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흡연자를 위한 변명

등록 2005.07.11 10:46수정 2005.07.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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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ve come a long way, baby.(당신은 정말로 머나먼 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전설적인 천재 PR 전문가 에드워즈 버네이즈가 여성 흡연자의 수를 늘리기 위한 담배회사의 기대에 부응한 광고 카피였다. 여성들이 내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문구와 마케팅 덕분인지 여성들은 흡연을, 그동안의 여성수난을 밝혀주는 '해방의 횃불'쯤으로 여겨, 이후 마른짚단에 불붙듯, 무서운 기세로 흡연자의 수를 늘려 지금에 이른다.

그리고 채 백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삶의 질'과 함께 거센 금연의 물결에 휘말리고 있다. 이제 흡연은 자신은 물론 동료의 목숨을 위협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용의선상에 올라야 했으며, 심지어는 판단력을 상실한 저능과 무분별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지게 됐다. (글의 성격상 새삼 흡연의 장점이나 순기능에 대한 언급은 피하겠다.)

2003년 7월 1일 흡연구역 확대 첫 날 빌딩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는 직장인들.
2003년 7월 1일 흡연구역 확대 첫 날 빌딩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는 직장인들.한태욱
그리하여 거리마다, 건물마다, 금연의 바리게이트가 섰고, 이제 흡연자들은 한갓진 구석에서 흡연구역의 알량한 배려에 감사해 하며, 어깨를 부딪치며 종종거리며 담배를 피워야 한다. 생각해보면, -물론 자랑스러운 과거는 아니지만- 고딩시절 화장실에서 몰래 배웠던 담배를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도 숨어 피워야 하는 신세가 되고 보면, 그야말로 수미쌍관의 구체적 실증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지만, '금연의 결행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심약하고 못난 사람들'이라는 흡연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사뭇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정부에서는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금연자 증가 통계수치를 들이대며, 담뱃값 인상을 협박처럼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담배 속의 니코틴이며, 타르며 다이옥신 등의 독소성분을 조목조목 위협적으로 열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나 보건복지부는 무엇을 했다는 얘기인지 모를 일이다. 담배 속의 유해독소는 담배회사와 싸우더라도 당연히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했고, 아니 마땅히 개선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야말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방기하는 업무 유기가 아닐까? 그리고 담배농가의 수입과는 무관하였던 담뱃값 인상에 따른 세금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나가는데 아주 긴요한 재원으로 작용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이다.

지금 대다수 흡연자들은 건강한 혹은 건전한 생활을 위해 금연자의 대열로 귀화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불평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도 한번 끊어볼까…' 하고 생각하는 흡연자를 어느새 일방적으로 죄인으로 치부해 버리고 4륜구동으로 장착된 가족사랑을 과시하며, 새로운 운동장비와 여가문화를 즐겨야 한다는 강박의 바다 위를 표류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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