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군복무가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등록 2005.07.07 14:31수정 2005.07.0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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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자 연합뉴스 기사에 의하면, 남성의 절반 이상이 '군복무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다음은 관련기사 전문이다.

남성 54% "군복무 경험 취업에 도움"

남성의 절반 이상이 군 복무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이 리서치업체 폴에버와 함께 남성 2천명에게 '군복무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를 물은 결과,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53.8%로 '도움이 안된다'는 응답(35.0%)보다 많았다고 6일 밝혔다.

도움이 되는 이유로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40.9%)과 조직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38.7%)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주로 들었다.

'군복무가 취업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느껴질 때'를 묻는 질문에는 군복무에 대한 아무런 혜택이 없을 때(37.9%), 머리가 굳어서 공부하기 힘들 때(22.7%), 취업 준비할 시간을 뺏겼다는 생각이 들 때(20.6%) 등의 응답이 나왔다.

군 복무에 대한 가산점 제도에 대해서는 75.6%가 '부활해야 한다'고 답했고 '부활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은 10.3%를 차지했다.

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군대 내에서 마련해야 할 대책으로는 특기.적성을 고려한 배치(44.7%)와 전문적인 기술교육 실시(39.1%)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한편, 군 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군 면제자에 대한 태도를 물은 결과, '은근히 무시하게 된다'는 응답이 38.7%, '부럽다'는 응답이 31.9%를 각각 차지했다.
/ (서울=연합뉴스) 김희선기자

기사 속에 포함된 설문내용을 읽어 보신 분들, 특히 군 전역자들은 대체로 동의하시리라 믿는다. 애초부터 결과가 뻔한 설문이었다는 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 남성들은 정말 '군복무 경험이 취업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과연 설문 결과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얘기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이 설문 결과는 '군복무 경험이 '권위주의적이고 상명하복 체계가 확고히 정착된 조직'에서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취업의 전부인가?

케케묵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집단, 유무형의 가학적 대인 커뮤니케이션이 여전히 존재하는 집단에 2년여 동안 강제로 '쳐'넣고는,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익힌 생존방식을 가리켜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니, 좀 우습지 않은가 말이다.

결과론적으로는 맞는 말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젊은 남성들이 상명하복의 관료조직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일찍이 군생활을 해보는 것이 분명 개인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온갖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며 소위 '극기정신'을 배양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인 군대문화가 이런 식으로 은연중 합리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꼭 군대에서 배워야만 하나?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필자는 설문 응답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럼 그들은 왜 그렇게 응답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래야만 2년여에 달하는 '텅 빈' 세월에 대한 스스로의 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사회는 군생활로 소비된 인생을 합리화해주지 않는다. 군복무 가산점도 폐지된 마당에, 기껏해야 취업연령제한에서 2년을 배려해 주는 것 말고 예비역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대체 뭐가 있는가.


그러니 인생에서의 그 2년여라는 '공백'이 합리화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전역 후 예비역들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평생 두고두고 쓸 수 있는 술안주거리'밖에 없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군생활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그 2년여 동안, 그들에게 존재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들이 완전히 소멸된다. '군생활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바로 그 상실감에 대한 자위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군복무에 대한 억지스런 합리화 따위는 그만 좀 했으면 한다. '젊은이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군복무는 필요하다'느니, '군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느니 하는 식의 말은 이젠 우습기까지 하다. 그런 것들은 군복무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취업지원 시스템의 문제다.

젊은이들을 강하게 만들려면 교육이 제대로 서야 하고, 취업에 도움을 주려면 산학협동제도나 인턴십 프로그램을 충분히 제공하면 된다. 군대는 '합법적인 폭력'을 추구하는 집단이지 사회화 기관이 결코 아니다. 군대를 통해 '인간'을 만들려는 전근대적인 사고는 이제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근본적인 사회적 인프라의 결여를 무시한 채 젊은이들더러 군대나 갔다 오라고 떠미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런 식의 설문조사로 군복무의 현실을 호도하지 말고, 차라리 이 사회가 과연 얼마나 젊은이들을 배려해 주고 있는지나 조사해보는 게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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