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래 인어는 갈매기가 되었을까?

<그 품에 안기고 싶다 17> 두 딸이 눈도장 찍은 바다 '진하해수욕장'

등록 2005.07.09 12:28수정 2005.07.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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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여름 진하해수욕장 금빛 모래밭에 만든 모래 인어
지난 해 여름 진하해수욕장 금빛 모래밭에 만든 모래 인어이종찬
지난해 그 뜨거웠던 여름. 그 금빛 모래밭에 오랜 그리움처럼, 지울 수 없는 첫사랑처럼 만든 그 모래 인어는 지금도 잘 있을까. 썰물이 매끄럽게 다듬어놓은 깨끗한 모래밭에 큰딸 푸름이가 '하늘… 수평선… 갈매기… 파도… 섬…'이라고 새긴 그 글씨는 지금쯤 하늘이 되고 수평선이 되고 갈매기가 되고 파도가 되고 섬이 되었을까.

둘째이자 막내딸 빛나가 제 동생 하나를 자기 손으로 꼭 만들고 말겠다며 모래 인어 옆에 젖은 모래로 조그마하게 만든 그 모래 아이. 그 모래 꼬마는 아직도 길게 땋은 모래 머리를 바닷바람에 나폴거리고 있을까. 그때 윈드서핑을 타고 수평선을 출렁이며 파도를 멋지게 기르던 그 사람들은 오늘도 모세의 기적 같은 바닷길을 열고 있을까.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콕콕콕 추억처럼 찍어 놓은 내 발자국은 썰물을 타고 하늘과 바다를 가로질러 나아가다가 지금쯤 태평양 어느 한 귀퉁이 무인도에 닿았을까. 그 무인도, 아무도 밟지 않은 은빛 모래밭에 다시 발자국을 콕콕콕 찍다가 외로움이 물거품처럼 하얗게 밀려들 때면 한 번쯤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빛나(좌)와 준영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빛나(좌)와 준영이이종찬

명선도 앞 야트막한 물이 출렁대는 바닷길에서 놀고 있는 빛나와 소영이
명선도 앞 야트막한 물이 출렁대는 바닷길에서 놀고 있는 빛나와 소영이이종찬
"아빠! 내가 모래 동생 하나 만들 테니까, 아빠는 모래 동생 엄마 하나 만들어."
"모래 동생? 모래 동생 엄마?"
"응. 나도 내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어. 푸름이 언니처럼 언니 소리도 듣고 싶고, 심부름도 시키고 싶어."
"고작 그 때문에 동생 타령하는 거야? 소영이와 준영이도 네 동생이잖아?"
"아빠, 나는 같이 밥 먹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진짜 동생을 말하는 거야."


지난해 그 무더웠던 여름,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진하해수욕장(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그날, 진하해수욕장은 푸르른 배꼽 위에 엉금엉금 기어가는 명선도를 띄워놓고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파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은 명선도로 건너가지 말라는 몇 번의 안내방송을 들은 척 만 척하며 물이 정강이까지밖에 차오르지 않는 명선도로 건너가곤 했다.

아이들도 명선도가 마음에 포옥 들었나 보았다. 아예 명선도 주변을 맴돌며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째 딸 빛나와 빛나의 이종사촌 소영이와 준영이는 결국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어서야 시퍼런 입술로 활짝 웃으며 모래밭으로 나왔다. 그리곤 그때부터 모래밭에 앉아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모래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큰딸 푸름이는 꼭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모래톱으로 쉴새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밟다가 가끔 백사장에 엎드려 나뭇가지로 무슨 글씨를 쓰곤 했다. 파도는 푸름이가 글씨를 쓸 때마다 우르르 달겨들어 글씨를 깨끗히 지웠다. 푸름이는 누가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투로 파도가 글씨를 휩쓸고 간 모래밭에 또 다시 글씨를 잔뜩 쓰곤 했다.


"푸름아 무슨 글씨를 그렇게 열심히 쓰고 있니?"
"바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어."
"무슨 편지?"
"응. 내가 이 바다를 눈도장 찍어 놓았으니까, 내년 여름까지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내년 여름까지 왜 기다려? 지금 바다에 들어가서 바다와 놀면 되지?"
"으응. 하필이면 오늘이 그날(?)이야.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그거."


둘째딸 빛나가 만든 모래 동생
둘째딸 빛나가 만든 모래 동생이종찬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 콕콕콕 찍은 발자국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 콕콕콕 찍은 발자국이종찬
울산에서 부산 쪽으로 21km쯤 떨어져 있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한 진하해수욕장. 짙푸르게 넘실대는 동해를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진하해수욕장은 바닷물이 수정처럼 맑고, 해안선에서 제법 먼 바다까지 들어가더라도 깊이가 어른 정강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올 여름 가족 피서지로 딱이다.


황진이 눈썹처럼 한껏 휘어진 드넓은 모래밭에는 금빛 모래알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모래밭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천천히 걷다보면 구슬처럼 예쁜 조약돌과 무지개빛 감도는 예쁜 전복껍질을 주울 수도 있다. 이 해수욕장 들머리에는 마악 하늘로 용트림하는 용처럼 붉은 소나무숲도 울창하다. 바닷가에서 삼림욕도 즐기고 야영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는가.

