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은 곳, 평화의 공원

버려진 곳에서 생명의 공간으로 바뀐 서울월드컵공원 탐방기

등록 2005.07.09 01:15수정 2005.07.0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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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여러 개의 공원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조성된 것을 고른다면 바로 월드컵공원을 들 수 있습니다. 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이라는 5개의 테마파크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 바로 월드컵공원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온 국민의 애정과 열정이 집중되었고, 그 뒤에는 마포구와 서대문구를 비롯한 많은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공원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테마파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서울시의 쓰레기가 산처럼 버려지던 바로 그곳에 동식물들이 인간과 함께 숨쉬는 공원을 조성했기 때문이지요.


평화의 공원 풍경 : 깔끔하게 단장된 계단이며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뒤쪽에 하늘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평화의 공원 풍경 : 깔끔하게 단장된 계단이며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뒤쪽에 하늘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이호준
우리 가족이 주로 나들이하는 곳은 이 테마파크들 가운데에서 평화의 공원입니다. 그곳에는 소나무, 졸참나무, 느티나무, 자귀나무, 산딸나무, 배롱나무, 미루나무, 자작나무, 버즘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반겨주기 때문이지요. 그들의 일상을 만나게 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요해진답니다.

이팝나무 : 하늘과 어우러진 꽃이 마치 선녀의 날개옷 같다.
이팝나무 : 하늘과 어우러진 꽃이 마치 선녀의 날개옷 같다.이호준

소나무 : 작은 아기 구과들이 터져나오듯 머리를 내밀었다.
소나무 : 작은 아기 구과들이 터져나오듯 머리를 내밀었다.이호준
사실 평화의 공원을 찾는 것만으로도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면, 자연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의 공원에 자리한 수많은 나무와 풀들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그들의 몸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지요. 비록 자연적으로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땅이 과거에 침출수와 쓰레기로 얼룩졌던 곳이기에,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라 할지라도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민들레 홀씨 : 남매가 함께 자리했다. 이들이 품은 씨앗들은 어디로 날아갈까?
민들레 홀씨 : 남매가 함께 자리했다. 이들이 품은 씨앗들은 어디로 날아갈까?이호준
이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평화의 공원을 찾을 때마다 분수가 안개 옷을 펼치는 곳보다는, 주로 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있는 곳을 찾습니다. 거기서 그들이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게 여기며 어루만져 준답니다.

꼬리조팝나무 : 이 꽃을 보기 위해 꼬리조팝나무를 그렇게도 찾아다녔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꼬리조팝나무 : 이 꽃을 보기 위해 꼬리조팝나무를 그렇게도 찾아다녔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이호준

단풍나무 : 나뭇잎과 열매 모두 예쁘다. 평화의 공원에서 한 가닥 하는 얼짱이다.
단풍나무 : 나뭇잎과 열매 모두 예쁘다. 평화의 공원에서 한 가닥 하는 얼짱이다.이호준
요즘에는 싱싱한 여름을 맞아 평화의 공원 가족들이 식구 늘이기에 한창입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꼬리조팝나무 같은 녀석이 있는가 하면, 단풍나무처럼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실핀들을 하늘로 날려 보낼 준비를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게다가 뱀딸기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친구들도 있고, 산딸나무처럼 순결한 백색 드레스를 입고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도 있지요.

뱀딸기 : 몰래 숨어 있던 녀석을 찾아냈다.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뱀딸기 : 몰래 숨어 있던 녀석을 찾아냈다.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이호준

산딸나무 : 꼬리조팝나무와는 또 다른 화려함을 뽐낸다. 백색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산딸나무 : 꼬리조팝나무와는 또 다른 화려함을 뽐낸다. 백색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이호준
하지만 마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처럼 열을 맞춰 풍성한 내일을 기약하는 친구들도 있지요. 바로 보리입니다. 비록 농부들이 가꾸거나 어루만져주지는 않지만 괴롭히는 이 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리 : 보리가 땅의 기운을 먹고 이만큼 자랐으니 이 땅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보리 : 보리가 땅의 기운을 먹고 이만큼 자랐으니 이 땅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이호준
평화의 공원에 이런 놀랄 만한 생명의 기운들이 숨쉬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생명도 숨쉬지 못할 것 같던 땅에 자연의 아이들이 삶을 잉태하고, 그때부터 우리 인간들도 자연이 준비해놓은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습니다.

뭔가를 가리키는 아이 : 어른들은 보기 힘든 생명의 기운을 발견한 것일까?
뭔가를 가리키는 아이 : 어른들은 보기 힘든 생명의 기운을 발견한 것일까?이호준
척박한 땅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군사들처럼, 적어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만큼은 평화의 공원 주인 자리를 그곳에 먼저 자리한 생물들에게 내어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풀 한 포기조차 예사롭지 않은 땅, 이곳 평화의 공원은 앞으로도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싱싱한 공기와 풍경을 선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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