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가치 있는 연극포스터 만들고 싶었다"

[인터뷰] 연극 <밑바닥에서> 포스터 촬영한 사진작가 '리 안'

등록 2005.07.11 10:05수정 2005.07.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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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를 걷다보면 연극과 공연에 관련된 포스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포스터들은 배우의 얼굴을 커다랗게 강조하거나 일러스트를 혼합해서 만든 것들이다. 많은 포스터들이 그런 형태를 띠어 공연포스터는 원래 그렇다는 생각을 심어주곤 했었다.

<밑바닥에서> 포스터
<밑바닥에서> 포스터리안
이런 공연포스터의 통념을 깬 포스터가 있어 화제다. 바로 언플러그드 뮤지컬인 <밑바닥에서>의 포스터이다. 이 포스터는 이미 관객과의 눈 마주침을 끝냈으며 관객들에게 작품의 내용을 이해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포스터를 제작한 사람은 누구일까? 포스터를 찍은 사진작가 리안씨. 그는 33살이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이번 포스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 이런 포스터를 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막연한 확신이지만 꼭 한번쯤은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기존의 공연포스터사진의 틀을 깨고 싶었다. 대중의 눈은 발전한 영화포스터에 맞춰져있는데 왜 공연포스터는 10년이 지나도 소장하고 싶지 않는 기억들로 남아야하는 건지…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많았다. 물론 공연을 하면서 자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기획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공연을 사랑하지만 스스로도 포스터를 보고 공연을 꿈꾸게 되지는 않았다. 그런 것이 참 안타까웠다."

- 일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문제는 없었나?
"처음 사진을 내밀었을 때 기획사와 주변인들의 냉담한 반응에 무척 힘들었다. 이미 시스템이 구축되어있는 패션쪽과는 달리 아는 사람부탁으로 공짜로 찍어 넘기는 시스템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내 작업을 이해시키기는 힘들었다. 일단 기획사시안도 없었고 최종디자인생각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본읽기와 시안작업, 포스터 헤어, 의상, 후반최종포스터디자인, 인쇄까지 생각을 해야했다.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어서 좋은면도 있지만 결과물들에 대해서 환영받지 못해 힘들었다. 정말 인정받기 힘든 외로운 행보였다."

한때 케이블방송PD였던 리 안씨는 사진작가로 전환, 자신의 특성을 살려 감각적인 연출을 하고 있다.사진은 사진작가 리안.
한때 케이블방송PD였던 리 안씨는 사진작가로 전환, 자신의 특성을 살려 감각적인 연출을 하고 있다.사진은 사진작가 리안.안영건

-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주 목표로 세운 것은 무엇인가.
"포스터의 주 목표는 포스터메인 배우의 시선이 지나가는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게 하는 것이었다. 촬영은 8시간동안 진행됐으며 그와 마주치는 시선이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그가 제작한 공연엽서와 3단 전단, 2가지 종류의 포스터 모두가 품절인 상태다. 관람객들이 공연포스터를 사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란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다.


그의 공연 사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진 속에 있는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이런 그의 작업은 <밑바닥에서>의 공동제작과 연출을 맡은 왕용범 연출의 허락 때문에 이뤄진 것.

이미 넌버벌 퍼포먼스 <펭귄과 북극곰>에서 그녀와 공동 제작한바 있는 왕용범 연출은 일적인면에서 그의 비쥬얼한 부분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는 상태이다. 왕용범 연출을 종종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왕 연출은 다른 사람이 담당했던 티저포스터가 나오기도 전에 그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는 '희망은 그들에게 독이 된다'란 카피를 넣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작업방식도 독특하다. 그는 "대본읽기와 분석을 한 뒤 포스터에 쓸 배우를 선정하기 위해 하루 종일 연습실에 앉아 배우들의 라인과 표정 등을 살피며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끝날 무렵 선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케이블TV에 PD로 취직했다고 한다. 그 후 예술적인 창작을 하고 싶어 사진으로 전향해 패션사진작가로 유명한 박경일씨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로 일했다. 그는 2년 후 독립해 패션브랜드 ENNU 런칭광고 등을 찍고 예술복합회사인 라는 회사를 만들어 평소 해보고 싶었던 넌버벌 퍼포먼스 <펭귄과북극곰>을 공동작, 아트디렉터, 디자인, 제작을 맡고 전국 40여개도시를 순회했다. 그 작업은 지금까지 했던 작업들에서 느낀 것들을 총 정리 하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그의 열정과 걸맞게 깜찍한 반란은 계속 될 것 같다. 계속되는 리얼하고 묘한 구도의 그녀만의 다른 작업을 만나길 기대해본다.

2005년 6월부터 27회의 공연을 하는 동안 객석을 가득 메운 수많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소극장 뮤지컬의 교과서'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7월 7일부터 앵콜연장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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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에서 사회부 기자로만 17년 근무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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