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드시며 배호 노래 즐기세요"

평전에 못다 쓴 '배호' 이야기 1

등록 2005.07.08 06:59수정 2005.07.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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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주점에서 '배호 노래 없으면 못 사는' 배호 마니아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배호 찬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식탁의 한 손님이 "형씨, 배호 노래가 뭐가 그리 좋수? 귀신 우는 소리 같지"하고 말참견을 했다. 순간 배호 마니아가 접혔다가 풀리는 스프링처럼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센 주먹이 날아갔고 그 바람에 그 배호 마니아는 폭력 전과 '별'을 따게 되었다.

배호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중장년 한국인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예외가 있는 법이어서 취중에 이런 사건이 더러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배호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노래하는 주점이 이 땅에 딱 두 군데 있다. 한 군데는 인천 부평시장통 '문화의 거리' 가까운 곳에 있는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이요, 다른 한 군데는 서울 송파구 5호선 거여역 앞에 있는 '배호카페'다.


정기모임이 없거나 번개를 치지 않아도 배호의 예술혼과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 이 두 곳에 가면 배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먼저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을 소개한다. 대중가요계에서 드러나는 인기를 찾기보다는 야인으로 남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으며 최근 '배호 회상곡'을 작사 작곡한 신창화(55)씨가 운영하고 있다.

a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 무대 위에서 바라본 아담하고 아늑한 홀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 무대 위에서 바라본 아담하고 아늑한 홀 ⓒ 김선영


a '배호 회상곡'을 부르는 가수 신이나씨와 작곡가 신창화씨

'배호 회상곡'을 부르는 가수 신이나씨와 작곡가 신창화씨 ⓒ 김선영

"그 시절엔 극장 공연이 많았는데, 배호님이 출연한다고 하면 관객이 가장 많이 몰렸어요. 저도 배호 공연만 있다 하면 다른 일을 미루고 구경을 갔습니다. 청량리 오스카 극장 공연 때인데, 노래를 하다가 배호님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사회를 코미디언 이상한, 이상해씨가 봤어요. 배호님은 들것에 실려 나갔는데 얼마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배호님이 휠체어를 타고 다시 무대로 나온 거예요. 그 몸에도 팬들을 위해서 노래하겠다고 말이죠."

신씨의 배호 기억 보따리는 일단 풀어놓기 시작하면 끝없이 펼쳐진다.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은 '배기모(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인천지부 회원들이 자주 찾으며,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중장년층이 동네 선술집을 찾듯이 술값 부담 없이 그 공간을 찾는다. 젊은이들도 요즘 노래를 부르면 되니까 찾아가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이곳에서는 호랑이 해에 호랑이 그림으로 인기를 끌었던 일지(一枝) 이종철 동양화가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무대 배경인 배호 초상화도 '배호에 미친' 이화백이 그린 것. 배호 사진과 LP 재킷 등으로 실내장식이 된 이 공간에서는 세 곡에 한 곡 정도는 배호 노래가 나온다.


a '호랑이' 전문화가 이종철씨는 프로 사진가 못지 않은 촬영 솜씨를 지니고 있다.

'호랑이' 전문화가 이종철씨는 프로 사진가 못지 않은 촬영 솜씨를 지니고 있다. ⓒ 김선영


a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중장년은 무대 위에 오르면 누구나 열정적인 가수가 된다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중장년은 무대 위에 오르면 누구나 열정적인 가수가 된다 ⓒ 김선영


a 배호 노래만 따로 인쇄해 한쪽 벽에 걸어놓았다.

배호 노래만 따로 인쇄해 한쪽 벽에 걸어놓았다. ⓒ 김선영

"매달 동별로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위안공연과 잔치국수 대접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신씨는 이 공간을 이용하여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좋은 일을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7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부평구 거주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잔치국수를 대접하고 위안공연을 해드릴 계획이란다. 배기모 인천지부(지부장 김종구)와 신씨가 어려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위안공연을 펼치며 음식 대접을 한다는 생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꽃피는 봄날이었던 지난 3월 26일(토) 오후 1~3시에 부평역 광장 라이브 무대에서는 '작은 나눔의 자리'가 있었다. 노숙자와 불우노인 1000명에게 김밥 도시락과 국을 무료 급식한 이 자리에서는 '배호 회상곡' 발표 시간도 있었다. 이 후 불우노인들에게 드리는 작은 섬김의 정성은 잔치국수로 바뀌어 5월 21일(토) 인천 월미도 야외무대에서 첫 풍악을 울린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로 이어졌다.

a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에 심사위원으로 나들이 나온 김광빈옹(배호의 노래 스승이며 외숙부, MBC 초대 악단장)이 대상 이승은씨에게 시상하고 있다. 사회자는 곽규호씨.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에 심사위원으로 나들이 나온 김광빈옹(배호의 노래 스승이며 외숙부, MBC 초대 악단장)이 대상 이승은씨에게 시상하고 있다. 사회자는 곽규호씨. ⓒ 김선영


a 김광빈옹의 제자가수 류현씨가 초청가수로 나와 배호의 '막차로 떠난 여자'를 열창하고 있다

김광빈옹의 제자가수 류현씨가 초청가수로 나와 배호의 '막차로 떠난 여자'를 열창하고 있다 ⓒ 김선영


a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가 펼쳐지는 월미도의 하늘과 바다와 관객들의 표정은 모두 맑았다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가 펼쳐지는 월미도의 하늘과 바다와 관객들의 표정은 모두 맑았다 ⓒ 김선영


a 재료가 듬뿍 들어간 잔치국수에다 갓 담근 김치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맛을 살려 주었다

재료가 듬뿍 들어간 잔치국수에다 갓 담근 김치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맛을 살려 주었다 ⓒ 김선영

매달 한 번씩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에서 열리는 '작은 나눔의 자리'에는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 입상 가수들(대상 이승은, 금상 김희진, 배호상 김창환)과 전국의 뜻있는 배호 홍보대사가수들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배호 노래와 함께 흐르는 나눔의 정(情), 천상(天上)에서 배호도 흐뭇해할 것이다.

a 매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잔치국수와 흘러간 옛노래를 대접할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 입구. 겉보기엔 허름해 보이지만 배호 마니아들은 이 공간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매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잔치국수와 흘러간 옛노래를 대접할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 입구. 겉보기엔 허름해 보이지만 배호 마니아들은 이 공간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 김선영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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