 가는 이정표(좌회전)를 찾으면 된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은 여러가지이나 본 기자는 부산 지하철 1호선 괴정역에서 내려 다대포로 가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을 좋다. 자가용으로는 지하철 괴정역을 찾은 후 다대포로 가는 이정표(좌회전)를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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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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