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꽃을 보며 도라지 같은 인생을 생각하다

밭곡식 꽃 <3 >

등록 2005.07.08 15:08수정 2005.07.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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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금도 청초한 도라지꽃을 볼 때면 유년의 뜨락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보랏 빛 수정 봉우리가 내 가슴속에 만발한다.

지금도 청초한 도라지꽃을 볼 때면 유년의 뜨락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보랏 빛 수정 봉우리가 내 가슴속에 만발한다. ⓒ 한석종

그대의 파리한 눈빛을
그대의 파리한 입술을
그대의 파리한 손목을
바라봅니다


맺혀 오르는 슬픔
가슴에 우겨넣고서
다문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멍울 진 웃음으로
경건한 새벽종을 울립니다
...........<중략>

-<도라지꽃> 이진규-


a 도라지라는 이름에는 어딘지 모르게 고전적인 이미지와 향수, 그리고 청초하면서도 애잔한 비련미가 함께 묻어난다.

도라지라는 이름에는 어딘지 모르게 고전적인 이미지와 향수, 그리고 청초하면서도 애잔한 비련미가 함께 묻어난다. ⓒ 한석종

이른 새벽 세상에 저 홀로 깨어 세속에서 한 발짝 물러선 나그네같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같이 맑은 영롱한 빛으로 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오는 꽃, 때로는 눈가에 맺은 이슬을 감추고 애써 미소 짓는 애절한 모습으로, 때로는 인생을 달관한 듯한 청초한 모습으로 고단하기만 한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도라지꽃.

도라지라는 이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고전적인 이미지와 향수, 그리고 청초하면서 애잔한 비련미 함께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상냥함과 따뜻함, 순종, 슬픔, 운명 등 여러 가지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칠월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 청초함을 잃지 않는 도라지꽃의 자태를 바라보면서 어느 TV 드라마에서 "도라지 같은 인생"이라는 대사의 구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도라지 같은 인생은 과연 괜찮은 삶인가? 그럴지 않는 것일까?


왠지 삶이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다. 그 삶 속에는 남모를 깊은 사연이 담겨 있을 것 같고 한과 눈물이 금방 배어나올 것 만 같다. 도라지꽃의 전설에서도 애절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민초들의 삶을 대변해 주었던 민요에 도라지가 자주 등장한다.

도라지꽃의 전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도라지라고 하는 소녀가 먼 친척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빠는 공부를 하기 위해 먼 나라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의지할 곳이 없었으므로 전부터 잘 아는 절의 스님에게 맡겨졌습니다.

집을 떠나던 날 오빠는 소녀에게 열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하였습니다. “얘, 도라지야! 내가 l0년만 공부하고 돌아올 것이니 너도 스님 밑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올 때를 기다려라.” 이렇게 약속을 하고 떠났던 오빠는 l0년이 지나도 좀처럼 올 줄을 몰랐습니다. 소녀는 매일 오빠를 기다렸습니다. 뒷산에 올라가 먼 바다를 바라보며 오빠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습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오빠는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빠져 죽었다느니, 중국에서 결혼을 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느니 하는 구구한 이야기들 뿐 이었습니다. 소녀는 마침내 오빠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혼자 지내기로 결심하고 절을 떠나 깊은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어느덧 소녀는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느 날 문득 오빠가 떠났던 옛날 바다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빠를 기다리던 뒷산으로 올라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오빠! 지금이라도 돌아오셔요. 오빠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그리움에 북받쳐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도라지야.”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할머니는 그만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숨을 거둔 자리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도라지꽃이라 불렀답니다.
내가 보라색을 먼저 알게 된 것도 아마 유년시절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었던 도라지꽃을 늘 보고 자란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꽃과 열매를 보고 자라면서 색을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그 아름다움에 깊숙이 빠져든 것은 아닐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감색, 자두색, 살구색, 복숭아색 등을 구별하면서부터 색과 빛의 아름다움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 사이에 풋풋한 사랑을 싹틔우는 장면에 도라지꽃이 등장한다. 들에 나가 소나기를 만나기 전 소년이 꺾어다 준 도라지꽃을 보고 소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미래에 자신에게 닥쳐올 슬픈 운명과 소년과의 영원한 사랑을 간직하고자 하는 소녀의 내면의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도라지는 보라색이나 흰색의 예쁜 꽃 한 송이만을 터트리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백도라지, 꽃이 겹으로 피는 것을 겹 도라지라고 하며 질경, 경초(梗草), 결경(結梗) 등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풍선꽃(Balloon flower)이라고 하는데 도라지가 꽃을 피울 때 만개하기 전에는 마치 꽃 봉우리가 풍선의 모습을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그 뿌리는 우리의 식탁에 훌륭한 반찬으로, 한방에서는 길경(桔梗)이라고 하여 한약재로 널리 쓰이고 있다.