특히 이 해수욕장을 끼고 수평선처럼 달리는 7번국도를 따라가면 부산의 일광, 송정, 해운대로 이어진다. 게다가 푸르른 파도가 끝없이 넘실대는 수평선 저만치 사람이 살지 않는 명선도가 거북이처럼 바닷길을 삐쭘이 열고 있어 하루종일 바다를 바라보아도 결코 지겹지가 않다. 백사장 면적 9만 6000㎡, 길이 1km, 너비 300m.

1974년 여름, 처음으로 속내를 활짝 드러낸 진하해수욕장은 매년 7월 8일부터 8월 22일까지 문을 여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8일(금)에 문을 열었다(개장 기간은 8월 21일까지). 더불어 같은 날 이곳 진하해수욕장과 일산해수욕장, 선바위 유원지 등에서 물놀이 사고를 막기 위한 '119 시민수상구조대'가 발대식을 가졌다.

울산소방본부는 "지난해 진하, 일산, 선바위 등지에서 연간 물놀이 이용객은 488만6000명(1일 2만 1715명)으로 이에 따른 수난사고는 연간 81건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 때문에 "올해는 사고 예방을 위해 수난 및 수변안전요원으로 활동할 자원봉사자 427명을 확보해 수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것"이라고 덧붙혔다.

수평선을 흔들며 바다를 가르는 윈드서핑
수평선을 흔들며 바다를 가르는 윈드서핑이종찬

진하해수욕장은 제법 먼 바다까지도 수심이 얕고 물이 따뜻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진하해수욕장은 제법 먼 바다까지도 수심이 얕고 물이 따뜻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그만이다이종찬
진하해수욕장의 참맛은 기기묘묘한 바위가 늘어선 해변 가까이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줄을 잇고 있다는 데 있다. 해수욕장 남쪽 4㎞쯤에는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간절곶'이 있으며, 해수욕장을 기고 있는 뒷산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았다는 '서생포왜성'이 있다. 게다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연기나 불빛으로 알렸다는 '이길 봉수대'(서생면 나사리)도 5분 거리에 있다.

눈요깃거리도 꽤 있다. 오는 16일 오후 4시 울산YMCA에서 여는 '제1회 청소년 가요, 댄스 콘테스트'에 이어 17일에는 'KBS전국노래자랑 울주군 편'이 이곳 모래밭에서 펼쳐진다. 8월 초에는 진하해수욕장번영회가 주최하는 '진하바다축제'가 '바다아가씨 선발' 등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피서객을 위한 숙박시설도 꽤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해수욕장을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 숲속에는 야영객을 위한 500여 개의 텐트를 공짜로 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이용료를 받는 사유지도 있음을 주의). 그리고 해수욕장 주변에는 20여 개의 장급 여관과 50여 곳의 민박시설이 수평선이 환히 바라다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피서객 편의시설로는 팔각정과 간이전망대 3곳이 있다. 모래밭 끝자락 명선도 앞에 있는 팔각정에는 샤워실과 화장실, 물품보관함 등이 있으며, 간이전망대에서는 멋드러진 진하 앞바다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게다가 울주군이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백사장 청소기 '비치크리너'가 틈틈이 모래밭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물놀이에 싫증이 나거나 입이 심심해질 때면 팔각정 너머 횟집으로 가면 된다. 해변가에 줄지어 서 있는 30여 곳이나 되는 이곳 횟집에서는 전복과 소라, 해삼, 멍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생선회를 팔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수산물 보호차원에서 잠녀 외에는 채취를 할 수 없게 만들어, 잠녀가 바다에서 갓 건져올리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 볼 수 있다.

물결이 휩쓸고 간 깨끗한 모래밭에 글씨를 쓰고 있는 큰딸 푸름이
물결이 휩쓸고 간 깨끗한 모래밭에 글씨를 쓰고 있는 큰딸 푸름이이종찬

잔하해수욕장의 멋진 밤풍경
잔하해수욕장의 멋진 밤풍경이종찬
"아빠! 올 여름에는 어디로 갈 거야?"
"어디로 가고 싶어?"
"작년 여름에 갔던 그 바다에 가자."
"그 바다가 자꾸 생각 나?"
"아빠가 만든 모래인어도 만나봐야 하고, 내가 만든 모래 동생도 잘 있는지 살펴봐야지."


올 여름, 아직 휴가계획을 세우지 않은 사람들은 진하해수욕장을 손가락에 꼽아보자. 그곳에 가서 세상사에 찌든 온갖 시름을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수평선에 날려보자. 그래도 마음의 때가 남는다면 푸르른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 끝없이 넘실대는 파도에 온몸을 맡겨보자. 그리하여 푸르른 하늘을 부채질하는 갈매기처럼 이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부채질하자.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울산-공업탑-덕하검문소-14번 국도-남창역-울산온천-진하해수욕장
※울산 삼산동 시외버스터미널 안 동부강남고속에서 해운대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진하해수욕장에서 내리면 된다. 부산에서는 노포동 터미널에서 울산으로 가는 1127번 좌석버스를 탈 것.

★'2005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울산-공업탑-덕하검문소-14번 국도-남창역-울산온천-진하해수욕장
※울산 삼산동 시외버스터미널 안 동부강남고속에서 해운대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진하해수욕장에서 내리면 된다. 부산에서는 노포동 터미널에서 울산으로 가는 1127번 좌석버스를 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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