도라지꽃은 봉오리모습이 특이하다. 종이로 오각형을 접어 만든 듯한 흰 봉오리가 점차 색이 들면서 접힌 부분이 펼쳐지듯이 핀다. 큰 것은 키가 사람 허리 정도만큼 자라는데 줄기는 곧게 서고,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온다. 잎은 어긋나고,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흰 빛을 띤 녹색이다. 초롱꽃과로 7∼8월이면 지름 3∼5cm의 종모양의 꽃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핀다.

제사나 생일에는 삼색 나물을 상에 올린다. 이 때 흰색나물로 애용되는 것이 도라지이다. 흰색나물이 도라지뿐인 것은 아니다. 숙주나물도 있기는 하나 숙주나물은 신숙주처럼 지조가 없어 여름철에 잘 변하기 때문에 도라지가 주로 사용된다. 도라지뿌리는 길경(桔梗)이라 하여 그 쓰임새가 반찬과 약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도라지가 뿌리만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싹과 잎은 나물로 식용하기도 했으며, 꽃은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동의보감에는 도라지에 관해 "성질이 약간 따뜻하며 맛이 매우면서 쓰고 독이 약간 있다. 폐기로 숨이 찬 것을 낫게 한다"고 했다. 도라지는 활용범위가 넓고 효과가 뛰어나 여러 질병에 사용되는데 기침이나 천식을 치료하고 가래를 삭혀주는 진해 거담제로 많이 복용되고 있다. 또 이뇨작용과 해독작용 등이 뛰어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신장염, 신장결석, 백일해, 산후복통, 신경쇠약, 장염 등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널리 사용된다.

a 종이로 오각형을 접어  만든 듯한 흰 봉오리가 점차 색이 들면서 접힌 부분이 펼쳐지듯이 살며시 핀다.

종이로 오각형을 접어 만든 듯한 흰 봉오리가 점차 색이 들면서 접힌 부분이 펼쳐지듯이 살며시 핀다. ⓒ 한석종


a 이른 새벽 세상에 저 홀로 깨어 세속에서 한 발짝 물러선 나그네같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같이 맑은 영롱한 빛으로 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온다

이른 새벽 세상에 저 홀로 깨어 세속에서 한 발짝 물러선 나그네같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같이 맑은 영롱한 빛으로 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온다 ⓒ 한석종


a 인생을 달관한 듯한 청초한 모습으로 고단하기만 한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백도라지

인생을 달관한 듯한 청초한 모습으로 고단하기만 한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백도라지 ⓒ 한석종


a 민중의 삶을 대변해 주었던 우리나라 민요에는 도라지꽃이 자주 등장한다.

민중의 삶을 대변해 주었던 우리나라 민요에는 도라지꽃이 자주 등장한다. ⓒ 한석종


a 도라지는 보라색이나 흰색의 예쁜 꽃 한 송이만을 터트리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도라지는 보라색이나 흰색의 예쁜 꽃 한 송이만을 터트리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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